10. Saṅgāravasuttaṃ
10. 상가라와 경
473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 지방을 유행하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lesu cārikaṃ cara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한때 세존께서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고 계셨다.
그때 짠짤리깝빠에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이 살았다. 그녀는 붓다와 법과 승가를 깊이 믿었다. 어느 날 다난자니는 걸려 넘어지면서 세 번 감흥을 터뜨렸다.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경배합니다.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경배합니다.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경배합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dhanañjānī nāma brāhmaṇī cañcalikappe paṭivasati abhippasannā buddhe ca dhamme ca saṅghe ca.
그때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이 짠짤리깝빠에 살고 있었는데, 붓다와 법과 승가에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Atha kho dhanañjānī brāhmaṇī upakkhalitvā tikkhattu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이 발이 걸려 비틀거리다가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ā’’ti.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
그 무렵 짠짤리깝빠에는 상가라바라는 바라문 청년도 살았다. 그는 세 가지 베다에 통달했다. 어휘론과 의궤론, 음운론과 어원론을 알았고, 다섯째인 전승 이야기까지 두루 알았다. 문법과 구절 해석에 밝았고, 순세론과 대인상에도 막힘이 없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saṅgāravo nāma māṇavo cañcalikappe paṭivasati tiṇṇaṃ vedānaṃ pāragū sanighaṇḍukeṭubhānaṃ sākkharappabhedānaṃ itihāsapañcamānaṃ, padako, veyyākaraṇo, lokāyatamahāpurisalakkhaṇesu anavayo.
그때 상가라와라는 학인이 짠짤리깝빠에 살고 있었는데, 세 베다에 통달하였고, 어휘론과 제의론을 갖추고, 음운론과 어원론을 갖추고, 다섯째로 고담을 갖추었으며, 어구에 밝고, 문법에 능하고, 세간론과 대인상에 빈틈이 없었다.
상가라바는 다난자니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다난자니에게 말했다. “이 다난자니는 참으로 몰락했구나. 참으로 타락했구나. 삼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이 있는데도, 저 까까머리 사문을 칭찬하고 있으니.”[불확실]
Assosi kho saṅgāravo māṇavo dhanañjāniyā brāhmaṇiyā evaṃ vācaṃ bhāsamānāya.
상가라와 학인은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Sutvā dhanañjāniṃ brāhmaṇiṃ etadavoca –
듣고서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avabhūtāva ayaṃ dhanañjānī brāhmaṇī, parabhūtāva ayaṃ dhanañjānī brāhmaṇī, vijjamānānaṃ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atha ca pana tassa muṇḍakassa samaṇakassa vaṇṇaṃ bhāsissatī’’ti.
“이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망했습니다. 이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파멸했습니다. 세 베다를 아는 바라문들이 엄연히 있는데도, 저 까까머리 사문 나부랭이를 찬탄하려 하다니요.”[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얘야, 잘생긴 아이야, 너는 세존의 계행과 지혜를 알지 못하는구나. 얘야, 잘생긴 아이야, 네가 안다면 그분을 꾸짖고 비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Na hi pana tvaṃ, tāta bhadramukha, tassa bhagavato sīlapaññāṇaṃ jānāsi.
“그런데 얘야, 어진 이여, 너는 세존이신 그분의 계와 지혜를 알지 못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ce tvaṃ, tāta bhadramukha, tassa bhagavato sīlapaññāṇaṃ jāneyyāsi, na tvaṃ, tāta bhadramukha, taṃ bhagavantaṃ akkositabbaṃ paribhāsitabbaṃ maññeyyāsī’’ti.
얘야, 어진 이여, 네가 세존이신 그분의 계와 지혜를 안다면, 얘야, 어진 이여, 너는 세존이신 그분을 욕하고 비방해도 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부인, 사문 고따마께서 짠짤리깝빠에 오시거든 내게 알려 주십시오.” “알겠다, 잘생긴 아이야.” 다난자니는 상가라바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Tena hi, bhoti, yadā samaṇo gotamo cañcalikappaṃ anuppatto hoti atha me āroceyyāsī’’ti.
“그렇다면 부인이시여, 사문 고따마가 짠짤리깝빠에 이르거든 그때 제게 알려 주십시오.”
‘‘Evaṃ, bhadramukhā’’ti kho dhanañjānī brāhmaṇī saṅgāravassa māṇavassa paccassosi.
“그러지요, 어진 이여” 하고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상가라와 학인에게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존께서 꼬살라 지방을 차례로 유행하시다가 짠짤리깝빠에 이르셨다. 세존께서는 짠짤리깝빠에 있는 토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kosalesu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cañcalikappaṃ tadavasari.
그때 세존께서 꼬살라에서 차례로 유행하시다가 짠짤리깝빠에 이르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cañcalikappe viharati todeyyānaṃ brāhmaṇānaṃ ambavane.
거기서 세존께서는 짠짤리깝빠의 또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다난자니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세존께서 짠짤리깝빠에 오셔서, 토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고 한다.”
Assosi kho dhanañjānī brāhmaṇī –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들었다.
‘‘bhagavā kira cañcalikappaṃ anuppatto, cañcalikappe viharati todeyyānaṃ brāhmaṇānaṃ ambavane’’ti.
“세존께서 짠짤리깝빠에 이르시어, 짠짤리깝빠의 또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
그러자 다난자니는 상가라바에게 가서 말했다. “얘야, 잘생긴 아이야, 세존께서 짠짤리깝빠에 오셔서 토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 이제 네가 알아서 때를 정하여라.”
Atha kho dhanañjānī brāhmaṇī yena saṅgāravo māṇavo tenupasaṅkami;
그때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상가라와 학인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saṅgāravaṃ māṇavaṃ etadavoca –
다가가서 상가라와 학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ayaṃ, tāta bhadramukha, so bhagavā cañcalikappaṃ anuppatto, cañcalikappe viharati todeyyānaṃ brāhmaṇānaṃ ambavane.
“얘야, 어진 이여, 세존이신 그분께서 짠짤리깝빠에 이르시어, 짠짤리깝빠의 또데야 바라문들의 망고 숲에 머무신다.
Yassadāni, tāta bhadramukha, kālaṃ maññasī’’ti.
얘야, 어진 이여, 이제 네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거든 그리하여라.”
474
“알겠습니다, 부인.” 상가라바는 다난자니에게 대답하고 세존께 갔다. 그는 세존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중하고 기억할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아 세존께 말씀드렸다.
‘‘Evaṃ, bho’’ti kho saṅgāravo māṇavo dhanañjāniyā brāhmaṇiyā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러지요, 부인이시여” 하고 상가라와 학인은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대답하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aṅgārav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상가라와 학인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현재의 삶에서 직접 알아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청정한 삶의 처음부터 그것을 안다고 주장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게 주장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존자께서는 어느 쪽이십니까?”
‘‘santi kho, bho gotama, ek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렀다며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합니다.
Tatra, bho gotama, ye t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aṃ bhavaṃ gotamo katamo’’ti?
고따마 존자시여, 그 가운데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렀다며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하는 그 사문·바라문들 중에서,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느 쪽이십니까?”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도 나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naṃ,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ānampi kho ahaṃ, bhāradvāja, vemattaṃ vadāmi.
“바라드와자여,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러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하는 자들 사이에도 나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승에 의존한다. 그들은 전해 들은 것으로, 현재의 삶에서 직접 알아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청정한 삶의 처음부터 안다고도 주장한다. 삼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들이 그런 이들이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anussavikā.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해 들은 것을 따르는 자들이다.
Te anussav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그들은 전해 들은 것으로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렀다며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한다.
seyyathāpi brāhmaṇā tevijjā.
마치 세 베다를 아는 바라문들처럼.
또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오직 믿음만으로 현재의 삶에서 직접 알아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청정한 삶의 처음부터 안다고도 주장한다. 논리를 따지고 사색하는 이들이 그런 이들이다.
Santi pana,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kevalaṃ saddhāmattak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바라드와자여, 또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오로지 믿음만으로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렀다며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한다.
seyyathāpi takkī vīmaṃsī.
마치 따져 보고 살펴 헤아리는 자처럼.
바라드와자여, 또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에 들은 적 없는 법들을 스스로 직접 알아서, 현재의 삶에서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청정한 삶의 처음부터 안다고도 주장한다. 전에 들은 적 없는 법들을 스스로 직접 알아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나는 바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속한다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 수 있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곧바로 알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러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한다.
Tatra, bhāradvāja,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āhamasmi.
바라드와자여, 그 가운데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곧바로 알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러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하는 그 사문·바라문들,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Tadamināpetaṃ, bhāradvāj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āhamasmi.
바라드와자여,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도 알 수 있다 —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곧바로 알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완성과 궁극에 이르러 청정한 삶의 근본을 표방하는 그 사문·바라문들,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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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드와자여, 나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던 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가의 삶은 비좁고 먼지가 쌓이는 길이다. 출가는 탁 트인 허공 같다. 집에 살면서는 청정한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 삶은 오롯이 완전하고 오롯이 청정하며, 소라껍질처럼 매끄러워야 한다. 그러니 이제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Idha me, bhāradvāj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여기 내게, 깨닫기 전 아직 바르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sambādho gharāvāso rajāpatho, abbhokāso pabbajjā.
‘재가의 삶은 갑갑하고 티끌 이는 길이며, 출가는 확 트인 것이다.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ṅ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집에 살면서 이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청정한, 소라처럼 매끈한 청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리라.’
바라드와자여,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출가하였다. 그때 나는 머리칼이 새까만 젊은이였고, 아름다운 청춘을 갖춘 인생의 첫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원치 않으셔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도록 우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을 뒤로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았다. 그리고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났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aparena samayena daharova samāno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akāmakānaṃ mātāpitūnaṃ assumukhānaṃ rudantān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뒤 아직 젊고 머리칼이 검고 복된 젊음을 갖추어 인생의 첫 시기에 있을 때, 부모가 원치 않고 얼굴이 눈물에 젖어 우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했다.
바라드와자여, 그렇게 출가한 나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찾았다. 위없는 평온의 으뜸가는 경지를 구하며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갔다. 가서 그에게 말했다. ‘도반 깔라마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싶소.’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그렇게 출가한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 찾고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며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icchāmahaṃ, āvuso kālāma,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벗 깔라마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답했다. ‘존자여, 머무르시오. 이 법을 익히면, 지혜로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스승이 얻은 바를 스스로 직접 알게 되오. 그것을 증득하여 머물 수 있소.’
Evaṃ vutte, bhāradvāja, āḷāro kālāmo maṃ etadavoca –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viharatāyasmā.
‘존자여, 머무십시오.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곧바로 그 법을 익혔다. 입술을 움직여 되풀이해 말하는 정도만으로도, 나도 남들도 ‘나는 앎을 말하고 장로의 가르침을 안다, 본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되었다.[불확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익혔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입술만 놀리고 말만 되뇌는 그 정도로 앎의 말도 하고 장로의 말도 하며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자처했으니,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그저 믿음만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문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알라라 깔라마는 오로지 믿음만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리는 것이 아니다.
addhā āḷāro kāl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aratī’ti.
알라라 깔라마는 참으로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문다.’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물었다. ‘도반 깔라마여, 어느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하는가?’ 내가 그렇게 묻자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를 말했다.
‘‘Atha khvāhaṃ, bhāradvāja,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ki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벗 깔라마여, 어느 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리십니까?’
Evaṃ vutte, bhāradvāja, āḷāro kālāmo ākiñcaññāyatanaṃ pavedesi.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알려 주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알라라 깔라마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이 있는 것도 알라라 깔라마만이 아니다. …… 마음챙김, 집중, 지혜도 마찬가지이니,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나도 증득하도록 애써 보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믿음이 있다.
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vīriyaṃ…pe… sati… samādh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통찰지가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0:475.22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āḷāro kāl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t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리는 그 법을, 나도 실현하려고 힘써 보리라.’
바라드와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곧바로 그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물렀다. 그리고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말했다. ‘도반 깔라마여, 이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하는 것인가?’ ‘도반이여, 나는 이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하오.’ ‘도반이여, 나도 이 정도까지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bhāradvāja,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āḷāraṃ kālām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e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 깔라마여,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리십니까?’
‘Ettāvatā kho ahaṃ, āvus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ī’ti.
‘벗이여, 나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립니다.’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벗이여, 나도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에게 이득이오. 우리에게 큰 복이오. 그대 같은 존자를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동료로 보게 되었으니. 내가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하는 바로 그것을, 그대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무르오. 그대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무르는 바로 그것을, 내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하오.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내가 아오. 내가 그러하듯 그대가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하듯 내가 그러하오. 도반이여, 이제 어서 오시오. 우리 둘이서 이 무리를 이끕시다.’ 이렇게 바라드와자여, 스승인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나를 크게 공경하였다.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는 이득입니다, 벗이여, 우리는 참으로 잘 얻었습니다, 그대 같은 존자를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로 보게 되었으니.
Iti yā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리는 그 법을 그대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고,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mah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i.
그대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무는 그 법을 내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립니다.
Iti yāhaṃ dhammaṃ jānām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mahaṃ dhammaṃ jānāmi.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그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Iti yādiso ahaṃ tādiso tuvaṃ, yādiso tuvaṃ tādiso ahaṃ.
이와 같이 내가 어떠하면 그대도 그러하고, 그대가 어떠하면 나도 그러합니다.
Ehi dāni, āvuso, ubhova santā imaṃ gaṇaṃ pariharāmā’ti.
자, 벗이여, 이제 우리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Iti kho, bhāradvāja, āḷāro kālāmo ācariyo me samāno attano antevāsiṃ maṃ samānaṃ attanā samasa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하여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이면서도, 자기 제자인 나를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 세우고, 나를 크게 공경하여 받들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이끌지 못한다. 가라앉음으로도, 직접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겨우 무소유처에 태어나는 데까지만 이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떠났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ākiñc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해짐으로도, 곧바로 앎으로도, 온전한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하고, 오직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끌 뿐이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고, 그 법에 싫증을 내어 떠나갔다.
476
바라드와자여, 나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찾고 위없는 평온의 으뜸가는 경지를 구하며, 우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갔다. 가서 그에게 말했다. ‘도반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 싶소.’
‘‘So kho ahaṃ, bhāradvāja,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 찾고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며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icchāmahaṃ, āvuso, imasmiṃ dhammavinaye brahmacariyaṃ caritu’nti.
‘벗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우다까 라마뿟따가 답했다. ‘존자여, 머무르시오. 이 법을 익히면, 지혜로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스승이 얻은 바를 스스로 직접 알게 되오. 그것을 증득하여 머물 수 있소.’
Evaṃ vutte, bhāradvāja, udako rāmaputto maṃ etadavoca –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viharatāyasmā.
‘존자여, 머무십시오.
Tādiso ayaṃ dhammo yattha viññū puriso nacirasseva sakaṃ ācariya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이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의 경지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곧바로 그 법을 익혔다. 입술을 움직여 되풀이해 말하는 정도만으로도, 나도 남들도 ‘나는 앎을 말하고 장로의 가르침을 안다, 본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되었다.[불확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익혔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āvatakeneva oṭṭhapahatamattena lapitalāpanamattena ‘ñāṇavādañca vadāmi, theravādañca jānāmi, passāmī’ti ca paṭijānāmi, ahañceva aññe ca.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입술만 놀리고 말만 되뇌는 그 정도로 앎의 말도 하고 장로의 말도 하며 ‘나는 안다, 나는 본다’고 자처했으니,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는 이 법을 그저 믿음만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한 것이다. 틀림없이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물렀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rāmo imaṃ dhammaṃ kevalaṃ saddhāmattakena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i;
‘라마는 오로지 믿음만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린 것이 아니다.
addhā rāmo imaṃ dhammaṃ jānaṃ passaṃ vihāsī’ti.
라마는 참으로 이 법을 알고 보며 머물렀다.’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우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가 물었다. ‘도반이여, 라마는 어느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했는가?’ 내가 그렇게 묻자 우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를 말했다.
Atha khvāhaṃ, bhāradvāja,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ki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어느 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렸습니까?’
Evaṃ vutte, bhāradvāja, udako rāmaputt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pavedesi.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알려 주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있었던 것은 라마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이 있었던 것도 라마만이 아니다. …… 마음챙김, 집중, 지혜도 마찬가지이니,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라마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고 선언한 그 법을, 나도 증득하도록 애써 보면 어떨까.’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a kho rāmasseva ahosi saddhā, mayhaṃpatthi saddhā;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믿음이 있다.
na kho rāmasseva ahosi vīriyaṃ…pe… sati… samādhi… paññā, mayhaṃpatthi paññā.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삼매가 있다. 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통찰지가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0:476.17에서 되살렸습니다.
Yaṃnūnāhaṃ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i tassa dhammassa sacchikiriyāya padaheyya’nti.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문다고 알린 그 법을, 나도 실현하려고 힘써 보리라.’
바라드와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곧바로 그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물렀다. 그리고 우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가 말했다. ‘도반이여, 라마는 이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했는가?’ ‘도반이여, 라마는 이 정도까지를 두고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했소.’ ‘도반이여, 나도 이 정도까지 이 법을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문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아주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렀다.
‘‘Atha khvāhaṃ, bhāradvāja, yena udako rāmaputto tenupasaṅkamiṃ;
“그래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udakaṃ rāmaputtaṃ etadavocaṃ –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ettāvatā n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렸습니까?’
‘Ettāvatā kho, āvuso, rāmo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ī’ti.
‘벗이여, 라마는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렸습니다.’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벗이여, 나도 이만큼으로 이 법을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에게 이득이오. 우리에게 큰 복이오. 그대 같은 존자를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동료로 보게 되었으니. 라마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한 그 법을, 그대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무르오. 그대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머무르는 그 법을, 라마가 스스로 직접 알아 증득하고 선언했소. 라마가 안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라마가 알았소. 라마가 그러했듯 그대가 그러하고, 그대가 그러하듯 라마가 그러했소. 도반이여, 이제 어서 오시오. 그대가 이 무리를 이끄시오.’ 이렇게 바라드와자여,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동료인 우다까 라마뿟따는 나를 스승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나를 크게 공경하였다.
‘Lābhā no, āvuso, suladdhaṃ no, āvuso, ye mayaṃ āyasmantaṃ tādisaṃ sabrahmacāriṃ passāma.
‘벗이여, 우리에게는 이득입니다, 벗이여, 우리는 참으로 잘 얻었습니다, 그대 같은 존자를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로 보게 되었으니.
Iti y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t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이와 같이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린 그 법을 그대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물고,
yaṃ tv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si taṃ dhammaṃ rām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si.
그대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어 머무는 그 법을 라마가 스스로 곧바로 알아 실현하고 갖추었다고 알렸습니다.
Iti y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t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yaṃ tvaṃ dhammaṃ jānāsi taṃ dhammaṃ rāmo abhiññāsi.
이와 같이 라마가 곧바로 안 그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그 법을 라마가 곧바로 알았습니다.
Iti yādiso rāmo ahosi tādiso tuvaṃ, yādiso tuvaṃ tādiso rāmo ahosi.
이와 같이 라마가 어떠했으면 그대도 그러하고, 그대가 어떠하면 라마도 그러했습니다.
Ehi dāni, āvuso, tuvaṃ imaṃ gaṇaṃ pariharā’ti.
자, 벗이여, 이제 그대가 이 무리를 이끄십시오.’
Iti kho, bhāradvāja, udako rāmaputto sabrahmacārī me samāno ācariyaṭṭhāne maṃ ṭhapesi, uḷārāya ca maṃ pūjāya pūjesi.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하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와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이이면서도 나를 스승의 자리에 세우고, 나를 크게 공경하여 받들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에서 벗어남으로도, 소멸로도 이끌지 못한다. 가라앉음으로도, 직접 앎으로도, 바른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겨우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나는 데까지만 이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싫증을 내며 떠났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pattiyā’ti.
‘이 법은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욕이 사라짐으로도, 소멸로도, 고요해짐으로도, 곧바로 앎으로도, 온전한 깨달음으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못하고, 오직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끌 뿐이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그 법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고, 그 법에 싫증을 내어 떠나갔다.
477
바라드와자여, 나는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찾고 위없는 평온의 으뜸가는 경지를 구하며, 마가다 지방을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나는 아름다운 땅과 보기 좋은 숲을 보았다. 맑고 얕아 건너기 좋은 곳이 많은 아름다운 강도 보았다. 사방에는 탁발할 마을들이 있었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magadhesu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uruveḷā senānigamo tadavasariṃ.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무엇이 유익한지 찾고 위없는 고요의 빼어난 경지를 구하며 마가다에서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Tatthaddasaṃ ramaṇīyaṃ bhūmibhāgaṃ, pāsādikañca vanasaṇḍaṃ, nadiñca sandantiṃ setakaṃ supatitthaṃ ramaṇīyaṃ, samantā ca gocaragāmaṃ.
거기서 나는 마음에 드는 땅과, 보기 좋은 숲과, 맑게 흐르고 기슭이 좋고 마음에 드는 강과, 둘레의 탁발할 마을을 보았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구나. 보기 좋은 숲이 있다. 맑은 강이 건너기 좋은 곳을 이루며 아름답게 흐르고, 사방에 탁발할 마을이 있다. 정진을 바라는 양가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ramaṇīyo vata, bho, bhūmibhāgo, pāsādiko ca vanasaṇḍo, nadī ca sandati setakā supatitthā ramaṇīyā, samantā ca gocaragāmo.
‘아, 참으로 마음에 드는 땅이구나, 숲도 보기 좋고, 강은 맑게 흐르고 기슭이 좋고 마음에 들며, 둘레에는 탁발할 마을이 있구나.
Alaṃ vatidaṃ kulaputtassa padhānatthikassa padhānāyā’ti.
이곳이면 애써 정진하려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넉넉하다.’
바라드와자여, 그래서 나는 바로 그곳에 앉았다. ‘정진하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비유 세 가지가 떠올랐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attheva nisīdiṃ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는 바로 거기에 앉았다.
‘alamidaṃ padhānāyā’ti.
‘이곳이면 정진하기에 넉넉하다.’
Apissu maṃ, bhāradvāja, tisso upamā paṭibhaṃsu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그때 내게 세 가지 비유가 저절로 떠올랐으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바라드와자여, 물기 많고 축축한 생나무 토막을 물속에 담가 두었다고 하자.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겠다. 열기를 드러내겠다.’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속에 담긴 생나무 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기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Seyyathāpi, bhāradvāj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udake nikkhittaṃ.
“바라드와자여, 예컨대 물에 담가 둔, 물기 있고 축축한 나무토막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목을 들고 와서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나는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내겠다’고 한다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bhāradvāja, api nu so puriso amuṃ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udak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바라드와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 담가 둔 저 물기 있고 축축한 나무토막을, 위쪽 부싯목을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 나무는 물기 많은 생나무이고, 게다가 물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o gotam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tañca pana udake nikkhittaṃ;
고따마 존자시여, 저 나무토막은 물기 있고 축축한 데다, 게다가 물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리고 그 사람은 오직 피로와 곤란의 몫만 얻을 뿐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과 마음으로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지 못한 채 지내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 안에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애착, 미혹, 갈증, 열기가 아직 잘 버려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고 하자. 그 존귀한 사문·바라문들은 정진으로 인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수 있다. 그래도 앎과 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이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이룰 수 없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이 떠오른 첫 번째 비유이다.
‘‘Evameva kho, bhāradvāj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a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na suppahīno hoti na suppaṭippassaddho,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지 않은 채 지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누구든, 그들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착,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이 안으로 잘 버려지지도 않고 잘 가라앉지도 않았다면,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No ca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Ayaṃ kho maṃ, bhāradvāja, paṭham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게 저절로 떠오른 첫째 비유이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478
바라드와자여, 또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두 번째 비유가 떠올랐다. 물기 많고 축축한 생나무 토막을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두었다고 하자.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겠다. 열기를 드러내겠다.’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마른 땅에 놓인 그 생나무 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기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Aparāpi kho maṃ, bhāradvāja, du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또 내게 둘째 비유가 저절로 떠올랐으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Seyyathāpi, bhāradvāj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바라드와자여, 예컨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 둔, 물기 있고 축축한 나무토막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목을 들고 와서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나는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내겠다’고 한다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bhāradvāja, api nu so puriso amuṃ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바라드와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 둔 저 물기 있고 축축한 나무토막을, 위쪽 부싯목을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 나무는 물기 많은 생나무입니다.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지치고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No hidaṃ, bho gotama.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o gotama, allaṃ kaṭṭhaṃ sasnehaṃ, kiñcāpi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고따마 존자시여, 저 나무토막은, 비록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더라도, 물기 있고 축축하기 때문입니다.
yāvadeva ca pana so puriso kilamathassa vighātassa bhāgī assā’’ti.
그리고 그 사람은 오직 피로와 곤란의 몫만 얻을 뿐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과 마음으로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지내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 안에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애착, 미혹, 갈증, 열기가 아직 잘 버려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고 하자. 그 존귀한 사문·바라문들은 정진으로 인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수 있다. 그래도 앎과 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이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이룰 수 없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이 떠오른 두 번째 비유이다.
‘‘Evameva kho, bhāradvāj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na suppahīno hoti na suppaṭippassaddho,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지내더라도, 그들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착,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이 안으로 잘 버려지지도 않고 잘 가라앉지도 않았다면, 그런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누구든,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No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a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Ayaṃ kho maṃ, bhāradvāja, du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게 저절로 떠오른 둘째 비유이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479
바라드와자여, 또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세 번째 비유가 떠올랐다. 바싹 마른 나무 토막을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두었다고 하자.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나무를 들고 와서 이렇게 생각한다. ‘불을 일으키겠다. 열기를 드러내겠다.’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마른 땅에 놓인 그 마른 나무 토막에 위쪽 부싯나무를 대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기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Aparāpi kho maṃ, bhāradvāja, ta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또 내게 셋째 비유가 저절로 떠올랐으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Seyyathāpi, bhāradvāja,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바라드와자여, 예컨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 둔, 바싹 마르고 진이 빠진 나무토막이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uttarāraṇiṃ ādāya –
그때 어떤 사람이 위쪽 부싯목을 들고 와서
‘aggiṃ abhinibbattessāmi, tejo pātukarissāmī’ti.
‘나는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내겠다’고 한다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bhāradvāja, api nu so puriso amuṃ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ṃ uttarāraṇiṃ ādāya abhimanthento aggiṃ abhinibbatteyya, tejo pātukareyyā’’ti?
바라드와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아 둔 저 바싹 마르고 진이 빠진 나무토막을, 위쪽 부싯목을 들고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왜 그렇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 나무는 마른 나무이고, 게다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Evaṃ bho gotama.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o gotama, sukkhaṃ kaṭṭhaṃ koḷāpaṃ, tañca pana ārakā udakā thale nikkhitta’’nti.
고따마 존자시여, 저 나무토막은 바싹 마르고 진이 빠진 데다, 게다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땅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과 마음으로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지내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 안에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애착, 미혹, 갈증, 열기가 잘 버려지고 잘 가라앉았다고 하자. 그 존귀한 사문·바라문들은 정진으로 인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수 있다. 그래도 앎과 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그들이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이룰 수 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이 떠오른 세 번째 비유이다. 바라드와자여, 이 세 가지 비유가 나에게 놀랍지 않은, 전에 들어 본 적 없이 떠올랐다.
‘‘Evameva kho, bhāradvāja,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kāyena ceva cittena ca kāmehi vūpakaṭṭhā viharanti, yo ca nesaṃ kāmesu kāmacchando kāmasneho kāmamucchā kāmapipāsā kāmapariḷāho so ca ajjhattaṃ suppahīno hoti suppaṭippassaddho, opakkamikā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바라드와자여, 이와 같이,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지내고, 그들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착,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이 안으로 잘 버려지고 잘 가라앉은, 그런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누구든,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No c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bhabbāva te ñāṇāya dassanāya anuttarāya sambodhāya.
그분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 가하는 괴롭고 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온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Ayaṃ kho maṃ, bhāradvāja, tatiyā upamā paṭibhāsi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게 저절로 떠오른 셋째 비유이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Imā kho maṃ, bhāradvāja, tisso upamā paṭibhaṃsu anacchariyā pubbe assutapubbā.
바라드와자여, 이 세 가지 비유가 내게 저절로 떠올랐으니,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480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 마음을 눌러 붙들고 짓눌러 괴롭혀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 마음을 눌러 붙들고 짓눌러 괴롭혔다. 그러자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힘센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머리나 어깨를 붙잡아 누르고 짓이기고 괴롭히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괴롭히며 겨드랑이에서 땀을 흘렸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eyyaṃ abhinippīḷeyyaṃ abhisantāpeyya’nti.
‘차라리 나는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고, 마음으로 마음을 틀어쥐고 짓누르고 태워 버리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āmi abhinippīḷemi abhisantāpemi.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고, 마음으로 마음을 틀어쥐고 짓누르고 태웠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ato abhinippīḷayato abhisantāpayato kacchehi sedā muccanti.
바라드와자여,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고, 마음으로 마음을 틀어쥐고 짓누르고 태우는 내게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Seyyathāpi, bhāradvāja, balavā puriso dubbalataraṃ purisaṃ sīse vā gahetvā khandhe vā gahetvā abhiniggaṇheyya abhinippīḷeyya abhisantāpeyya, evameva kho me, bhāradvāja,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ato abhinippīḷayato abhisantāpayato kacchehi sedā muccanti.
바라드와자여, 마치 힘센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머리를 붙잡거나 어깨를 붙잡아 틀어쥐고 짓누르고 태우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이로 이를 맞물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고, 마음으로 마음을 틀어쥐고 짓누르고 태우는 내게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다;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481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숨을 막자 바람이 귓구멍으로 빠져나가며 몹시 큰 소리가 났다. 대장장이가 풀무를 불 때 큰 소리가 나는 것과 같았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차라리 나는 숨 없는 선을 닦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입과 코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kaṇṇasotehi vātānaṃ nikkhamantānaṃ adhimatto saddo hoti.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귓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며 엄청난 소리가 났다.
Seyyathāpi nāma kammāragaggariyā dhamamānāya adhimatto saddo hoti, evameva kho me,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kaṇṇasotehi vātānaṃ nikkhamantānaṃ adhimatto saddo hoti.
마치 대장장이의 풀무를 불 때 엄청난 소리가 나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귓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며 엄청난 소리가 났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다;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사나운 바람이 머리를 쳤다.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머리를 쪼개는 것과 같았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차라리 나는 숨 없는 선을 닦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엄청난 바람이 정수리를 후려쳤다.
Seyyathāpi, bhāradvāja, balavā puriso, tiṇhena sikharena muddhani abhimattheyya, evameva kho me,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바라드와자여,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정수리를 후벼 뚫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엄청난 바람이 정수리를 후려쳤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다;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칭칭 동여매는 것과 같았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차라리 나는 숨 없는 선을 닦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honti.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머리에 엄청난 두통이 생겼다.
Seyyathāpi, bhāradvāja, balavā puriso daḷhena varattakkhaṇḍena sīse sīsaveṭhaṃ dadeyya, evameva kho,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honti.
바라드와자여, 마치 힘센 사람이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에 머리띠를 조이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머리에 엄청난 두통이 생겼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다;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사나운 바람이 뱃속을 도려냈다.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제자가 날카로운 칼로 소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았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차라리 나는 숨 없는 선을 닦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kucchiṃ parikantanti.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엄청난 바람이 배를 도려냈다.
Seyyathāpi, bhāradvāja,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tiṇhena govikantanena kucchiṃ parikanteyya, evameva kho me,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ā vātā kucchiṃ parikantanti.
바라드와자여, 마치 솜씨 좋은 소백정이나 소백정의 제자가 날카로운 소 잡는 칼로 배를 도려내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엄청난 바람이 배를 도려냈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다;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 않는 선정에 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러자 온몸이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힘센 두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양팔을 하나씩 붙들고 숯불 구덩이 위에서 지지고 태우는 것과 같았다. 나의 정진은 힘차게 일어나 느슨하지 않았다. 사띠도 확립되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격앙되어 가라앉지 않았다. 괴로운 노력에 시달려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
‘차라리 나는 숨 없는 선을 닦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 uparundh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o kāyasmiṃ ḍāho hoti.
바라드와자여,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몸에 엄청난 열이 났다.
Seyyathāpi, bhāradvāja, dve balavanto purisā dubbalataraṃ purisaṃ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yā santāpeyyuṃ samparitāpeyyuṃ, evameva kho me, bhāradvāja, mukhato ca nāsato ca kaṇṇato ca assāsapassāsesu uparuddhesu adhimatto kāyasmiṃ ḍāho hoti.
바라드와자여,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자기들보다 약한 사람을 양쪽 팔로 붙잡아 숯불 구덩이에 대고 태우고 지지듯이, 바로 그와 같이 바라드와자여, 내가 입과 코와 귀로 드나드는 숨을 막자, 몸에 엄청난 열이 났다.
Āraddhaṃ kho pana me, bhāradvāj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바라드와자여, 그런데도 내게 정진은 우러나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히지 않았으며, 그러나 내 몸은 긴장되어 가라앉지 않았으니, 바로 그 괴로운 정진으로 정진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를 보고 신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문 고따마가 죽었구나.’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죽은 것이 아니다. 아직 죽어 가고 있을 뿐이다.’ 또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죽은 것도 아니고 죽어 가는 것도 아니다.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원래 이런 모습으로 지내는 법이다.’
Apissu maṃ, bhāradvāja, devatā disvā evamāhaṃsu –
바라드와자여, 게다가 신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kālaṅkat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가 죽었다.’
Ekaccā devatā evamāhaṃsu –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laṅkato samaṇo gotamo, api ca kālaṅkarotī’ti.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다. 다만 죽어 가고 있다.’
Ekaccā devatā evamāhaṃsu –
어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laṅkato samaṇo gotamo, nāpi kālaṅkaroti;
‘사문 고따마는 죽지 않았고, 죽어 가고 있지도 않다.
arahaṃ samaṇo gotamo, vihārotveva so arahato evarūpo hotī’ti.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에게는 이런 머묾이 있을 뿐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예 음식을 완전히 끊는 수행을 해 보면 어떨까?’ 그러자 신들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음식을 완전히 끊는 수행은 하지 마십시오. 존자께서 그 수행을 하신다면, 저희가 천상의 정기를 털구멍으로 불어넣어 드리겠습니다. 그 정기로 목숨을 이어 가십시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완전한 단식을 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신들이 불어넣어 주는 천상의 정기로 목숨을 이어 간다면, 그것은 내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들을 물리치며 “그만두시오.” 하고 말했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eyya’nti.
‘차라리 나는 음식을 아주 끊어 버리는 실천에 들어가자.’
Atha kho maṃ, bhāradvāja, devatā upasaṅkamitvā etadavocuṃ –
바라드와자여, 그러자 신들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mā kho tvaṃ, mārisa,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i.
‘존자시여, 그대는 음식을 아주 끊어 버리는 실천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Sace kho tvaṃ, mārisa, sabbaso āhārupacchedāya paṭipajjissasi, tassa te mayaṃ dibbaṃ ojaṃ lomakūpehi ajjhohāressāma.
존자시여, 만일 그대가 음식을 아주 끊어 버리는 실천에 들어가신다면, 저희가 그대에게 하늘의 자양분을 털구멍으로 넣어 드리겠습니다.
Tāya tvaṃ yāpessasī’ti.
그대는 그것으로 살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hañceva kho pana sabbaso ajajjitaṃ paṭijāneyyaṃ, imā ca me devatā dibbaṃ ojaṃ lomakūpehi ajjhohāreyyuṃ, tāya cāhaṃ yāpeyyaṃ.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공언하는데, 이 신들이 내게 하늘의 자양분을 털구멍으로 넣어 주고 내가 그것으로 살아간다면,
Taṃ mamassa musā’ti.
그것은 내게 거짓말이 될 것이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tā devatā paccācikkhāmi, ‘hala’nti vadāmi.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그 신들을 물리치며 ‘그만두라’고 말했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음식을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만 먹어 보면 어떨까? 녹두 국물이든 콩 국물이든 완두 국물이든 말린 완두 국물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 한 움큼씩만 먹었다. 녹두 국물이든 콩 국물이든 완두 국물이든 말린 완두 국물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먹자 내 몸은 극도로 수척해졌다. 적게 먹은 탓에 팔다리는 아시띠까 덩굴이나 까알라 덩굴의 마디처럼 되었다. 엉덩이는 낙타 발굽처럼 되었다. 등뼈는 구슬을 꿴 줄처럼 올록볼록 튀어나오고 파였다. 갈비뼈는 낡은 집의 서까래가 허물어져 내린 것처럼 앙상하게 어긋났다. 눈동자는 깊은 우물 속에 비친 별빛처럼, 움푹 들어간 눈구멍 깊숙이 가물거렸다. 머리 가죽은 덜 익은 쓴 박을 베어 바람과 볕에 두었을 때처럼 오그라들고 말라 버렸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eyyaṃ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nti.
‘차라리 나는 음식을 조금씩 조금씩, 한 움큼 한 움큼 먹자 — 녹두즙이든, 나물콩즙이든, 동부콩즙이든, 완두즙이든.’
So kho ahaṃ, bhāradvāja,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음식을 조금씩 조금씩, 한 움큼 한 움큼 먹었다 — 녹두즙이든, 나물콩즙이든, 동부콩즙이든, 완두즙이든.
Tassa mayhaṃ, bhāradvāja, thokaṃ thokaṃ āhāraṃ āhārayato pasataṃ pasataṃ, yadi vā muggayūsaṃ, yadi vā kulatthayūsaṃ, yadi vā kaḷāyayūsaṃ, yadi vā hareṇukayūsaṃ, adhimattakasimānaṃ patto kāyo hoti.
바라드와자여, 음식을 조금씩 조금씩, 한 움큼 한 움큼, 녹두즙이든 나물콩즙이든 동부콩즙이든 완두즙이든 그렇게 먹는 내 몸은 극도로 여위었다.
Seyyathāpi nāma āsītikapabbāni vā kāḷapabbāni vā, evamevassu me aṅgapaccaṅgāni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아시띠까 덩굴의 마디나 깔라 덩굴의 마디처럼, 바로 그와 같이 내 팔다리 마디마디가 되었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eyyathāpi nāma oṭṭhapadaṃ, evamevassu me ānisadaṃ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낙타 발굽처럼, 바로 그와 같이 내 엉덩이가 되었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eyyathāpi nāma vaṭṭanāvaḷī, evamevassu me piṭṭhikaṇṭako uṇṇatāvan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염주 알을 꿴 줄처럼, 바로 그와 같이 내 등뼈가 울퉁불퉁 드러났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eyyathāpi nāma jarasālāya gopānasiyo oluggaviluggā bhavanti, evamevassu me phāsuḷiyo oluggaviluggā bhav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낡은 집의 서까래가 내려앉아 어긋나듯이, 바로 그와 같이 내 갈비뼈가 내려앉아 어긋났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eyyathāpi nāma gambhīre udapāne udaka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evamevassu me akkhikūpesu akkhitārakā gambhīragatā okkhāyikā dissanti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친 물빛이 깊이 가라앉아 움푹 들어가 보이듯이, 바로 그와 같이 내 눈구멍 속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 움푹 들어가 보였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eyyathāpi nāma tittakālābu āmakacchinno vātātapena saṃphuṭito hoti sammilāto, evamevassu me sīsacchavi saṃphuṭitā hoti sammilātā tāyevappāhāratāya.
마치 덜 익었을 때 딴 쓴 조롱박이 바람과 볕에 쭈그러지고 시들듯이, 바로 그와 같이 내 머리 가죽이 쭈그러지고 시들었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뱃가죽을 만져 보자.’ 하면 등뼈가 잡혔다. ‘등뼈를 만져 보자.’ 하면 뱃가죽이 잡혔다. 적게 먹은 탓에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대소변을 보아야겠다.’ 하고 일어서다가도 그 자리에 고꾸라지곤 했다. 이 몸을 달래 보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쓰다듬으면, 뿌리가 썩은 털이 몸에서 우수수 빠졌다. 이것도 적게 먹은 탓이었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udaracchaviṃ parimasissāmī’ti piṭṭhikaṇṭakaṃyeva pariggaṇhāmi, ‘piṭṭhikaṇṭakaṃ parimasissāmī’ti udaracchaviṃyeva pariggaṇhāmi;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뱃가죽을 만지리라’ 하고서 바로 등뼈를 붙잡았고, ‘등뼈를 만지리라’ 하고서 바로 뱃가죽을 붙잡았다;
yāvassu me, bhāradvāja, udaracchavi piṭṭhikaṇṭakaṃ allīnā hoti tāyevappāhāratāya.
바라드와자여, 그토록 내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었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vaccaṃ vā muttaṃ vā karissāmī’ti tattheva avakujjo papatāmi tāyevappāhāratāya.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대변이나 소변을 보리라’ 하고서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졌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imameva kāyaṃ assāsento pāṇinā gattāni anumajjāmi.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이 몸을 달래려고 손으로 팔다리를 문질렀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pāṇinā gattāni anumajjato pūtimūlāni lomāni kāyasmā papatanti tāyevappāhāratāya.
바라드와자여, 손으로 팔다리를 문지르는 내게서 뿌리가 썩은 털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바라드와자여,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은 것이 아니라 갈색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검지도 갈색도 아니고 망구라 물고기 같은 피부색이다.’ 그토록 맑고 깨끗했던 내 살갗 빛이, 적게 먹은 탓에 그만큼 상해 버렸다.
Apissu maṃ, bhāradvāja, manussā disvā evamāhaṃsu –
바라드와자여, 게다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kāḷ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검다.’
Ekacce manussā evamāhaṃsu –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ḷo samaṇo gotamo, sām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검지 않다. 사문 고따마는 거무스름하다.’
Ekacce manussā evamāhaṃsu –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
‘na kāḷo samaṇo gotamo napi sāmo, maṅguracchavi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검지도 않고 거무스름하지도 않다. 사문 고따마는 살갗이 누르스름하다.’;
yāvassu me, bhāradvāja, tāva parisuddho chavivaṇṇo pariyodāto upahato hoti tāyevappāhāratāya.
바라드와자여, 그토록 맑고 깨끗하던 내 살빛이 상했으니, 바로 그 적게 먹음 때문이었다.
482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과거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몸을 괴롭히는 고통스럽고 격렬하고 거칠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해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래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그런 느낌을 겪게 된다 해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그런 느낌을 겪고 있다 해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혹독한 고행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자다운 앎과 봄의 뛰어난 경지를 얻지 못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e kho keci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ṃsu,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과거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스스로 가한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겪었다 해도, 이것이 그 끝이지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yepi hi keci anāga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ss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미래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스스로 가한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겪는다 해도, 이것이 그 끝이지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yepi hi keci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지금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스스로 가한 괴롭고 격심하고 거칠고 혹독한 느낌을 겪는다 해도, 이것이 그 끝이지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Na kho panāh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adhigacchāmi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그런데도 나는 이 혹독한 고행으로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걸맞은 뛰어난 앎과 봄에 이르지 못한다.
Siyā nu kho añño maggo bodhāyā’ti?
깨달음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버지 사까의 농사일을 돕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서늘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나고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나, 첫 번째 선정에 들어 지냈다. 거기에는 일으킨 생각과 머문 생각이 있었고, 홀로 떠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그러자 기억을 따라 알아차림이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그런데 나는 이런 일을 기억한다 — 아버지 삭까 사람의 농사 일터에서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물렀던 일을.
Siyā nu kho eso maggo bodhāyā’ti?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Tassa mayhaṃ, bhāradvāj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그 기억을 따르는 의식이 일어났다 —
‘eseva maggo bodhāyā’ti.
‘바로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째서 그 즐거움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감각적 욕망과도 해로운 상태와도 무관한 즐거움이 아닌가?’ 그리고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 즐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과도 해로운 상태와도 무관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kiṃ nu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감각적 욕망과도 상관없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그 행복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감각적 욕망과도 상관없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그 행복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483
바라드와자여,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몸이 극도로 수척해서는 그 즐거움을 얻기가 쉽지 않다. 거친 음식, 곧 밥과 죽을 먹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거친 음식인 밥과 죽을 먹었다.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바라드와자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na kho taṃ sukaraṃ sukhaṃ adhigantuṃ evaṃ adhimattakasimānaṃ pattakāyena.
‘이렇게 극도로 여윈 몸으로는 그 행복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yyaṃ odanakummāsa’nti.
차라리 나는 든든한 음식을, 밥과 보리죽을 먹자.’
S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든든한 음식을, 밥과 보리죽을 먹었다.
바라드와자여, 그 무렵 다섯 비구가 나를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 ‘사문 고따마가 법을 얻으면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거친 음식인 밥과 죽을 먹자, 그 다섯 비구는 실망하여 나를 떠나 버렸다. ‘사문 고따마는 사치스러워졌다. 정진을 포기하고 호사스러운 생활로 돌아갔다.’ 하면서였다.
Tena kho pana maṃ, bhāradvāja, samayena pañcavaggiyā bhikkhū paccupaṭṭhitā honti –
바라드와자여, 그때 다섯 비구가 나를 시중들고 있었다 —
‘yaṃ kho samaṇo gotamo dhammaṃ adhigamissati taṃ no ārocessatī’ti.
‘사문 고따마가 얻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Yat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atha me te pañcavaggiyā bhikkhū nibbijja pakkamiṃsu –
바라드와자여, 그러나 내가 든든한 음식을, 밥과 보리죽을 먹자, 그 다섯 비구는 내게 실망하여 떠나가 버렸다 —
‘bāhulliko samaṇo gotam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ā’ti.
‘사문 고따마는 사치스러워졌다. 정진을 그르치고 사치로 되돌아갔다.’
바라드와자여, 나는 거친 음식을 먹고 기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서 멀리 떠나 첫 번째 선정에 들어 지냈다. 다음으로 일으킨 생각과 머문 생각이 가라앉았다.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생각도 없고 머묾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들어 지냈다. 세 번째 선정에도, 네 번째 선정에도 그렇게 들어 지냈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tvā balaṃ gahetvā vivicceva kāmehi…pe…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바라드와자여, 그리하여 나는 든든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물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0:482.8에서 되살렸습니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물렀다. 희열을 떠나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꼈으니,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일컫는 그 제3선에 들어 머물렀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에 들어 머물렀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26:287.28 ~ PN:mn26/287.30에서 되살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졌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쉬웠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 나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해 냈다. 곧 한 생, 두 생, 그렇게 이어지는 생들이었다. 모습과 사연을 갖춘 여러 가지 전생이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초경에 내가 얻은 첫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흩어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흩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힘써 지내는 이에게 으레 그러하듯이.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내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나는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했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의 겁도, 여러 팽창의 겁도, 여러 수축과 팽창의 겁도 기억했다 — ‘거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것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수명이 다했다;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것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수명이 다했다;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특징과 내력을 갖추어 갖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68.26 ~ PN:mn6/68.29에서 되살렸습니다.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얻은 첫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은 부서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tamo vihato, āloko uppanno;
어둠은 부서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484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졌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쉬웠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 나는 맑고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천한 이도 귀한 이도, 잘생긴 이도 못생긴 이도 보았다. 좋은 곳에 가는 이도 나쁜 곳에 가는 이도 보았다.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알았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중경에 내가 얻은 두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흩어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흩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힘써 지내는 이에게 으레 그러하듯이.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내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pe…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고, 못난 이와 잘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보며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알았다 —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행을 하고, 말로 나쁜 행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으니,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여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은 행을 하고, 말로 좋은 행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으니,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넘어선 하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고, 못난 이와 잘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보며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알았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경에 얻은 두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은 부서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6:68.32 ~ PN:mn6/68.33에서 되살렸습니다.
tamo vihato, āloko uppanno;
어둠은 부서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이렇게 마음이 집중되어 맑고 깨끗해졌다. 티가 없고 오염이 사라졌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쉬웠고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했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하고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 알았다. 또 ‘이것이 번뇌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하고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 알았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자, 내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났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벗어났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났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 하는 앎이 생겼다. 나는 알았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다. 이제 다시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내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그런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으며,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났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다 살았으며,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알았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후경에 내가 얻은 세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이 흩어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어둠이 흩어지고 빛이 일어났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힘써 지내는 이에게 으레 그러하듯이."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경에 얻은 세 번째 밝은 앎이다. 무명은 부서지고 밝은 앎이 일어났으며;
tamo vihato, āloko uppanno;
어둠은 부서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ti.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485
이 말씀을 듣고 청년 상가라바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 하신 노력은 흔들림 없는 서원을 지닌 노력이었고, 참된 사람의 서원을 지닌 노력이었습니다. 아라한이자 바르게 깨달은 분께 어울리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따마 존자시여, 신들은 있습니까?"
Evaṃ vutte, saṅgārav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ṭṭhitavataṃ bhoto gotamassa padhānaṃ ahosi, sappurisavataṃ bhoto gotamassa padhānaṃ ahosi;
“고따마 존자의 정진은 흔들림 없는 실천이었고, 고따마 존자의 정진은 참된 사람의 실천이었습니다;
yathā taṃ arahato sammāsambuddhassa.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어울리는 그대로입니다.
Kiṃ nu kho, bho gotama, atthi devā’’ti?
고따마 존자시여, 신들은 있습니까?”
"바라드와자여, 나는 신들이 있다는 것을 이치에 닿는 근거로 안다. 곧 더 높은 신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찌하여 ‘신들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이렇게 대답하십니까? ‘바라드와자여, 나는 신들이 있다는 것을 이치에 닿는 근거로 안다. 곧 더 높은 신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헛되고 거짓이 되지 않겠습니까?"[불확실]
‘‘Ṭhānaso metaṃ, bhāradvāja, viditaṃ yadidaṃ –
“바라드와자여, 나는 이것을 이치로 안다. 곧 —
adhidevā’’ti.
‘신들에 관한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iṃ nu kho, bho gotama, ‘atthi devā’ti puṭṭho samāno ‘ṭhānaso metaṃ, bhāradvāja, viditaṃ yadidaṃ adhidevā’ti vadesi.
“고따마 존자시여, 어찌하여 ‘신들은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받고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이것을 이치로 안다. 곧 신들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까?
Nanu, bho gotama, evaṃ sante tucchā musā hot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그것은 헛되고 거짓된 말이 되지 않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들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하자. 이때 ‘신들이 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치에 닿는 근거로 안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이 점에서 틀림없이 이렇게 결론지을 것이다. ‘신들이 있다.’ 하고."
‘‘‘Atthi devā’ti, bhāradvāja, puṭṭho samāno ‘atthi devā’ti yo vadeyya, ‘ṭhānaso me viditā’ti yo vadeyya;
“바라드와자여, ‘신들은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받고서 ‘신들은 있다’고 말하고 ‘나는 그것을 이치로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atha khvettha viññunā purisena ekaṃsena niṭṭhaṃ gantabbaṃ yadidaṃ –
그렇다면 여기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한 가지로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곧 —
‘atthi devā’’’ti.
‘신들은 있다’고.”
"그런데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찌하여 처음부터 분명히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세상에서는 이것이 널리 인정된 말이다. 곧 ‘신들이 있다.’ 하는 것이."
‘‘Kissa pana me bhavaṃ gotamo ādikeneva na byākāsī’’ti?
“그런데 어찌하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제게 처음부터 그렇게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Uccena sammataṃ kho etaṃ, bhāradvāja, lokasmiṃ yadidaṃ –
“바라드와자여, 이것은 세상에서 높이 인정되는 것이다. 곧 —
‘atthi devā’’’ti.
‘신들은 있다’고.”
486
이 말씀을 듣고 청년 상가라바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하십니다. 어둠 속에 기름등불을 들어 올려, 눈 있는 사람이 형상을 보게 하듯 하십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ṃ vutte, saṅgāravo māṇav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고 —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바로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그리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 신자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상가라바경이 끝났다. 열 번째 경이다.
Es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Saṅgārav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상가라와 경이 끝났다. 열 번째다.
Brāhmaṇavaggo niṭṭhito pañcamo.
바라문 품이 끝났다. 다섯 번째다.
Tassuddānaṃ –
그 목록은 이러하다 —
Brahmāyu selassalāyano, ghoṭamukho ca brāhmaṇo;
브라흐마유, 셀라, 앗살라야나, 그리고 고따무카 바라문;
Caṅkī esu dhanañjāni, vāseṭṭho subhagāravoti.
짱끼, 에수까리, 다난자니, 와셋타, 수바, 상가라와이다.
Idaṃ vaggānamuddānaṃ –
이것이 품들의 목록이다 —
Vaggo gahapati bhikkhu, paribbājakanāmako;
장자 품, 비구 품, 유행자라 이름한 품;
Rājavaggo brāhmaṇoti, pañca majjhimaāgame.
왕 품과 바라문 품이니, 중부에 이 다섯 품이 있다.
Majjhimapaṇṇāsakaṃ samattaṃ.
중간 오십 편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