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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102

빤짯따야 경

Pañcattayasuttaṃ

교차 검사교차 검사 147

2. Pañcattayasuttaṃ

2. 빤짯따야 경

PN:mn102/0.3 · 교차 검사

21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PN:mn102/21.1 · 교차 검사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PN:mn102/21.2 · 교차 검사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PN:mn102/21.3 · 교차 검사

‘‘bhikkhavo’’ti.

“비구들이여.”

PN:mn102/21.4 · 교차 검사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PN:mn102/21.5 · 교차 검사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mn102/21.6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죽은 뒤의 일을 헤아리고, 그에 관한 견해를 품는다. 그래서 죽은 뒤에 대해 갖가지 주장을 편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죽은 뒤에도 자아는 병들지 않고, 인식을 지닌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은 뒤에도 자아는 병들지 않고, 인식이 없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내세운다. ‘죽은 뒤에도 자아는 병들지 않고, 인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이들은 존재하는 중생이 끊어지고 사라져 없어진다고 내세운다. 또 다른 이들은 지금 여기서 열반에 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그들의 주장은 셋으로 모인다.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있다는 주장, 중생이 끊어져 없어진다는 주장, 지금 여기서 열반에 든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다섯이었던 것이 셋이 되고, 셋이었던 것이 다섯이 된다. 이것이 다섯과 셋에 대한 개요이다.”[불확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aparantakappikā aparantānudiṭṭhino a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vuttipadāni abhivadanti.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미래를 헤아리는 자들이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지닌 자들이어서, 미래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하는 구절들을 내세운다.

PN:mn102/21.7 · 교차 검사

‘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자아는 인식을 지닌 것이며,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불확실]

불확실 —

PN:mn102/21.8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내세운다;

PN:mn102/21.9 · 교차 검사

‘a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자아는 인식이 없는 것이며,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

PN:mn102/21.10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내세운다;

PN:mn102/21.11 · 교차 검사

‘nevasaññīnā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자아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며,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

PN:mn102/21.12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이렇게 어떤 이들은 내세운다;

PN:mn102/21.13 · 교차 검사

sato vā pana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diṭṭhadhammanibbānaṃ vā paneke abhivadanti.

혹은 존재하는 중생의 끊어짐과 없어짐과 사라짐을 내세우고, 또 어떤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을 내세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1.14 · 교차 검사

Iti santaṃ vā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sato vā pana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diṭṭhadhammanibbānaṃ vā paneke abhivadanti.

이렇게 그들은 존재하는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혹은 존재하는 중생의 끊어짐과 없어짐과 사라짐을 내세우거나, 또 어떤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열반을 내세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1.15 · 교차 검사

Iti imāni pañca hutvā tīṇi honti, tīṇi hutvā pañca honti –

이렇게 이 다섯은 셋이 되고, 셋은 다섯이 된다 —

PN:mn102/21.16 · 교차 검사

ayamuddeso pañcattayassa.

이것이 ‘다섯과 셋’의 개요다.

PN:mn102/21.17 · 교차 검사

22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이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하나의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작은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한량없는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을 뛰어넘은 또 어떤 이들은 의식으로 두루 채운, 한량없고 흔들림 없는 경지를 주장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불확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eka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āna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pari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ppamāṇ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etaṃ vā panekesaṃ upātivattataṃ viññāṇakasiṇameke abhivadanti appamāṇaṃ āneñjaṃ.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을 지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한결같은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갖가지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제한된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무량한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혹은 이것을 넘어선 어떤 이들은 의식의 까시나를 무량하고 흔들림 없는 것이라고 내세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2.1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그것을 여래는 완전히 안다.

PN:mn102/22.2 · 교차 검사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저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하나의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작은 인식을 지닌다고도 하고, 한량없는 인식을 지닌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인식들 가운데 가장 맑고 으뜸이며 위없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러하다. 형색에 대한 인식이든, 형색 없는 것에 대한 인식이든, 하나라는 인식이든, 여러 가지라는 인식이든, 그 가운데서 말이다.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없다’ 하여, 아무것도 없는 영역을 한량없고 흔들림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지어진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짐이 그치는 길이 있다. 그것이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알고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뛰어넘었다.”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eka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āna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paritt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ppamāṇasaññ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yā vā panetāsaṃ saññānaṃ parisuddhā paramā aggā anuttariyā akkhāyati –

참으로 인식을 지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한결같은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갖가지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제한된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을 지닌 자아를 무량한 인식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혹은 이 인식들 가운데 청정하고 으뜸이고 최상이고 위없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있으니 —

PN:mn102/22.3 · 교차 검사

yadi rūpasaññānaṃ yadi arūpasaññānaṃ yadi ekattasaññānaṃ yadi nānattasaññānaṃ.

물질에 대한 인식들이든, 물질 없음에 대한 인식들이든, 한결같음에 대한 인식들이든, 갖가지임에 대한 인식들이든.

PN:mn102/22.4 · 교차 검사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meke abhivadanti appamāṇaṃ āneñjaṃ.

‘아무것도 없다’며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경지를 무량하고 흔들림 없는 것이라고 내세운다.

PN:mn102/22.5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이 있다’고 —

PN:mn102/22.6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2.7 · 교차 검사

23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이 없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이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인식이 없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한다. 이들은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을 반박한다. 왜 그런가?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며, 인식은 화살이다. 고요하고 뛰어난 것은 바로 ‘인식이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이 없다고 내세우는 저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인식이 없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인식이 없다고도 한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이 없는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운다.

PN:mn102/23.1 · 교차 검사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을 지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들을 이들은 배척한다.

PN:mn102/23.2 · 교차 검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102/23.3 · 교차 검사

Saññā rogo saññā gaṇḍo saññā sallaṃ,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고, 인식은 화살이다.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니, 곧 —

PN:mn102/23.4 · 교차 검사

‘asañña’nti.

‘인식 없음’이다.

PN:mn102/23.5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비구들이여, 그것을 여래는 완전히 안다 — 참으로 인식이 없는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없는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운다.

PN:mn102/23.6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형색을 떠나고, 느낌을 떠나고, 인식을 떠나고, 형성작용들을 떠나서도, 의식의 옴과 감, 죽음과 다시 태어남, 자람과 커짐, 번성을 알려 보이겠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지어진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짐이 그치는 길이 있다. 그것이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알고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뛰어넘었다.”

Yo hi koci, bhikkhave,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ṃ vadeyya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렇게 말한다면 —

PN:mn102/23.7 · 교차 검사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apessāmī’ti –

‘나는 물질과 별도로, 느낌과 별도로, 인식과 별도로, 형성작용들과 별도로, 의식의 옴이나 감이나 죽음이나 태어남이나 자람이나 늘어남이나 커짐을 내세우겠다’고 —

PN:mn102/23.8 · 교차 검사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PN:mn102/23.9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이 있다’고 —

PN:mn102/23.10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3.11 · 교차 검사

24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이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인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그렇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그렇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그렇다고도 한다. 이들은 인식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을 반박하고, 인식이 없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도 반박한다. 왜 그런가?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며, 인식은 화살이고, 인식 없음은 어리둥절함이다. 고요하고 뛰어난 것은 바로 ‘인식도 아니고 인식 없음도 아닌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죽은 뒤에도 병들지 않는 자아가 인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내세우는 저 존귀한 사문과 바라문들은, 그 자아를 이렇게 내세운다. 형색을 지닌 채 그렇다고도 하고, 형색이 없이 그렇다고도 한다. 형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채 그렇다고도 하고, 형색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채 그렇다고도 한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운다.

PN:mn102/24.1 · 교차 검사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을 지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들을 이들은 배척하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도 이들은 배척한다.

PN:mn102/24.2 · 교차 검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102/24.3 · 교차 검사

Saññā rogo saññā gaṇḍo saññā sallaṃ, asaññā sammoho,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고, 인식은 화살이며, 인식 없음은 미혹이다.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니, 곧 —

PN:mn102/24.4 · 교차 검사

‘nevasaññānāsañña’nti.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님’이다.

PN:mn102/24.5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그것을 여래는 완전히 안다.

PN:mn102/24.6 · 교차 검사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a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rūpiñca arūpiñca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nevarūpiṃ nārūpiṃ v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참으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니면서 물질이 없는 것이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거나,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물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물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운다.

PN:mn102/24.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 수 있는 형성작용 정도로 이 영역을 성취했다고 내세운다면, 그것은 이 영역을 성취하는 데 파멸이 된다고 말한다. 이 영역은 형성작용을 성취하는 것만으로 이를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형성작용이 남은 찌꺼기까지 성취해야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어진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짐이 그치는 길이 있다. 그것이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알고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뛰어넘었다.”[불확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asaṅkhāramattena etassa āyatanassa upasampadaṃ paññapenti, byasanañhetaṃ, bhikkhave, akkhāyati etassa āyatanassa upasampadāya.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보인 것·들린 것·감지된 것·알아야 할 것이라는 형성작용의 정도만으로 이 경지에 들어감을 내세운다면,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 경지에 들어가는 데 재앙이라고 일컬어진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4.8 · 교차 검사

Na hetaṃ, bhikkhave, āyatanaṃ saṅkhārasamāpattipattabbamakkhāyati;

비구들이여, 이 경지는 형성작용이 있는 증득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일컬어지지 않는다;

PN:mn102/24.9 · 교차 검사

saṅkhārāvasesasamāpattipattabbametaṃ, bhikkhave, āyatanamakkhāyati.

비구들이여, 이 경지는 형성작용의 남음이 있는 증득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PN:mn102/24.10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이 있다’고 —

PN:mn102/24.11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4.12 · 교차 검사

25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존재하는 중생이 끊어지고 사라져 없어진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이들은 인식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사문과 바라문들을 반박한다. 인식이 없다고 내세우는 이들도 반박하고, 인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내세우는 이들도 반박한다. 왜 그런가? 이 사문과 바라문들은 모두 위를 바라보며 오로지 집착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어서 우리는 존재하리라. 이렇게 죽어서 우리는 존재하리라.’ 마치 장사하러 길을 떠나는 상인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여기서 내게 이것이 생길 것이고, 이것으로 저것을 얻으리라.’ 이 사문과 바라문들도 내게는 그런 상인처럼 보인다. ‘이렇게 죽어서 우리는 존재하리라. 이렇게 죽어서 우리는 존재하리라.’[불확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거기서, 비구들이여, 존재하는 중생의 끊어짐과 없어짐과 사라짐을 내세우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거기서, 비구들이여, 인식을 지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들을 이들은 배척하고, 인식이 없는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도 이들은 배척하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자아를 죽은 뒤에도 병이 없다고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도 이들은 배척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5.1 · 교차 검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mn102/25.2 · 교차 검사

Sabbep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uddhaṃ saraṃ āsattiṃyeva abhivadanti –

이 모든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위로 치달으며 오직 집착만을 내세운다[불확실]

불확실 —

PN:mn102/25.3 · 교차 검사

‘iti pecca bhavissāma, iti pecca bhavissāmā’ti.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PN:mn102/25.4 · 교차 검사

Seyyathāpi nāma vāṇijassa vāṇijjāya gacchato evaṃ hoti –

마치 장사하러 가는 장사꾼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

PN:mn102/25.5 · 교차 검사

‘ito me idaṃ bhavissati, iminā idaṃ lacchāmī’ti, evamev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vāṇijūpamā maññe paṭibhanti –

‘이것으로 내게 이것이 생길 것이다, 이것으로 이것을 얻을 것이다’라고. 꼭 그처럼 이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장사꾼에 비길 만하다고 여겨진다 —

PN:mn102/25.6 · 교차 검사

‘iti pecca bhavissāma, iti pecca bhavissāmā’ti.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에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PN:mn102/25.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존재하는 중생이 끊어지고 사라져 없어진다고 내세우는 저 사문과 바라문들은, 자기 존재가 두렵고 역겨워서 오히려 자기 존재만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맴돈다. 마치 개가 가죽끈으로 튼튼한 기둥이나 말뚝에 묶이면, 바로 그 기둥이나 말뚝 둘레만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맴도는 것과 같다. 저 사문과 바라문들도 그렇다. 자기 존재가 두렵고 역겨워서 오히려 자기 존재만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맴돈다. ‘이것은 지어진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짐이 그치는 길이 있다. 그것이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알고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뛰어넘었다.”[불확실]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그것을 여래는 완전히 안다.

PN:mn102/25.8 · 교차 검사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te sakkāyabhayā sakkāyaparijegucchā sakkāyaññeva anuparidhāvanti anuparivattanti.

참으로 존재하는 중생의 끊어짐과 없어짐과 사라짐을 내세우는 그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한 혐오 때문에, 바로 그 자기 존재를 따라 돌고 따라 맴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mn102/25.9 · 교차 검사

Seyyathāpi nāma sā gaddulabaddho daḷhe thambhe vā khile vā upanibaddho, tameva thambhaṃ vā khilaṃ vā anuparidhāvati anuparivattati;

마치 가죽끈에 묶인 개가 튼튼한 기둥이나 말뚝에 매여, 바로 그 기둥이나 말뚝을 따라 돌고 따라 맴도는 것과 같다;

PN:mn102/25.10 · 교차 검사

evamev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kkāyabhayā sakkāyaparijegucchā sakkāyaññeva anuparidhāvanti anuparivattanti.

꼭 그처럼 이 존자 사문·바라문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한 혐오 때문에, 바로 그 자기 존재를 따라 돌고 따라 맴돈다.

PN:mn102/25.11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이 있다’고 —

PN:mn102/25.12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5.13 · 교차 검사

26

“비구들이여, 죽은 뒤의 일을 헤아리고 그에 관한 견해를 품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죽은 뒤에 대해 갖가지 주장을 편다. 누구든 이 다섯 영역을, 혹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주장한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antakappikā aparantānudiṭṭhino a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vuttipadāni abhivadanti, sabbe te imāneva pañcāyatanāni abhivadanti etesaṃ vā aññataraṃ.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미래를 헤아리는 자들이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지닌 자들이어서 미래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하는 구절들을 내세운다면, 그들 모두는 바로 이 다섯 경지를 내세우거나 이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내세운다.

PN:mn102/26.1 · 교차 검사

27

비구들이여, 사문과 바라문 가운데에는 과거를 헤아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에 관한 견해를 품고, 과거를 두고 갖가지 주장을 편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한다.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지도 않고 영원하지 않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끝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끝이 없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한다. 또 “자아와 세계는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자아와 세계는 끝이 있지도 않고 끝이 없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하나의 인식을 가진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여러 가지 인식을 가진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한다. 또 “자아와 세계는 한정된 인식을 가진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자아와 세계는 한량없는 인식을 가진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즐거울 뿐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괴로울 뿐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한다. 또 “자아와 세계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가진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자아와 세계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어떤 이들은 주장한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pubbantānudiṭṭhino pubb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vuttipadāni abhivadanti.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과거를 헤아리는 자들이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지닌 자들이어서, 과거를 두고 여러 가지 주장의 구절들을 말한다.

PN:mn102/27.1 · 교차 검사

‘Sassato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2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sassato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3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sassato ca asassato ca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기도 하고 항상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4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nevasassato nāsassato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항상한 것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5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ntavā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유한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6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nantavā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무한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7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ntavā ca anantavā ca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8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nevantavā nānantavā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9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ekattasaññ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단일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0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nānattasaññ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다양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1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parittasaññ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제한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2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ppamāṇasaññ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한량없는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3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ekantasukh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즐겁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4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ekantadukkh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괴롭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5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sukhadukkh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6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adukkhamasukh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

PN:mn102/27.17 · 교차 검사

ittheke abhivadanti.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PN:mn102/27.18 · 교차 검사

28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묻는다. 믿음, 취향, 전해 들음, 이치를 따져 봄, 견해를 곰곰이 헤아려 받아들임. 이런 것들에 기대지 않고서, 그들이 오로지 스스로 깨끗하고 맑은 앎을 갖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스스로 깨끗하고 맑은 앎이 없는데도 존경받는 그 사문과 바라문들이 거기서 앎의 한 조각만을 맑게 하려 든다고 하자. 그것 또한 그들에게는 집착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비구들이여, 거기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저 사문·바라문들 —

PN:mn102/28.1 · 교차 검사

‘sassato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tesaṃ vata aññatreva saddhāya aññatra ruciyā aññatra anussavā aññatra ākāraparivitakkā aññatra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paccattaṃyeva ñāṇaṃ bhavissati parisuddhaṃ pariyodātanti –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하는 그들에게, 참으로 믿음과는 달리, 좋아함과는 달리, 전해 들음과는 달리, 사유의 형태와는 달리, 견해를 숙고하여 받아들임과는 달리, 스스로 청정하고 깨끗한 앎이 있으리라는 것 —

PN:mn102/28.2 · 교차 검사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PN:mn102/28.3 · 교차 검사

Paccattaṃ kho pana, bhikkhave, ñāṇe asati parisuddhe pariyodāte yada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tattha ñāṇabhāgamattameva pariyodapenti tadapi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upādānamakkhāyati.

비구들이여, 그런데 스스로의 청정하고 깨끗한 앎이 없을 때, 저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거기서 앎의 일부만을 깨끗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취착이라고 일컬어진다.

PN:mn102/28.4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28.5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8.6 · 교차 검사

29

비구들이여, 그 가운데 이런 말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과 바라문들이 있다.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고 하는 이들, 영원하지도 영원하지 않지도 않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끝이 있다고 하는 이들, 끝이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하는 이들, 끝이 있지도 없지도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의 인식을 가진다고 하는 이들, 여러 가지 인식을 가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한정된 인식을 가진다고 하는 이들, 한량없는 인식을 가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오로지 즐겁다고 하는 이들, 오로지 괴롭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가진다고 하는 이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이들이 믿음, 취향, 전해 들음, 이치를 따져 봄, 견해를 곰곰이 헤아려 받아들임에 기대지 않고서 오로지 스스로 깨끗하고 맑은 앎을 갖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스스로 깨끗하고 맑은 앎이 없는데도 존경받는 그 사문과 바라문들이 거기서 앎의 한 조각만을 맑게 하려 든다고 하자. 그것 또한 그들에게는 집착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비구들이여, 거기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저 사문·바라문들 —

PN:mn102/29.1 · 교차 검사

‘asassato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pe… sassato ca asassato ca attā ca loko ca… nevasassato nāsassato attā ca loko ca… antavā attā ca loko ca… anantavā attā ca loko ca… antavā ca anantavā ca attā ca loko ca… nevantavā nānantavā attā ca loko ca… ekattasaññī attā ca loko ca… nānattasaññī attā ca loko ca… parittasaññī attā ca loko ca… appamāṇasaññī attā ca loko ca… ekantasukhī attā ca loko ca… ekantadukkhī attā ca loko ca… sukhadukkhī attā ca loko ca… adukkhamasukhī attā ca loko ca,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tesaṃ vata aññatreva saddhāya aññatra ruciyā aññatra anussavā aññatra ākāraparivitakkā aññatra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paccattaṃyeva ñāṇaṃ bhavissati parisuddhaṃ pariyodātanti –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지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항상하기도 하고 항상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항상한 것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유한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무한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단일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다양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제한된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한량없는 인식을 지닌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즐겁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오로지 괴롭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자아와 세계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하는 그들에게, 참으로 믿음과는 달리, 좋아함과는 달리, 전해 들음과는 달리, 사유의 형태와는 달리, 견해를 숙고하여 받아들임과는 달리, 스스로 청정하고 깨끗한 앎이 있으리라는 것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2:28.2에서 되살렸습니다.

PN:mn102/29.2 · 교차 검사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그런 도리는 없다.

PN:mn102/29.3 · 교차 검사

Paccattaṃ kho pana, bhikkhave, ñāṇe asati parisuddhe pariyodāte yada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tattha ñāṇabhāgamattameva pariyodapenti tadapi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upādānamakkhāyati.

비구들이여, 그런데 스스로의 청정하고 깨끗한 앎이 없을 때, 저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거기서 앎의 일부만을 깨끗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취착이라고 일컬어진다.

PN:mn102/29.4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29.5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29.6 · 교차 검사

3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과거에 관한 견해를 버리고,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린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도 온전히 매이지 않아, 떨어져 있음에서 오는 기쁨을 얻어 머문다. 그는 생각한다.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떨어져 있음의 기쁨을 얻어 머물고 있다.” 그러다 그 기쁨이 사라진다. 기쁨이 사라지면 근심이 일어나고, 근심이 사라지면 기쁨이 다시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그늘이 물러가는 곳에는 햇볕이 퍼지고, 햇볕이 물러가는 곳에는 그늘이 퍼진다. 이와 같다. 떨어져 있음의 기쁨이 사라지면 근심이 일어나고, 근심이 사라지면 기쁨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관한 견해도,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렸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 온전히 매이지 않아, 떨어져 있음의 기쁨을 얻어 머문다. 그는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이 기쁨을 얻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기쁨이 사라진다. 기쁨이 사라지면 근심이 일어나고, 근심이 사라지면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aṃ pītiṃ upasampajja viharati –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음으로써, 떨침의 희열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0.1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pavivekaṃ pīti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떨침의 희열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0.2 · 교차 검사

Tassa sā pavivekā pīti nirujjhati.

그에게 그 떨침의 희열이 소멸한다.

PN:mn102/30.3 · 교차 검사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domanassaṃ, domanass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불만이 일어나고, 불만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난다.

PN:mn102/30.4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ikkhave, yaṃ chāyā jahati taṃ ātapo pharati, yaṃ ātapo jahati taṃ chāyā pharati;

비구들이여, 마치 그늘이 버리는 것을 볕이 뒤덮고, 볕이 버리는 것을 그늘이 뒤덮듯이;

PN:mn102/30.5 · 교차 검사

evameva kho, bhikkhave,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domanassaṃ, domanass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불만이 일어나고, 불만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난다.

PN:mn102/30.6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최상의 지혜로 안다.

PN:mn102/30.7 · 교차 검사

Ayaṃ kho bhav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aṃ pītiṃ upasampajja viharati –

이 사문 존자나 바라문 존자는 참으로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음으로써, 떨침의 희열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0.8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pavivekaṃ pīti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떨침의 희열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0.9 · 교차 검사

Tassa sā pavivekā pīti nirujjhati.

그에게 그 떨침의 희열이 소멸한다.

PN:mn102/30.10 · 교차 검사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domanassaṃ, domanass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불만이 일어나고, 불만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난다.

PN:mn102/30.11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30.12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30.13 · 교차 검사

31

비구들이여, 또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과거에 관한 견해를 버리고,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린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도 온전히 매이지 않는다. 떨어져 있음의 기쁨마저 넘어서서, 세속을 떠난 즐거움을 얻어 머문다. 그는 생각한다.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세속을 떠난 즐거움을 얻어 머물고 있다.” 그러다 그 즐거움이 사라진다.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사라지면 떨어져 있음의 기쁨이 일어나고, 그 기쁨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그늘이 물러가는 곳에는 햇볕이 퍼지고, 햇볕이 물러가는 곳에는 그늘이 퍼진다. 이와 같다.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사라지면 떨어져 있음의 기쁨이 일어나고, 그 기쁨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관한 견해도,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렸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 온전히 매이지 않고, 떨어져 있음의 기쁨마저 넘어서서 세속을 떠난 즐거움을 얻어 머문다. 그는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세속을 떠난 즐거움을 얻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즐거움이 사라진다.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사라지면 떨어져 있음의 기쁨이 일어나고, 그 기쁨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난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ṃ sukhaṃ upasampajja viharati –

“비구들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서,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1.1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nirāmisaṃ sukha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1.2 · 교차 검사

Tassa taṃ nirāmisaṃ sukh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한다.

PN:mn102/31.3 · 교차 검사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나고,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난다.

PN:mn102/31.4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ikkhave, yaṃ chāyā jahati taṃ ātapo pharati, yaṃ ātapo jahati taṃ chāyā pharati;

비구들이여, 마치 그늘이 버리는 것을 볕이 뒤덮고, 볕이 버리는 것을 그늘이 뒤덮듯이;

PN:mn102/31.5 · 교차 검사

evameva kho, bhikkhave,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나고,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난다.

PN:mn102/31.6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최상의 지혜로 안다.

PN:mn102/31.7 · 교차 검사

Ayaṃ kho bhav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ṃ sukhaṃ upasampajja viharati –

이 사문 존자나 바라문 존자는 참으로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서,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1.8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nirāmisaṃ sukha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1.9 · 교차 검사

Tassa taṃ nirāmisaṃ sukh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한다.

PN:mn102/31.10 · 교차 검사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pavivekā pīti, pavivekāya pītiyā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떨침의 희열이 일어나고, 떨침의 희열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난다.

PN:mn102/31.11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31.12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31.13 · 교차 검사

32

비구들이여, 또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과거에 관한 견해를 버리고,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린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도 온전히 매이지 않는다. 떨어져 있음의 기쁨도, 세속을 떠난 즐거움도 넘어선다.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얻어 머문다. 그는 생각한다.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얻어 머물고 있다.” 그러다 그 느낌이 사라진다. 그 느낌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나고, 그 즐거움이 사라지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그늘이 물러가는 곳에는 햇볕이 퍼지고, 햇볕이 물러가는 곳에는 그늘이 퍼진다. 이와 같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나고, 그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 느낌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관한 견해도,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렸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 온전히 매이지 않고, 떨어져 있음의 기쁨도 세속을 떠난 즐거움도 넘어섰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얻어 머문다. 그는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뛰어나다. 나는 이 느낌을 얻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느낌이 사라진다. 그 느낌이 사라지면 세속을 떠난 즐거움이 일어나고, 그 즐거움이 사라지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ssa sukhassa samatikkamā, adukkhamasukhaṃ vedanaṃ upasampajja viharati –

“비구들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완전히 넘어서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2.1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adukkhamasukhaṃ vedana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2.2 · 교차 검사

Tassa sā adukkhamasukhā vedanā nirujjhati.

그에게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한다.

PN:mn102/32.3 · 교차 검사

Adukkhamasukhāya vedanāya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adukkhamasukhā vedan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나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PN:mn102/32.4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ikkhave, yaṃ chāyā jahati taṃ ātapo pharati, yaṃ ātapo jahati taṃ chāyā pharati;

비구들이여, 마치 그늘이 버리는 것을 볕이 뒤덮고, 볕이 버리는 것을 그늘이 뒤덮듯이;

PN:mn102/32.5 · 교차 검사

evameva kho, bhikkhave, adukkhamasukhāya vedanāya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adukkhamasukhā vedanā.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나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PN:mn102/32.6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최상의 지혜로 안다.

PN:mn102/32.7 · 교차 검사

Ayaṃ kho bhav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ssa sukhassa samatikkamā, adukkhamasukhaṃ vedanaṃ upasampajja viharati –

이 사문 존자나 바라문 존자는 참으로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완전히 넘어서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이루어 머문다 —

PN:mn102/32.8 · 교차 검사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adukkhamasukhaṃ vedanaṃ upasampajja viharāmī’ti.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빼어나다. 곧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이루어 머문다’라고.

PN:mn102/32.9 · 교차 검사

Tassa sā adukkhamasukhā vedanā nirujjhati.

그에게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한다.

PN:mn102/32.10 · 교차 검사

Adukkhamasukhāya vedanāya nirodhā uppajjati nirāmisaṃ sukhaṃ, nirāmisassa sukhassa nirodhā uppajjati adukkhamasukhā vedan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하면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일어나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이 소멸하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PN:mn102/32.11 · 교차 검사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32.12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32.13 · 교차 검사

33

비구들이여, 또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다. 그는 과거에 관한 견해를 버리고, 미래에 관한 견해도 버린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도 온전히 매이지 않는다. 떨어져 있음의 기쁨도, 세속을 떠난 즐거움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넘어선다. 그리고 “나는 고요해졌다. 나는 꺼졌다. 나는 집착이 없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안다.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와 미래에 관한 견해를 버렸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도 온전히 매이지 않고, 떨어져 있음의 기쁨도, 세속을 떠난 즐거움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넘어섰다. 그리고 “나는 고요해졌다. 나는 꺼졌다. 나는 집착이 없다”고 여긴다.

‘‘Idha pan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ssa sukhassa samatikkamā, adukkhamasukhāya vedanāya samatikkamā –

“비구들이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완전히 넘어서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완전히 넘어서서 —

PN:mn102/33.1 · 교차 검사

‘santohamasmi, nibbutohamasmi, anupādānohamasmī’ti samanupassati.

‘나는 고요하다, 나는 적멸했다, 나는 취착이 없다’라고 여긴다.

PN:mn102/33.2 · 교차 검사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최상의 지혜로 안다.

PN:mn102/33.3 · 교차 검사

Ayaṃ kho bhav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aparantānudiṭṭhīnañca paṭinissaggā, sabbaso kāmasaṃyojanānaṃ anadhiṭṭhānā, pavivekāya pītiyā samatikkamā, nirāmisassa sukhassa samatikkamā, adukkhamasukhāya vedanāya samatikkamā –

이 사문 존자나 바라문 존자는 참으로 과거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미래에 대한 견해들을 놓아버리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들에 온갖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고, 떨침의 희열을 완전히 넘어서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완전히 넘어서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완전히 넘어서서 —

PN:mn102/33.4 · 교차 검사

‘santohamasmi, nibbutohamasmi, anupādānohamasmī’ti samanupassati;

‘나는 고요하다, 나는 적멸했다, 나는 취착이 없다’라고 여긴다.

PN:mn102/33.5 · 교차 검사

분명 이 존자는 열반에 알맞은 길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아직 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 과거에 관한 견해를 붙들고, 미래에 관한 견해를 붙들고 있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을 붙들고 있다. 떨어져 있음의 기쁨을 붙들고, 세속을 떠난 즐거움을 붙들고 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붙들고 있다. 그리고 이 존자가 “나는 고요해졌다. 나는 꺼졌다. 나는 집착이 없다”고 여기는 것, 그것 또한 이 존경받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는 집착이라고 일컬어진다.

addhā ayamāyasmā nibbānasappāyaṃyeva paṭipadaṃ abhivadati.

참으로 이 존자는 열반에 이바지하는 도닦음을 말한다.

PN:mn102/33.6 · 교차 검사

Atha ca panāyaṃ bhavaṃ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pubbantānudiṭṭhiṃ vā upādiyamāno upādiyati, aparantānudiṭṭhiṃ vā upādiyamāno upādiyati, kāmasaṃyojanaṃ vā upādiyamāno upādiyati, pavivekaṃ vā pītiṃ upādiyamāno upādiyati, nirāmisaṃ vā sukhaṃ upādiyamāno upādiyati, adukkhamasukhaṃ vā vedanaṃ upādiyamāno upādiyati.

그런데도 이 사문 존자나 바라문 존자는 과거에 대한 견해를 취착하면서 취착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취착하면서 취착하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취착하면서 취착하고, 떨침의 희열을 취착하면서 취착하고, 세속의 것이 아닌 행복을 취착하면서 취착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취착하면서 취착한다.

PN:mn102/33.7 · 교차 검사

Yañca kho ayamāyasmā –

그리고 이 존자가 —

PN:mn102/33.8 · 교차 검사

‘santohamasmi, nibbutohamasmi, anupādānohamasmī’ti samanupassati tadapi imassa bhoto samaṇassa brāhmaṇassa upādānamakkhāyati.

‘나는 고요하다, 나는 적멸했다, 나는 취착이 없다’라고 여기는 것, 그것 또한 이 사문 존자·바라문 존자의 취착이라고 일컬어진다.

PN:mn102/33.9 · 교차 검사

“이것은 지어진 것이요 거친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것들이 그치는 경지가 있다.” 여래는 이렇게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더없이 높은 고요의 경지를 바르게 깨달았으니, 그것은 이러하다. 여섯 접촉의 영역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그 달콤함과 위험, 거기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리하여 집착 없이 풀려나는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다섯 가지 세 가지 경」이 끝났다. 둘째 경이다.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그런데 이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들의 소멸이 있으니, 그것은 있다’라고 —

PN:mn102/33.10 · 교차 검사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이렇게 알고서 여래는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는 자로서 그것을 넘어섰다.

PN:mn102/33.11 · 교차 검사

‘‘Idaṃ kho pana, bhikkhave, tathāgatena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abhisambuddhaṃ yadidaṃ –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 위없는 고요의 으뜸가는 경지는 여래에 의해 온전히 깨달아졌으니, 곧 —

PN:mn102/33.12 · 교차 검사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anupādāvimokkho’’ti.

여섯 감각접촉의 터전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서 이루어지는, 취착 없는 해탈이다.”

PN:mn102/33.13 · 교차 검사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PN:mn102/33.14 · 교차 검사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PN:mn102/33.15 · 교차 검사

Pañcattay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다섯과 셋 경」이 끝났다. 두 번째다.

PN:mn102/33.16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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