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빠리빤나사빠알리Uparipaṇṇāsapāḷi
1. Devadahavaggo
1. 데와다하 품
1. Devadahasuttaṃ
1. 데와다하 경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1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캬족의 마을 데와다하라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대답하자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akkesu viharati devadahaṃ nāma sakyānaṃ nigamo.
한때 세존께서 사꺄족들 가운데 머무셨으니, 데와다하라는 사꺄족의 성읍이었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bhikkhavo’’ti.
“비구들이여.”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런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다.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니간타들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불확실]
Evaṃvādino, bhikkhave,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렇게 말한다.
‘‘Evaṃvādāhaṃ, bhikkhave, nigaṇṭhe upasaṅkamitvā evaṃ vadāmi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니간타들에게 다가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불확실]
불확실 —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고 이런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saccaṃ kira tumhe, āvuso nigaṇṭh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는가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 니간타들은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인정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Te ca me, bhikkhave, nigaṇṭhā evaṃ puṭṭhā ‘āmā’ti paṭijānanti.
비구들이여, 그 니간타들은 내게 이렇게 질문을 받고 ‘그렇습니다’ 하고 인정한다.
‘‘Tyāhaṃ evaṃ vadāmi –
“그런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
'그렇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kiṃ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
ahuvamheva mayaṃ pubbe, na nāhuvamhā’ti?
우리가 전에 분명 있었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악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Kiṃ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
akaramheva mayaṃ pubbe pāpakammaṃ, na nākaramhā’ti?
우리가 전에 분명 나쁜 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이러이러한 악업을 지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Kiṃ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
evarūpaṃ vā evarūpaṃ vā pāpakammaṃ akaramhā’ti?
이러이러한 나쁜 업을 우리가 지었다고?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괴로움이 이만큼 닳아 없어졌다는 것을, 앞으로 이만큼 더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만큼 없애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Kiṃ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
ettakaṃ vā dukkhaṃ nijjiṇṇaṃ, ettakaṃ vā dukkhaṃ nijjīretabbaṃ,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을 삭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을 때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지금 이 생에서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불확실]
‘‘‘Kiṃ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아는가 —
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nti?
지금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과 유익한 법들을 갖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2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렇다면 그대들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전생에 분명히 악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모른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악업을 지었다는 것도 모르고, 괴로움이 이만큼 닳아 없어졌다는 것도 모른다. 앞으로 이만큼 더 없애야 한다는 것도, 이만큼 없애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도 모른다. 지금 이 생에서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모른다.'[불확실]
‘‘Iti kira tumhe, āvuso nigaṇṭhā, na jānātha –
“이러하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지 못한다 —
ahuvamheva mayaṃ pubbe, na nāhuvamhāti, na jān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있었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알지 못한다 —
akaramheva mayaṃ pubbe pāpakammaṃ, na nākaramhāti, na jān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나쁜 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알지 못한다 —
evarūpaṃ vā evarūpaṃ vā pāpakammaṃ akaramhāti, na jānātha –
이러이러한 나쁜 업을 우리가 지었다고, 알지 못한다 —
ettakaṃ vā dukkhaṃ nijjiṇṇaṃ, ettakaṃ vā dukkhaṃ nijjīretabbaṃ,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na jānātha –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을 삭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을 때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알지 못한다 —
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지금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과 유익한 법들을 갖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na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이러할 때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안다고 하자.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하자. 전생에 분명히 악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고 하자. 우리가 이러이러한 악업을 지었다는 것도 알고, 괴로움이 이만큼 닳아 없어졌다는 것도 안다. 앞으로 이만큼 더 없애야 한다는 것도, 이만큼 없애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도 안다. 지금 이 생에서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을 갖추게 된다는 것까지 안다고 하자.'[불확실]
‘‘Sace pana tumhe, āvuso nigaṇṭhā, jāneyyātha –
“그런데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안다면 —
ahuvamheva mayaṃ pubbe, na nāhuvamhāti, jāneyy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있었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안다면 —
akaramheva mayaṃ pubbe pāpakammaṃ, na nākaramhāti, jāneyy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나쁜 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안다면 —
evarūpaṃ vā evarūpaṃ vā pāpakammaṃ akaramhāti, jāneyyātha –
이러이러한 나쁜 업을 우리가 지었다고 안다면 —
ettakaṃ vā dukkhaṃ nijjiṇṇaṃ, ettakaṃ vā dukkhaṃ nijjīretabbaṃ,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jāneyyātha –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을 삭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을 때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안다면 —
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지금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과 유익한 법들을 갖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을 것이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이러할 때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할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3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독을 깊이 바른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는 화살에 맞은 탓에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친구와 동료, 친지와 혈육이 화살을 뽑는 외과 의사를 불러올 것이다. 의사는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낼 것이고, 그는 그 탓에도 똑같이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의사가 탐침으로 화살을 찾을 때도 그럴 것이다. 화살을 뽑아낼 때도, 해독용 약 숯을 상처 입구에 넣을 때도 그럴 것이다. 얼마 뒤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고 병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 뜻대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Seyyathāpi, āvuso nigaṇṭhā, puriso sallena viddho assa savisena gāḷhūpalepanena;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독이 묻고 두껍게 발린 화살에 꿰뚫렸다고 하자;
so sallassapi ved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yya.
그는 그 화살에 꿰뚫린 탓에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벗과 동료들, 친척과 혈육들이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를 데려올 것이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eyya;
그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칼로 상처 아가리를 도려낼 것이다;
so satthenapi vaṇamukhassa parikant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yya.
그는 칼로 상처 아가리를 도려낸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esaniyā sallaṃ eseyya;
그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탐침으로 화살을 찾을 것이다;
so esaniyāpi sallassa esanā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yya.
그는 탐침으로 화살을 찾은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sallaṃ abbuheyya;
그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화살을 뽑아낼 것이다;
so sallassapi abbu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yya.
그는 화살을 뽑아낸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agadaṅgāraṃ vaṇamukhe odaheyya;
그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상처 아가리에 약을 태운 숯을 놓을 것이다;
so agadaṅgārassapi vaṇamukhe oda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yya.
그는 상처 아가리에 약을 태운 숯을 놓은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을 것이다.
So aparena samayena rūḷhena vaṇena sañchavinā arogo assa sukhī serī sayaṃvasī yena kāmaṅgamo.
그는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살갗이 덮여, 병 없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제 뜻대로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에 독을 깊이 바른 화살에 맞았다. 그 탓에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친구와 동료, 친지와 혈육이 화살을 뽑는 외과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가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낼 때도 나는 똑같이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탐침으로 화살을 찾을 때도, 화살을 뽑을 때도, 약 숯을 상처 입구에 넣을 때도 그랬다. 그런 내가 이제는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고 병이 나았다.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뜻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ahaṃ kho pubbe sallena viddho ahosiṃ savisena gāḷhūpalepanena.
나는 전에 독이 묻고 두껍게 발린 화살에 꿰뚫렸다.
Sohaṃ sallassapi ved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iṃ.
그런 나는 그 화살에 꿰뚫린 탓에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Tassa me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apesuṃ.
그런 나의 벗과 동료들, 친척과 혈육들이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를 데려왔다.
Tassa me so bhisakko sallakatto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i;
그런 나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칼로 상처 아가리를 도려냈다;
sohaṃ satthenapi vaṇamukhassa parikant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iṃ.
그런 나는 칼로 상처 아가리를 도려낸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Tassa me so bhisakko sallakatto esaniyā sallaṃ esi;
그런 나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탐침으로 화살을 찾았다;
so ahaṃ esaniyāpi sallassa esanā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iṃ.
그런 나는 탐침으로 화살을 찾은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Tassa me so bhisakko sallakatto sallaṃ abbuhi;
그런 나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화살을 뽑아냈다;
sohaṃ sallassapi abbu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iṃ.
그런 나는 화살을 뽑아낸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Tassa me so bhisakko sallakatto agadaṅgāraṃ vaṇamukhe odahi;
그런 나에게 그 의사이자 화살을 다루는 이가 상처 아가리에 약을 태운 숯을 놓았다;
sohaṃ agadaṅgārassapi vaṇamukhe odahanahetu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iṃ.
그런 나는 상처 아가리에 약을 태운 숯을 놓은 탓에도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었다.
Somhi etarahi rūḷhena vaṇena sañchavinā arogo sukhī serī sayaṃvasī yena kāmaṅgamo’’ti.
그런 나는 지금 상처가 아물고 살갗이 덮여, 병 없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제 뜻대로여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 사람처럼 만일 그대들이 안다고 하자.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하자. 전생에 분명히 악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고 하자. 우리가 이러이러한 악업을 지었다는 것도 알고, 괴로움이 이만큼 닳아 없어졌다는 것도 안다. 앞으로 이만큼 더 없애야 한다는 것도, 이만큼 없애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도 안다. 지금 이 생에서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을 갖추게 된다는 것까지 안다고 하자.'[불확실]
‘‘Evameva kho, āvuso nigaṇṭhā, sace tumhe jāneyyātha –
“이와 꼭 같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안다면 —
ahuvamheva mayaṃ pubbe, na nāhuvamhāti, jāneyy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있었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안다면 —
akaramheva mayaṃ pubbe pāpakammaṃ, na nākaramhāti, jāneyy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나쁜 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안다면 —
evarūpaṃ vā evarūpaṃ vā pāpakammaṃ akaramhāti, jāneyyātha –
이러이러한 나쁜 업을 우리가 지었다고 안다면 —
ettakaṃ vā dukkhaṃ nijjiṇṇaṃ, ettakaṃ vā dukkhaṃ nijjīretabbaṃ,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jāneyyātha –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을 삭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을 때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안다면 —
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지금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과 유익한 법들을 갖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을 것이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이러할 때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할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모른다. 우리가 전생에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전생에 분명히 악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모른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악업을 지었다는 것도 모르고, 괴로움이 이만큼 닳아 없어졌다는 것도 모른다. 앞으로 이만큼 더 없애야 한다는 것도, 이만큼 없애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도 모른다. 지금 이 생에서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이로운 법들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모른다.'[불확실]
‘‘Yasmā ca kho tumhe, āvuso nigaṇṭhā, na jānātha –
“그러나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알지 못하므로 —
ahuvamheva mayaṃ pubbe, na nāhuvamhāti, na jān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있었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알지 못하고 —
akaramheva mayaṃ pubbe pāpakammaṃ, na nākaramhāti, na jānātha –
우리가 전에 분명 나쁜 업을 지었고 짓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고, 알지 못하고 —
evarūpaṃ vā evarūpaṃ vā pāpakammaṃ akaramhāti, na jānātha –
이러이러한 나쁜 업을 우리가 지었다고, 알지 못하고 —
ettakaṃ vā dukkhaṃ nijjiṇṇaṃ, ettakaṃ vā dukkhaṃ nijjīretabbaṃ, ettakamhi vā dukkhe nijjiṇṇe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na jānātha –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을 삭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거나, 이만큼의 괴로움이 삭아 없어졌을 때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알지 못하고 —
diṭṭheva dhamme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asampadaṃ;
지금 여기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림과 유익한 법들을 갖춤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tasmā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na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그러므로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4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니간타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니간타 나타뿟따는 모든 것을 아는 분이고 모든 것을 보는 분입니다. 그분은 남김없는 앎과 봄을 갖추었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분은 이렇게도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걸어 다닐 때도 서 있을 때도, 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앎과 봄이 늘 끊임없이 눈앞에 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전에 이미 악업을 지었다. 그것을 이 쓰라린 고행으로 닳아 없애라. 그리고 지금 여기서 몸과 말과 마음을 단속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Evaṃ vutte, bhikkhave, te nigaṇṭhā maṃ etadavocu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그 니간타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nigaṇṭho, āvuso, nāṭaputto sabbaññū sabbadassāvī, aparisesaṃ ñāṇadassanaṃ paṭijānāti.
‘벗이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이로서, 남김없는 앎과 봄을 스스로 밝힙니다.
Carato ca me tiṭṭhato ca suttassa ca jāgarassa ca satataṃ samitaṃ ñāṇadassanaṃ paccupaṭṭhita’nti.
걸을 때나 설 때나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내게는 앎과 봄이 끊임없이 한결같이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atthi kho vo, āvuso nigaṇṭhā, pubbeva pāpakammaṃ kataṃ, t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nijjīretha, yaṃ panettha etarahi kāyena saṃvutā vācāya saṃvutā manasā saṃvutā taṃ āyatiṃ pāpakammassa akaraṇaṃ.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에게는 전에 지은 나쁜 업이 있다. 그것을 이 쓰라린 고행으로 삭아 없어지게 하라. 그리고 여기서 지금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음이다.
그러니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우리는 이 말이 마음에 들고 옳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Tañca panamhākaṃ ruccati ceva khamati ca, tena camhā attamanā’’ti.
그리고 그것이 저희에게는 마음에 들고 받아들여지며, 그래서 저희는 그것으로 기쁩니다.”
5
비구들이여, 그들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말했다.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지금 이 생에서 두 갈래 결과를 낳는 법이 다섯 가지 있다. 다섯이란 무엇인가? 믿음, 좋아함, 전해 들음, 이치에 맞는 생각, 견해를 곰곰이 따져 받아들임이다. 이 다섯 가지가 지금 이 생에서 두 갈래 결과를 낳는 법이다. 그런데 니간타 존자들에게는 과거의 스승에 대한 믿음이 무엇인가? 좋아함이 무엇이고, 전해 들음이 무엇이며, 이치에 맞는 생각과 견해를 곰곰이 따져 받아들임이 무엇인가?'[불확실]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te nigaṇṭhe etadavocaṃ –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pañca kho ime, āvuso nigaṇṭhā, dhammā diṭṭheva dhamme dvidhāvipākā.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 다섯 가지 법은 지금 여기서 두 갈래로 과보가 갈린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Saddhā, ruci, anussavo, ākāraparivitakko, diṭṭhinijjhānakkhanti –
믿음, 좋아함, 전해 들음, 이치를 헤아려 봄, 견해를 곰곰이 살펴 받아들임[불확실]
불확실 —
ime kho, āvuso nigaṇṭhā, pañca dhammā diṭṭheva dhamme dvidhāvipākā.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 다섯 가지 법이 지금 여기서 두 갈래로 과보가 갈린다.
Tatr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kā atītaṃse satthari saddhā, kā ruci, ko anussavo, ko ākāraparivitakko, kā diṭṭhinijjhānakkhantī’ti.
그런데 존자인 니간타들에게는 지난 과거의 스승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고, 어떤 좋아함이 있고, 어떤 전해 들음이 있고, 어떤 이치 헤아림이 있고, 어떤 견해를 살펴 받아들임이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나는 니간타들에게서 법에 맞는 어떤 반박도 찾지 못했다. 나는 다시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Evaṃvādī kho ahaṃ, bhikkhave, nigaṇṭhesu na kañci sahadhammikaṃ vādapaṭihāraṃ samanupassām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나는 니간타들에게서 법에 맞는 어떤 반론도 보지 못한다.
‘‘Puna caparāhaṃ, bhikkhave, te nigaṇṭhe evaṃ vadāmi –
“비구들이여, 또한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힘써 노력하고 열심히 정진하는 때에는 노력에서 비롯한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가? 반대로 힘써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 때에는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가?' '고타마 존자여, 저희가 힘써 노력하고 열심히 정진하는 때에는 그런 느낌을 겪습니다. 그러나 힘써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 때에는 그런 느낌을 겪지 않습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āvuso nigaṇṭhā.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Yasmiṃ vo samaye tibbo upakkamo hoti tibbaṃ padhānaṃ,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있고 심한 정진이 있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는가;
yasmiṃ pana vo samaye na tibbo upakkamo hoti na tibbaṃ padhānaṃ, na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ā’ti?
그러나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없고 심한 정진이 없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지 않는가?’
‘Yasmiṃ no, āvuso gotama, samaye tibbo upakkamo hoti tibbaṃ padhānaṃ,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āma;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에게 심한 애씀이 있고 심한 정진이 있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습니다;
yasmiṃ pana no samaye na tibbo upakkamo hoti na tibbaṃ padhānaṃ, na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āmā’’’ti.
그러나 저희에게 심한 애씀이 없고 심한 정진이 없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지 않습니다.’”
6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렇다면 그대들은 이런 것이다. 힘써 노력하고 열심히 정진할 때는 노력에서 비롯한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힘써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을 때는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Iti kira, āvuso nigaṇṭhā, yasmiṃ vo samaye tibbo upakkamo hoti tibbaṃ padhānaṃ,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이러하다면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있고 심한 정진이 있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고;
yasmiṃ pana vo samaye na tibbo upakkamo hoti na tibbaṃ padhānaṃ, na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그러나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없고 심한 정진이 없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지 않는다.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na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이러할 때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라고.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렇게 가정해 보자. 힘써 노력하고 열심히 정진할 때는 노력에서 비롯한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힘써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런 느낌을 겪는다고 하자. 사정이 이러하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옳을 것이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
Sace, āvuso nigaṇṭhā, yasmiṃ vo samaye tibbo upakkamo hoti tibbaṃ padhānaṃ, na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만약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있고 심한 정진이 있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지 않고;
yasmiṃ pana vo samaye na tibbo upakkamo hoti na tibbaṃ padhānaṃ,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그러나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없고 심한 정진이 없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는다면;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kallamassa veyyākaraṇāya –
이러할 때 존자인 니간타들이 이렇게 답하는 것은 합당할 것이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사실은 이렇다. 그대들은 힘써 노력하고 열심히 정진할 때 노력에서 비롯한 괴롭고 격렬하고 쓰라린 느낌을 겪는다. 힘써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을 때는 그런 느낌을 겪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그런 느낌을 스스로 겪으면서도, 무지와 무명과 어리석음 때문에 이렇게 잘못 생각한다. 사람이 겪는 것은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든, 모두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라고. 옛 업은 고행으로 없애고 새 업은 짓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 스며드는 것이 없다고. 스며드는 것이 없으면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고. 괴로움이 다하면 느낌이 다하고, 느낌이 다하면 모든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고 말이다.'[불확실]
‘‘‘Yasmā ca kho, āvuso nigaṇṭhā, yasmiṃ vo samaye tibbo upakkamo hoti tibbaṃ padhānaṃ,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있고 심한 정진이 있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고;
yasmiṃ pana vo samaye na tibbo upakkamo hoti na tibbaṃ padhānaṃ, na tibbā tasmiṃ samaye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etha;
그러나 그대들에게 심한 애씀이 없고 심한 정진이 없는 그때, 그때에는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심하게 겪지 않으므로;
te tumhe sāmaṃyeva opakkamik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ayamānā avijjā aññāṇā sammohā vipaccetha –
그런 그대들은 스스로 애씀에서 비롯한 괴롭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으면서, 무명과 무지와 미혹 때문에 이렇게 잘못 여긴다[불확실]
불확실 —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
이 사람이라는 개인이 겪는 것은 무엇이든,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모두는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āyatiṃ anavassavo;
이와 같이 지난 업들을 고행으로 끝냄으로써,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흘러듦이 없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앞으로 흘러듦이 없으므로 업이 다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이 다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ti.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이 삭아 없어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나는 니간타들에게서 법에 맞는 어떤 반박도 찾지 못했다.
Evaṃvādīpi kho ahaṃ, bhikkhave, nigaṇṭhesu na kañci sahadhammikaṃ vādapaṭihāraṃ samanupassām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니간타들에게서 법에 맞는 어떤 반론도 보지 못한다.
7
비구들이여,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벗 니간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생에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내생에서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내생에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이 생에서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Puna caparāhaṃ, bhikkhave, te nigaṇṭhe evaṃ vadāmi –
“비구들이여, 다시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taṃ kiṃ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diṭṭhadhamm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amparāy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여기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다음 생에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Yaṃ panidaṃ kammaṃ samparāy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diṭṭhadhamm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그러면 다음 생에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지금 여기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벗 니간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즐거움으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괴로움으로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괴로움으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즐거움으로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Taṃ kiṃ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sukh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dukkh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즐거움으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괴로움으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Yaṃ panidaṃ kammaṃ dukkh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ukh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그러면 괴로움으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즐거움으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벗 니간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무르익어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아직 익지 않아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아직 익지 않아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이미 무르익어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Taṃ kiṃ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paripakk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paripakk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르익어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무르익지 않은 채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Yaṃ panidaṃ kammaṃ aparipakk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paripakk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그러면 무르익지 않은 채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무르익어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벗 니간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이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적게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적게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많이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Taṃ kiṃ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bahu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pp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이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적게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Yaṃ panidaṃ kammaṃ app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bahu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그러면 적게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많이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벗 니간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보를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과보를 받지 않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면 과보를 받지 않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과보를 받을 업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벗이여.’
‘Taṃ kiṃ maññath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s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껴질 것이 있는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느껴질 것이 없는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Yaṃ panidaṃ kammaṃ 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avedanīyaṃ hotūti labbhameta’nti?
‘그러면 느껴질 것이 없는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느껴질 것이 있는 것이 되게 하라 —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No hidaṃ, āvuso’.
‘그렇지 않습니다, 벗이여.’
8
‘그렇다면 벗 니간타들이여, 이렇게 된다. 이 생에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내생에서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생에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이 생에서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즐거움으로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괴로움으로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괴로움으로 받을 업을 즐거움으로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이미 무르익어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아직 익지 않아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익지 않아 받을 업을 이미 무르익어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많이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적게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게 받을 업을 많이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보를 받을 업을 노력이나 정진으로 과보를 받지 않을 업이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보를 받지 않을 업을 과보를 받을 업이 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존자 니간타들의 노력은 열매가 없고, 정진도 열매가 없다.’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와 같이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니간타들에게는, 비구들이여, 이치에 맞는 열 가지 반론이 닥쳐 비난받을 처지가 된다.
‘‘Iti kira, āvuso nigaṇṭhā, yamidaṃ kammaṃ diṭṭhadhamm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amparāy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ṃ panidaṃ kammaṃ samparāy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diṭṭhadhamm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sukh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dukkh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dukkh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ukh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paripakk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paripakk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aparipakk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paripakk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bahu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pp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app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bahu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s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yamidaṃ kammaṃ avedanīyaṃ taṃ upakkamena vā padhānena vā savedanīyaṃ hotūti alabbhametaṃ;
“벗들이여 니간타들이여, 그렇다면 참으로 이러하다 — 지금 여기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다음 생에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다음 생에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지금 여기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즐거움으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괴로움으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괴로움으로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즐거움으로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무르익어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무르익지 않은 채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무르익지 않은 채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무르익어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많이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적게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적게 느껴질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많이 느껴질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느껴질 것이 있는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느껴질 것이 없는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고, 느껴질 것이 없는 이 업, 그것이 노력으로든 힘씀으로든 느껴질 것이 있는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은 얻을 수 없다;
evaṃ sante āyasmantānaṃ nigaṇṭhānaṃ aphalo upakkamo hoti, aphalaṃ padhānaṃ’’.
그렇다면 니간타 존자들의 노력은 열매 없고, 힘씀도 열매 없다.”
‘‘Evaṃvādī, bhikkhave,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렇게 말한다.
Evaṃvādīnaṃ, bhikkhave, nigaṇṭhānaṃ dasa sahadhammikā vādānuvādā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an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니간타들에게는 열 가지 이치에 맞는 반론이 비난받아 마땅한 도리에 이른다.
9
비구들이여, 중생이 전생에 지은 것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전생에 나쁜 업을 지은 자들일 것이다. 지금 이처럼 극심하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Sace, bhikkhav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nigaṇṭhā pubbe dukkaṭakammakārino yaṃ etarahi evarūp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anti.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전에 나쁜 업을 지은 자들이다 — 지금 이런 괴롭고 격심하고 혹독한 느낌을 겪고 있으니.
비구들이여, 중생이 자재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악한 자재신이 만든 자들일 것이다. 지금 이처럼 극심하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Sace, bhikkhav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자재신의 지어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nigaṇṭhā pāpakena issarena nimmitā yaṃ etarahi evarūp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anti.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나쁜 자재신이 지어낸 자들이다 — 지금 이런 괴롭고 격심하고 혹독한 느낌을 겪고 있으니.
비구들이여, 중생이 운명적인 만남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나쁜 운명을 만난 자들일 것이다. 지금 이처럼 극심하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Sace, bhikkhav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우연한 마주침의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nigaṇṭhā pāpasaṅgatikā yaṃ etarahi evarūp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anti.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나쁜 마주침을 만난 자들이다 — 지금 이런 괴롭고 격심하고 혹독한 느낌을 겪고 있으니.
비구들이여, 중생이 타고난 신분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나쁜 신분으로 태어난 자들일 것이다. 지금 이처럼 극심하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Sace, bhikkhav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nigaṇṭhā pāpābhijātikā yaṃ etarahi evarūp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anti.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나쁜 신분으로 태어난 자들이다 — 지금 이런 괴롭고 격심하고 혹독한 느낌을 겪고 있으니.
비구들이여, 중생이 현생의 노력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이런 현생의 노력을 한 자들일 것이다. 지금 이처럼 극심하고 날카롭고 쓰라린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Sace, bhikkhav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nigaṇṭhā evarūpā diṭṭhadhammūpakkamā yaṃ etarahi evarūpā 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 vediyanti.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틀림없이 이런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하는 자들이다 — 지금 이런 괴롭고 격심하고 혹독한 느낌을 겪고 있으니.
비구들이여, 중생이 전생에 지은 것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전생에 지은 것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라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Sace, bhikkhav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no c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만일 중생들이 전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지 않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구들이여, 중생이 자재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재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라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Sace, bhikkhav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자재신의 지어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no c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만일 중생들이 자재신의 지어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지 않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구들이여, 중생이 운명적인 만남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운명적인 만남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라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Sace, bhikkhav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우연한 마주침의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no c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만일 중생들이 우연한 마주침의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지 않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구들이여, 중생이 타고난 신분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타고난 신분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라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Sace, bhikkhav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no c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만일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지 않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구들이여, 중생이 현생의 노력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생의 노력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라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Sace, bhikkhav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만일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는다면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no c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gārayhā nigaṇṭhā.
만일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몸소 겪지 않는다 해도 니간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와 같이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니간타들에게는, 비구들이여, 이 열 가지 이치에 맞는 반론이 닥쳐 비난받을 처지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래서 노력은 열매가 없고 정진도 열매가 없다.
Evaṃvādī, bhikkhave, nigaṇṭhā.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은 이렇게 말한다.
Evaṃvādīnaṃ, bhikkhave, nigaṇṭhānaṃ ime dasa sahadhammikā vādānuvādā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an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니간타들에게는 이 열 가지 이치에 맞는 반론이 비난받아 마땅한 도리에 이른다.
Evaṃ kho, bhikkhave, aphalo upakkamo hoti, 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노력이 열매 없고 힘씀이 열매 없다.
10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해야 노력이 열매를 맺고 정진이 열매를 맺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괴로움에 젖어 있지 않던 자신을 괴로움에 젖게 하지 않는다. 법에 맞게 얻은 즐거움도 버리지 않고, 그 즐거움에 빠져들지도 않는다.
‘‘Kathañca,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노력이 열매 있고 힘씀이 열매 있는가?
Idha, bhikkhave, bhikkhu na heva anaddhabhūtaṃ attānaṃ dukkhena addhabhāveti, dhammikañca sukhaṃ na pariccajati, tasmiñca sukhe anadhimucchito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짓눌리지 않은 자신을 괴로움으로 짓누르지 않고, 법다운 즐거움을 버리지도 않으며, 그 즐거움에 홀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애써 노력하면 그 노력으로 집착이 가신다. 저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지켜보며 평정을 닦으면 집착이 가신다.’ 그래서 어떤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애써 노력하여 집착이 가신다면, 그 경우에는 애써 노력한다. 또 어떤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지켜보며 평정을 닦아 집착이 가신다면, 그 경우에는 평정을 닦는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imassa kho me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imassa pana me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ī’ti.
‘이 나의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형성작용에 힘쓰는 내게는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나의 괴로움의 근원을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는 내게는 탐욕이 사라진다.’
So yassa hi khvāssa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saṅkhāraṃ tattha padahati.
그는 형성작용에 힘쓸 때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지는 그런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서는, 거기에 형성작용으로 힘쓴다.
Yassa panassa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i, upekkhaṃ tattha bhāveti.
그리고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을 때 탐욕이 사라지는 그런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서는, 거기에 평온을 닦는다.
이런저런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애써 노력하여 집착이 가시면, 이렇게 해서도 그의 괴로움은 닳아 없어진다. 이런저런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지켜보며 평정을 닦아 집착이 가시면, 이렇게 해서도 그의 괴로움은 닳아 없어진다.
Tassa tassa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
그 각각의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형성작용에 힘쓰는 그에게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진다 —
evampissa t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hoti.
이렇게 해서도 그의 그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Tassa tassa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i –
그 각각의 괴로움의 근원을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는 그에게 탐욕이 사라진다 —
evampissa t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hoti.
이렇게 해서도 그의 그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11
비구들이여, 어떤 남자가 한 여인에게 깊이 빠져 있다고 하자. 그는 마음이 얽매이고, 욕망이 강렬하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가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서 이야기하고 농담하며 웃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남자가 그 모습을 본다면 슬픔과 한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존이시여, 그 남자는 그 여인에게 깊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얽매이고, 욕망이 강렬하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면 슬픔과 한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itthiyā sāratto paṭibaddhacitto tibbacchando tibbāpekkho.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한 여인에게 반해 마음이 묶이고, 강렬한 열의와 강렬한 갈망을 지녔다고 하자.
So taṃ itthiṃ passeyya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그가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본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assa purisassa amuṃ itthiṃ disvā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남자에게, 저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보고서 근심·비탄·괴로움·불만·번민이 일어나겠는가?”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mu hi, bhante, puriso amussā itthiyā sāratto paṭibaddhacitto tibbacchando tibbāpekkho.
“세존이시여, 저 남자는 저 여인에게 반해 마음이 묶이고, 강렬한 열의와 강렬한 갈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Tasmā taṃ itthiṃ disvā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ti.
그래서 저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보고서 근심·비탄·괴로움·불만·번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구들이여, 그 남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나는 그 여인에게 깊이 빠져 있다. 마음이 얽매이고, 욕망이 강렬하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서 이야기하고 농담하며 웃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 내게 슬픔과 한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일어난다. 차라리 내가 그 여인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버리면 어떨까.’
‘‘Atha kho, bhikkhave, tassa purisassa evamassa –
“비구들이여, 그때 그 남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자 —
‘ahaṃ kho amussā itthiyā sāratto paṭibaddhacitto tibbacchando tibbāpekkho.
‘나는 저 여인에게 반해 마음이 묶이고, 강렬한 열의와 강렬한 갈망을 지녔다.
Tassa me amuṃ itthiṃ disvā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그런 나에게 저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보고서 근심·비탄·괴로움·불만·번민이 일어난다.
Yaṃnūnāhaṃ yo me amussā itthiyā chandarāgo taṃ pajaheyya’nti.
나는 저 여인에 대한 나의 열의와 탐욕을 버리는 것이 어떨까.’
그리하여 그는 그 여인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버렸다고 하자. 훗날 그가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서 이야기하고 농담하며 웃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남자가 그 모습을 본다면 슬픔과 한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일어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존이시여, 그 남자는 그 여인에 대한 집착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아도 슬픔과 한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So yo amussā itthiyā chandarāgo taṃ pajaheyya.
그리하여 그는 저 여인에 대한 그 열의와 탐욕을 버린다고 하자.
So taṃ itthiṃ passeyya aparena samayena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그 뒤 언젠가 그가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본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assa purisassa amuṃ itthiṃ disvā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남자에게, 저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보고서 근심·비탄·괴로움·불만·번민이 일어나겠는가?”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mu hi, bhante, puriso amussā itthiyā virāgo.
“세존이시여, 저 남자는 저 여인에 대한 탐욕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Tasmā taṃ itthiṃ disvā aññena purisena saddhiṃ santiṭṭhantiṃ sallapantiṃ sañjagghantiṃ saṃhasantiṃ na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ti.
그래서 저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 있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깔깔거리고 함께 웃는 것을 보아도 근심·비탄·괴로움·불만·번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괴로움에 젖어 있지 않던 자신을 괴로움에 젖게 하지 않는다. 법에 맞게 얻은 즐거움도 버리지 않고, 그 즐거움에 빠져들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애써 노력하면 그 노력으로 집착이 가신다. 저 괴로움의 원인은 내가 지켜보며 평정을 닦으면 집착이 가신다.’ 그래서 어떤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애써 노력하여 집착이 가신다면, 그 경우에는 애써 노력한다. 또 어떤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지켜보며 평정을 닦아 집착이 가신다면, 그 경우에는 평정을 닦는다. 이런저런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애써 노력하여 집착이 가시면, 이렇게 해서도 그의 괴로움은 닳아 없어진다. 이런저런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지켜보며 평정을 닦아 집착이 가시면, 이렇게 해서도 그의 괴로움은 닳아 없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도 열매를 맺는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na heva anaddhabhūtaṃ attānaṃ dukkhena addhabhāveti, dhammikañca sukhaṃ na pariccajati, tasmiñca sukhe anadhimucchito hoti.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짓눌리지 않은 자신을 괴로움으로 짓누르지 않고, 법다운 즐거움을 버리지도 않으며, 그 즐거움에 홀리지도 않는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imassa kho me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imassa pana me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ī’ti.
‘이 나의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형성작용에 힘쓰는 내게는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나의 괴로움의 근원을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는 내게는 탐욕이 사라진다.’
So yassa hi khvāssa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saṅkhāraṃ tattha padahati;
그는 형성작용에 힘쓸 때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지는 그런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서는, 거기에 형성작용으로 힘쓴다;
yassa panassa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i, upekkhaṃ tattha bhāveti.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을 때 탐욕이 사라지는 그런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서는, 거기에 평온을 닦는다.
Tassa tassa dukkhanidānassa saṅkhāraṃ padahato saṅkhārappadhānā virāgo hoti –
그 각각의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형성작용에 힘쓰는 그에게 형성작용의 힘씀으로 탐욕이 사라진다 —
evampissa t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hoti.
이렇게 해서도 그의 그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Tassa tassa dukkhanidānassa ajjhupekkhato upekkhaṃ bhāvayato virāgo hoti –
그 각각의 괴로움의 근원을 무심히 지켜보며 평온을 닦는 그에게 탐욕이 사라진다 —
evampissa t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hoti.
이렇게 해서도 그의 그 괴로움이 닳아 없어진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도 노력이 열매 있고 힘씀이 열매 있다.
12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곰곰이 헤아려 본다. ‘내가 편한 대로 지내면 해로운 것들은 늘어나고 이로운 것들은 줄어든다. 그러나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쓰면 해로운 것들은 줄어들고 이로운 것들은 늘어난다. 차라리 내가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써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그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동안 해로운 것들은 줄어들고 이로운 것들은 늘어난다. 그는 훗날에는 더 이상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해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썼다.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에는 더 이상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쓰지 않는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
“비구들이여, 또한 비구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sukhaṃ kho me vihar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내면 해로운 법들이 늘어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
dukkhāya pana me attānaṃ padah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러나 괴로움을 무릅쓰고 내가 나 자신을 다그치면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늘어난다.
Yaṃnūnāhaṃ dukkhāya attānaṃ padaheyya’nti.
나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나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 어떨까.’
So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친다.
Tass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는 그에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늘어난다.
So na aparena samayen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는 그 뒤 언젠가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assa hi so, bhikkhave, bhikkhu atthāya dukkhāya attānaṃ padaheyya svāssa attho abhinipphanno hoti.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어떤 목적을 위해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쳤든, 그에게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Tasmā na aparena samayen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래서 그는 그 뒤 언젠가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화살장이가 화살대를 두 불덩이 사이에 놓고 달구고 데워서 곧게 펴 쓸 만하게 만든다. 비구들이여, 화살장이가 그렇게 화살대를 곧게 펴 쓸 만하게 만들고 나면, 훗날 다시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화살장이는 어떤 목적을 위해 화살대를 두 불덩이 사이에서 달구고 데워 곧게 펴 쓸 만하게 만들려 했다.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에는 화살장이가 더 이상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Seyyathāpi, bhikkhave, usukāro tejanaṃ dvīsu alātesu ātāpeti paritāpeti ujuṃ karoti kammaniyaṃ.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화살 만드는 이가 화살대를 두 개의 불붙은 장작 사이에서 달구고 두루 뜨겁게 하여 곧게 하고 다루기 좋게 만든다고 하자.
Yato kho, bhikkhave, usukārassa tejanaṃ dvīsu alātesu ātāpitaṃ hoti paritāpitaṃ ujuṃ kataṃ kammaniyaṃ, na so taṃ aparena samayena usukāro tejanaṃ dvīsu alātesu ātāpeti paritāpeti ujuṃ karoti kammaniyaṃ.
비구들이여, 화살 만드는 이가 화살대를 두 개의 불붙은 장작 사이에서 달구고 두루 뜨겁게 하여 곧게 하고 다루기 좋게 만든 뒤에는, 그 화살 만드는 이는 그 뒤 언젠가는 그것을 두 개의 불붙은 장작 사이에서 달구거나 두루 뜨겁게 하거나 곧게 하거나 다루기 좋게 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assa hi so, bhikkhave, atthāya usukāro tejanaṃ dvīsu alātesu ātāpeyya paritāpeyya ujuṃ kareyya kammaniyaṃ svāssa attho abhinipphanno hoti.
비구들이여, 그 화살 만드는 이가 어떤 목적을 위해 화살대를 두 개의 불붙은 장작 사이에서 달구고 두루 뜨겁게 하고 곧게 하고 다루기 좋게 하려 했든, 그에게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Tasmā na aparena samayena usukāro tejanaṃ dvīsu alātesu ātāpeti paritāpeti ujuṃ karoti kammaniyaṃ.
그래서 그 뒤 언젠가는 화살 만드는 이가 화살대를 두 개의 불붙은 장작 사이에서 달구거나 두루 뜨겁게 하거나 곧게 하거나 다루기 좋게 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곰곰이 헤아려 본다. ‘내가 편한 대로 지내면 해로운 것들은 늘어나고 이로운 것들은 줄어든다. 그러나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쓰면 해로운 것들은 줄어들고 이로운 것들은 늘어난다. 차라리 내가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써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그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동안 해로운 것들은 줄어들고 이로운 것들은 늘어난다. 그는 훗날에는 더 이상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해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썼다.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에는 더 이상 괴로움을 무릅쓰고 애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도 열매를 맺는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이렇게 성찰한다 —
‘yathāsukhaṃ kho me vihar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내면 해로운 법들이 늘어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
dukkhāya pana me attānaṃ padah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그러나 괴로움을 무릅쓰고 내가 나 자신을 다그치면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늘어난다.
Yaṃnūnāhaṃ dukkhāya attānaṃ padaheyya’nti.
나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나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 어떨까.’
So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친다.
Tass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는 그에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늘어난다.
So na aparena samayen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는 그 뒤 언젠가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Yassa hi so, bhikkhave, bhikkhu atthāya dukkhāya attānaṃ padaheyya svāssa attho abhinipphanno hoti.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어떤 목적을 위해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쳤든, 그에게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Tasmā na aparena samayena dukkhāya attānaṃ padahati.
그래서 그는 그 뒤 언젠가는 괴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도 노력이 열매 있고 힘씀이 열매 있다.
13
또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다. 그분은 공양받을 만한 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 지혜와 실천을 갖춘 분이다. 좋은 곳에 이르신 분, 세상을 아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위없는 분이다. 하늘과 인간의 스승, 깨달은 분, 세존이시다. 그는 하늘 신들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을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직접 알아 알려 준다.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도 그렇게 한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한다. 온전히 완전하고 청정한 청정범행도 드러낸다.
‘‘Puna caparaṃ, bhikkhave, idha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비구들이여, 또한 여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위없는 분이시며 길들일 사람을 이끄는 조련사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그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를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서 알린다.
So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그는 법을 설한다 —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뜻과 표현을 갖추어 온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그 삶을 드러낸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어느 가문에든 새로 태어난 사람이 그 법을 듣는다.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Taṃ dhammaṃ suṇāti gahapati vā gahapatiputto vā aññatarasmiṃ vā kule paccājāto.
장자나 장자의 아들, 또는 다른 어떤 가문에 태어난 이가 그 법을 듣는다.
So taṃ dhammaṃ sutvā 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
그는 그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그는 그 믿음을 갖추고 이렇게 곰곰이 헤아려 본다. ‘재가의 삶은 비좁고 먼지가 이는 길이다. 출가의 삶은 탁 트인 허공 같다. 집에 살면서 오로지 완전하고 오로지 청정하며 소라껍데기처럼 갈고 닦은 청정범행을 닦는 일은 쉽지 않다. 차라리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빛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면 어떨까.’
So tena saddhāpaṭilābhena samannāgato iti paṭisañcikkhati –
그는 그렇게 얻은 믿음을 지니고 이렇게 성찰한다:
‘sambādho gharāvāso rajāpatho, abbhokāso pabbajjā.
‘재가의 삶은 갑갑하고 티끌 이는 길이며, 출가는 확 트인 것이다.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ṅ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집에 살면서 이 온전히 원만하고 온전히 청정한, 소라처럼 매끈한 청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Yaṃ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nti.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떨까.’
그는 얼마 뒤 적은 재산이든 많은 재산이든, 적은 친족이든 많은 친족이든 모두 버린다.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토빛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So aparena samayena app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mahantaṃ vā bhogakkhandhaṃ pahāya, app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mahantaṃ vā ñātiparivaṭṭaṃ pahāya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그는 그 뒤 언젠가 적은 재산 더미를 버리거나 많은 재산 더미를 버리고, 적은 친척 무리를 버리거나 많은 친척 무리를 버린 뒤,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한다.
14
이렇게 출가한 그는 비구의 수행 규범과 생활 방식을 갖춘다. 그는 살생을 버리고 살생에서 벗어난다.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알며 자애롭게 지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해 연민하는 마음으로 산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그런 일에서 벗어난다. 주는 것만 받고 주기를 기다리며, 훔치지 않아 스스로 깨끗하게 지낸다. 청정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산다. 멀리 떠나서 성행위라는 세속의 법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에서 벗어난다. 그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에 매인다. 믿을 만하고,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So evaṃ pabbajito samāno bhikkhūnaṃ sikkhāsājīvasamāpanno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viharati.
그는 이렇게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 규범과 생활 규범을 갖추고서, 산 생명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산 생명을 죽이는 일을 삼간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으며, 부끄러움을 알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지녀, 모든 숨 쉬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며 머문다.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dinnādāyī dinnapāṭikaṅ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ti.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을 삼간다. 주는 것만 받고 주는 것만 기다리며, 훔치지 않아 스스로 깨끗한 자로 머문다.
Abrahmacariyaṃ pahāya brahmacārī hoti ārācārī virato methunā gāmadhammā.
청정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한 삶을 산다. 멀리 떨어져 지내며, 성행위라는 저속한 행위를 삼간다.
Musāvādaṃ pahāy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saccavādī saccasandho theto paccayiko avisaṃvādako lokassa.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삼간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에 매여 있으며, 든든하고 믿을 만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그런 말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들은 것을 저기에 가서 전해 이쪽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저기서 들은 것도 이쪽에 와서 전해 저쪽 사람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갈라진 사람들은 화해시키고, 화합한 사람들은 더욱 북돋운다. 그는 화합을 즐기고 기뻐하고 반기며, 화합을 만드는 말을 한다.
Pisuṇaṃ vācaṃ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이간하는 말을 버리고 이간하는 말을 삼간다.
ito sutvā na amutra akkhātā imesaṃ bhedāya, amutra vā sutvā na imesaṃ akkhātā amūsaṃ bhedāya –
여기서 듣고 저기 가서 말하여 이들을 갈라놓지 않고, 저기서 듣고 이들에게 말하여 저들을 갈라놓지 않는다 —
iti bhinnānaṃ vā sandhātā sahitānaṃ vā anuppadātā samaggārāmo samaggarato samagganandī samaggakaraṇiṃ vācaṃ bhāsitā hoti.
이렇게 갈라진 이들을 화합시키고 화합한 이들을 북돋우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기뻐하여, 화합을 이루는 말을 한다.
거친 말을 버리고 그런 말에서 벗어난다. 그는 흠이 없고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한다. 그 말은 정겹고 마음에 와닿으며 품위가 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말이다. 쓸데없는 말을 버리고 그런 말에서 벗어난다. 그는 때에 맞게, 사실대로 말한다. 이로운 말, 법에 맞는 말, 율에 맞는 말을 한다. 때에 맞춰 요점이 있고 절제되며 이로움이 담긴 말을 한다. 그것은 새겨 둘 만한 말이다.
Pharusaṃ vācaṃ pahāy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거친 말을 버리고 거친 말을 삼간다.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iṃ vācaṃ bhāsitā hoti.
흠 없고 귀에 즐거우며, 정겹고 마음에 닿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Samphappalāpaṃ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kālavādī bhūtavādī atthavādī dhammavādī vinayavādī, nidhānavatiṃ vācaṃ bhāsitā kālena sāpadesaṃ pariyantavatiṃ atthasaṃhitaṃ.
쓸데없는 잡담을 버리고 쓸데없는 잡담을 삼간다. 때에 맞게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뜻있는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한다. 간직할 만한 말을, 때맞추어, 근거를 들어, 한도를 지켜, 이익에 맞게 한다.
그는 씨앗과 초목을 해치는 일에서 벗어난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가 아닌 때에는 식사하지 않는다. 춤과 노래, 악기 연주, 공연 구경에서 벗어난다. 꽃다발과 향, 향유로 몸을 치장하고 꾸미는 일에서 벗어난다. 높고 큰 침상에서도 벗어난다. 금과 은, 익히지 않은 곡식, 날고기를 받지 않는다. 여자와 소녀, 남녀 종도 받지 않는다. 염소와 양, 닭과 돼지, 코끼리와 소, 말과 암말도 받지 않는다. 논밭과 땅도 받지 않는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오가는 일에서 벗어난다. 사고파는 일에서 벗어난다. 저울과 금속 그릇과 되를 속이는 일에서 벗어난다. 뇌물을 받고 속이고 사기 치는 일에서 벗어난다. 베고 죽이고 묶고 강도질하고 약탈하고 폭력을 쓰는 일에서 벗어난다.
So bījagāmabhūtagāmasamārambhā paṭivirato hoti.
그는 씨앗과 초목을 해치는 일을 삼간다.
Ekabhattiko hoti rattūparato virato vikālabhojanā.
하루 한 끼만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때 아닌 때에 먹는 일을 삼간다.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ā paṭivirato hoti.
춤과 노래와 음악과 구경거리를 보는 일을 삼간다.
Mālāgandhavilepanadhāraṇ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ṭivirato hoti.
화환과 향과 바르는 향을 지녀 몸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을 삼간다.
Uccāsayanamahāsayanā paṭivirato hoti.
높고 큰 침상을 쓰는 일을 삼간다.
Jātarūparajat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금과 은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dhaññ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곡식을 받는 일을 삼간다.
Āmakamaṃ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익히지 않은 고기를 받는 일을 삼간다.
Itthikumāri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여자와 소녀를 받는 일을 삼간다.
Dāsidās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하녀와 하인을 받는 일을 삼간다.
Ajeḷak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염소와 양을 받는 일을 삼간다.
Kukkuṭasūkar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닭과 돼지를 받는 일을 삼간다.
Hatthigavassavaḷava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을 받는 일을 삼간다.
Khettavatthupaṭiggahaṇā paṭivirato hoti.
밭과 땅을 받는 일을 삼간다.
Dūteyyapahiṇagamanānuyogā paṭivirato hoti.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전갈을 나르는 일을 삼간다.
Kayavikkayā paṭivirato hoti.
사고파는 일을 삼간다.
Tulākūṭakaṃsakūṭamānakūṭā paṭivirato hoti.
저울을 속이고 그릇을 속이고 되를 속이는 일을 삼간다.
Ukkoṭanavañcananikatisāciyogā paṭivirato hoti.
뇌물을 쓰고 속이고 사기 치고 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일을 삼간다.
Chedanavadhabandhanaviparāmosaālopasahasākārā paṭivirato hoti.
자르고 죽이고 묶고 길을 막아 빼앗고 노략질하고 힘으로 억누르는 일을 삼간다.
그는 몸을 가릴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어디로 가든 필요한 것만 지니고 떠난다. 날개 달린 새는 어디로 날아가든 자기 날개의 무게만 싣고 날아간다. 이와 같이 비구도 몸을 가릴 만큼의 옷과 배를 채울 만큼의 탁발 음식에 만족한다. 어디로 가든 필요한 것만 지니고 떠난다.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So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그는 몸을 지킬 만한 옷과 배를 채울 만한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가든 그것만 챙겨 들고 간다.
Seyyathāpi nāma pakkhī sakuṇo yena yeneva ḍeti sapattabhārova ḍeti, evameva bhikkhu santuṭṭho hoti kāyaparihārikena cīvarena, kucchiparihārikena piṇḍapātena;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로 날든 제 날개만 지고 나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지킬 만한 옷과 배를 채울 만한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so yena yeneva pakkamati samādāyeva pakkamati.
그는 어디로 가든 그것만 챙겨 들고 간다.
So iminā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navajj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어, 안으로 허물없는 행복을 느낀다.
15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아도 전체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세부 모습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눈의 능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밀려든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수행한다. 눈의 능력을 지키고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볼 때에도 그렇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법을 알 때에도 그렇다. 어느 경우에도 전체 모습과 세부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마음의 능력을 단속하지 않고 지내면 탐욕과 근심, 나쁘고 해로운 상태들이 밀려든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수행한다. 마음의 능력을 지키고 단속한다. 그는 이 성스러운 감각 능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흔들림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So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눈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눈의 기능을 보호하고, 눈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pe… jivhāya rasaṃ sāyitvā…pe…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pe…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귀로 소리를 듣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귀의 기능을 보호하고, 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코로 냄새를 맡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코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코의 기능을 보호하고, 코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혀로 맛을 보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혀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혀의 기능을 보호하고, 혀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몸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몸의 기능을 보호하고, 몸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도 그 표상을 취하지 않고 세부 모습을 취하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01:15.1 ~ PN:mn101/15.2에서 되살렸습니다.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마음의 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흘러들 것이므로, 그것을 단속하려고 실천하고, 마음의 기능을 보호하고, 마음의 기능에서 단속에 이른다.
So iminā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ajjhattaṃ abyāsekasukh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어,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행복을 느낀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설 때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앞을 보고 둘러볼 때도, 몸을 굽히고 펼 때도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가사와 발우를 지닐 때도 그렇게 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대소변을 볼 때도 그렇게 한다. 가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어 있고 말하고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며 행동한다.
‘‘So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그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둘러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굽힐 때도 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의와 발우와 옷을 지닐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대소변을 볼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하고, 갈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또렷이 알아차리며 행한다.
16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성스러운 만족과 감각 능력의 단속, 성스러운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도 갖추었다. 이런 그가 한적한 거처를 찾는다. 숲, 나무 밑, 산, 골짜기, 산속 동굴, 무덤가, 깊은 숲, 노지, 짚더미 같은 곳이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앉는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둔다.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그는 이 성스러운 계의 다발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만족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고, 이 성스러운 마음챙김과 또렷한 알아차림을 갖추어, 외딴 거처를 가까이한다 — 숲, 나무 아래, 산, 골짜기, 산굴, 무덤, 숲속 외딴곳, 한데, 짚더미를.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워, 마음챙김을 앞으로 확립하고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그렇게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해 연민하며,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해이함과 졸음을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지낸다. 밝음을 떠올리고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지니며, 해이함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고 지낸다. 안으로 마음이 고요해져,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지낸다. 해로움 없는 상태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망설이지 않으며,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는 이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린다. 덮개는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한다. 그리하여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는 첫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이 선정에는 홀로 있음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불확실]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악의와 성냄을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물며, 모든 숨 쉬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이익을 가엾이 여기고, 악의와 성냄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게으름과 졸음을 버리고 게으름과 졸음을 여의어 머물며, 빛을 인식하고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게으름과 졸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들뜸과 후회를 버리고 들뜨지 않고 머물며, 안으로 마음이 가라앉고, 들뜸과 후회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 머물며, 유익한 법들에 대해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헤매지 않고,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한다.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다섯 장애를 버리고,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비구들이여, 또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맑고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하여 둘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이 선정에는 일으킨 생각도 지속적인 고찰도 없고, 삼매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 고찰이 없으며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비구들이여, 또 비구는 기쁨에 대한 욕구마저 사라져 평온하게 지낸다.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지니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성자들은 이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평온하고 마음챙김이 있어 즐겁게 지낸다.’ 이런 셋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이 잦아들어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성자들이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비구들이여, 또 비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린다. 그에 앞서 기쁨과 근심도 이미 사라졌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과 마음챙김으로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불확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17
이렇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하며 맑고 흠이 없어진다.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고 다루기 쉬워지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을 기억한다.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도 기억한다. 여러 번 세계가 무너지는 겁, 여러 번 세계가 생겨나는 겁, 여러 번 무너지고 생겨나는 겁도 기억한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에 이런 음식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에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에 이런 음식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으로 삶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그 모습과 세부 사항까지 함께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여러 수축하는 겁, 여러 팽창하는 겁, 여러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저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거기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와 같이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18
이렇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하며 맑고 흠이 없어진다.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고 다루기 쉬워지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고 태어나는 중생, 낮은 이와 높은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를 본다.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도 본다. 중생들이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가는 곳을 안다. ‘아, 이 존귀한 이들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그릇된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존귀한 이들은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이처럼 그는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고 태어나는 중생, 낮은 이와 높은 이, 아름다운 이와 추한 이를 본다. 좋은 곳에 가는 이와 나쁜 곳에 가는 이도 본다. 중생들이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가는 곳을 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그는 청정하여 사람의 눈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빼어나며, 잘생기고 못생기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지은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말로 짓는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고, 삿된 견해를 지녔고, 삿된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또는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말로 짓는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헐뜯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고, 바른 견해에 따른 업을 지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라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여 사람의 눈을 넘어선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빼어나며, 잘생기고 못생기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간 중생들을, 지은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Evampi,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19
이렇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하며 맑고 흠이 없어진다.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고 다루기 쉬워지며,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는 번뇌가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안다. 또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들이 번뇌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하고도 있는 그대로 안다. 또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벗어난다. 벗어났을 때 ‘벗어났다’는 앎이 생긴다. 그는 안다.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고, 이 상태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다.’ 비구들이여, 이렇게도 노력은 열매를 맺고 정진은 열매를 맺는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은 이렇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여래들에게는 이치에 맞는 칭찬받을 만한 근거 열 가지가 따라온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그의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는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은 마쳤으며,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안다.
Evampi kho, bhikkhave, saphalo upakkamo hoti, saphalaṃ padhānaṃ.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렇게도 노력은 결실이 있고, 정진은 결실이 있다.
Evaṃvādī, bhikkhave, tathāgatā.
비구들이여, 여래들은 이렇게 말한다.
Evaṃvādīnaṃ, bhikkhave, tathāgatānaṃ dasa sahadhammikā pāsaṃsaṭṭhānā āgacchan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여래들에게 법에 맞는 열 가지 칭찬받을 근거가 온다.
20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일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분명 전생에 좋은 행위를 했던 것이다. 지금 이처럼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tathāgato pubbe sukatakammakārī yaṃ etarahi evarūpā anāsavā sukhā vedanā vedeti.
비구들이여, 여래는 분명히 전생에 좋은 업을 지은 자다 — 지금 이런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최고신이 만든 일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분명 선한 최고신이 만든 존재이다. 지금 이처럼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tathāgato bhaddakena issarena nimmito yaṃ etarahi evarūpā anāsavā sukhā vedanā vedeti.
비구들이여, 여래는 분명히 훌륭한 신이 창조한 자다 — 지금 이런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우연한 만남과 본성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분명 좋은 만남을 지닌 이다. 지금 이처럼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마주친 조건과 타고난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tathāgato kalyāṇasaṅgatiko yaṃ etarahi evarūpā anāsavā sukhā vedanā vedeti.
비구들이여, 여래는 분명히 좋은 조건을 만난 자다 — 지금 이런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태어난 신분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분명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 이다. 지금 이처럼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tathāgato kalyāṇābhijātiko yaṃ etarahi evarūpā anāsavā sukhā vedanā vedeti.
비구들이여, 여래는 분명히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 자다 — 지금 이런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현재 생의 노력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분명 현재 생에서 좋게 노력하는 이다. 지금 이처럼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불확실]
Sace, bhikkhav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addhā, bhikkhave, tathāgato kalyāṇadiṭṭhadhammūpakkamo yaṃ etarahi evarūpā anāsavā sukhā vedanā vedeti.
비구들이여, 여래는 분명히 지금 여기서 노력을 잘한 자다 — 지금 이런 번뇌 없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일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만약 중생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전생에 지은 일 때문이 아니라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Sace, bhikkhav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no ce sattā pubbekat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만약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최고신이 만든 일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만약 중생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최고신이 만든 일 때문이 아니라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Sace, bhikkhav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no ce sattā issaranimmān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만약 중생들이 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우연한 만남과 본성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만약 중생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우연한 만남과 본성 때문이 아니라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Sace, bhikkhav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마주친 조건과 타고난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no ce sattā saṅgatibhāv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만약 중생들이 마주친 조건과 타고난 성질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태어난 신분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만약 중생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태어난 신분 때문이 아니라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Sace, bhikkhav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no ce sattā abhijāti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만약 중생들이 타고난 신분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현재 생의 노력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만약 중생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현재 생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Sace, bhikkhav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비구들이여, 만약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면,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no ce sattā diṭṭhadhammūpakkamahetu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nti, pāsaṃso tathāgato.
만약 중생들이 지금 여기서의 노력을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해도, 여래는 칭찬받을 만하다.
비구들이여, 여래들은 이렇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여래들에게는 이 열 가지, 이치에 맞는 칭찬받을 만한 근거가 따라온다.
Evaṃvādī, bhikkhave, tathāgatā.
비구들이여, 여래들은 이렇게 말한다.
Evaṃvādīnaṃ, bhikkhave, tathāgatānaṃ ime dasa sahadhammikā pāsaṃsaṭṭhānā āgacchantī’’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여래들에게 법에 맞는 이 열 가지 칭찬받을 근거가 온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비구들은 크게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데바다하 경』이 첫째로 끝났다.
Devadah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데와다하 경이 끝났다.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