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unakkhattasuttaṃ
5. 수낙캇따 경
55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 뾰족지붕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 앞에서 자신이 궁극의 지혜를 얻었다고 밝혔다.
Evaṃ me sutaṃ –
나는 이렇게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ṃ.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의 큰 숲,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ehi bhikkhūhi bhagavato santike aññā byākatā hoti –
그런데 그때 여러 비구가 세존 앞에서 완전한 앎을 밝혔다 —
“태어남은 다했습니다.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m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릿차비 족의 아들 수낙캇타가 이 소식을 들었다. “많은 비구들이 세존 앞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었다고 밝혔다는군. ‘태어남은 다했습니다.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고 말이야.”
Assosi kho sunakkhatto licchaviputto –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는 들었다 —
‘‘sambahulehi kira bhikkhūhi bhagavato santike aññā byākatā hoti –
“여러 비구가 세존 앞에서 완전한 앎을 밝혔다고 한다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m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수낙캇타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sunakkhatto licchav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는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sunakkhatto licchav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비구들이 세존 앞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태어남은 다했습니다.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고 말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말한 비구들은 정말 바르게 궁극의 지혜를 밝힌 것입니까? 아니면 그 가운데에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교만 때문에 그렇게 밝힌 비구들도 있습니까?”
‘‘sutaṃ metaṃ, bhante –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sambahulehi kira bhikkhūhi bhagavato santike aññā byākatā –
‘여러 비구가 세존 앞에서 완전한 앎을 밝혔다고 한다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m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Ye te, bhante, bhikkhū bhagavato santike aññaṃ byākaṃsu –
세존이시여, 세존 앞에서 완전한 앎을 밝힌 그 비구들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mā’’ti, kacci te, bhante, bhikkhū sammadeva aññaṃ byākaṃsu udāhu santetthekacce bhikkhū adhimānena aññaṃ byākaṃsū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한 그 비구들은, 세존이시여, 참으로 바르게 완전한 앎을 밝힌 것입니까, 아니면 여기 어떤 비구들은 지나친 자만으로 완전한 앎을 밝힌 것입니까?”
56
“수낙캇타여, 내 앞에서 궁극의 지혜를 얻었다고 밝힌 비구들이 있다. 곧 ‘태어남은 다했습니다.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고 말한 비구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바르게 궁극의 지혜를 밝힌 이도 있고, 교만 때문에 그렇게 밝힌 이도 있다. 바르게 밝힌 비구들에게는 그 말이 말한 그대로 된다. 그러나 교만 때문에 밝힌 비구들에 대해서는, 수낙캇타여, 여래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어야겠다.’ 수낙캇타여, 이럴 때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어야겠다.’ 그런데 어떤 어리석은 자들이 질문을 이리저리 꾸며서 여래에게 와서 묻는다. 그러면, 수낙캇타여, 여래가 품었던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어야겠다’ 하는 생각마저 달라지고 만다.”
‘‘Ye te, sunakkhatta, bhikkhū mama santike aññaṃ byākaṃsu –
“수낙캇따여, 내 앞에서 완전한 앎을 밝힌 그 비구들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m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우리는 압니다’라고 한 그들 말이다.
‘‘Santetthekacce bhikkhū sammadeva aññaṃ byākaṃsu, santi panidhekacce bhikkhū adhimānenapi aññaṃ byākaṃsu.
여기 어떤 비구들은 참으로 바르게 완전한 앎을 밝혔고, 또 여기 어떤 비구들은 지나친 자만으로도 완전한 앎을 밝혔다.
Tatra, sunakkhatta, ye te bhikkhū sammadeva aññaṃ byākaṃsu tesaṃ taṃ tatheva hoti;
수낙캇따여, 그 가운데 바르게 완전한 앎을 밝힌 그 비구들,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대로다.
ye pana te bhikkhū adhimānena aññaṃ byākaṃsu tatra, sunakkhatta, tathāgatassa evaṃ hoti –
그러나 지나친 자만으로 완전한 앎을 밝힌 그 비구들, 그 경우에 수낙캇따여, 여래에게는 이런 생각이 든다 —
‘dhammaṃ nesaṃ desessa’nti.
‘그들에게 법을 설하겠다’라고.
Evañcettha, sunakkhatta, tathāgatassa hoti –
수낙캇따여, 여기서 여래에게는 이렇게 된다 —
‘dhammaṃ nesaṃ desessa’nti.
‘그들에게 법을 설하겠다’라고.
Atha ca panidhekacce moghapurisā pañhaṃ abhisaṅkharitvā abhisaṅkharitvā tathāgataṃ upasaṅkamitvā pucchanti.
그런데 여기 어떤 쓸모없는 자들은 물음을 이리저리 꾸미고 꾸며서 여래에게 다가와 묻는다.
Tatra, sunakkhatta, yampi tathāgatassa evaṃ hoti –
수낙캇따여, 그 경우에 여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
‘dhammaṃ nesaṃ desessa’nti tassapi hoti aññathatta’’nti.
‘그들에게 법을 설하겠다’라는 그것마저 달라진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행복하게 가신 분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때입니다. 비구들이 세존께 듣고 잘 간직할 것입니다.”
‘‘Etassa bhagavā kālo, etassa sugata kālo, yaṃ bhagavā dhammaṃ deseyya.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그때입니다.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지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낙캇타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릿차비 족의 아들 수낙캇타는 “예,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Tena hi, sunakkhatta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그렇다면 수낙캇따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sunakkhatto licchaviputt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는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57
“수낙캇타여,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들이 있다. 바람직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정겨우며, 욕망을 일으켜 탐할 만한 것들이다. 귀로 알 수 있는 소리들, 코로 알 수 있는 냄새들, 혀로 알 수 있는 맛들,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들도 똑같이 그러하다. 수낙캇타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Pañca kho ime, sunakkhatta, kāmaguṇā.
“수낙캇따여, 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 있다.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
눈으로 아는 물질들은 원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고 흡족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킨다. 귀로 아는 소리들은 원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고 흡족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킨다. 코로 아는 냄새들은 원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고 흡족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킨다. 혀로 아는 맛들은 원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고 흡족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킨다. 몸으로 아는 감촉들은 원하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고 흡족한 것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감각적 욕망과 이어져 탐욕을 일으킨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22:190.3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kho, sunakkhatta, pañca kāmaguṇā.
수낙캇따여, 이것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58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세속의 미끼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경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lokāmisādhimutto assa.
“그런데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이 세상의 미끼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
Lokāmis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세상의 미끼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āneñj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흔들림 없음과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수낙캇타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이나 읍을 떠나 오랫동안 나가 있었다고 하자. 그가 그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 그는 그 사람에게 마을이나 읍이 평안한지, 탁발할 음식은 넉넉한지, 병은 없는지 묻는다. 그러면 상대는 마을이나 읍이 평안하고 음식이 넉넉하며 병이 없다고 말해 준다. 수낙캇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귀를 열고, 알려는 마음을 내지 않겠느냐? 그를 가까이하고 함께 있어 기뻐하지 않겠느냐?”
Seyyathāpi, sunakkhatta, puriso sakamhā gāmā vā nigamā vā ciravippavuttho assa.
수낙캇따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이나 성읍을 오래 떠나 있었다고 하자.
So aññataraṃ purisaṃ passeyya tamhā gāmā vā nigamā vā acirapakkantaṃ.
그가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얼마 전에 떠나온 어떤 사람을 본다고 하자.
So taṃ purisaṃ tassa gāmassa vā nigamassa vā khematañca subhikkhatañca appābādhatañca puccheyya;
그는 그 사람에게 그 마을이나 성읍이 안전한지, 먹을 것이 넉넉한지, 병이 없는지 물을 것이다.
tassa so puriso tassa gāmassa vā nigamassa vā khematañca subhikkhatañca appābādhatañca saṃseyya.
그러면 그 사람은 그에게 그 마을이나 성읍이 안전한지, 먹을 것이 넉넉한지, 병이 없는지 알려 줄 것이다.
Taṃ kiṃ maññasi, sunakkhatta, api nu so puriso tassa purisassa sussūseyya, sotaṃ odaheyy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yya, tañca purisaṃ bhajeyya, tena ca vittiṃ āpajjeyyā’’ti?
수낙캇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고,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세속의 미끼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경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세속의 미끼에 마음이 쏠린 사람은 흔들림 없는 경지에 묶는 족쇄에서 풀려나 있구나.’ 하고.”
‘‘Evameva kho, sunakkhatt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lokāmisādhimutto assa.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사람이 세상의 미끼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
Lokāmis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세상의 미끼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āneñj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흔들림 없음과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
‘āneñjasaṃyojanena hi kho visaṃyutto lokāmisādhimutto purisapuggalo’’’ti.
‘세상의 미끼에 마음을 둔 사람은 흔들림 없음의 족쇄에서 풀려나 있다’라고.”
59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흔들림 없는 경지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세속의 미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āneñjādhimutto assa.
“그런데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이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
Āneñj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lokāmis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세상의 미끼와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수낙캇타여, 줄기에서 떨어진 누런 잎은 다시 푸르러질 수 없다. 이와 같이, 수낙캇타여, 흔들림 없는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에게서는 세속의 미끼에 묶는 족쇄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흔들림 없는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은 세속의 미끼에 묶는 족쇄에서 풀려나 있구나.’ 하고.”[불확실]
Seyyathāpi, sunakkhatta, paṇḍupalāso bandhanā pavutto abhabbo haritattāya;
수낙캇따여, 예를 들어 누렇게 시든 잎이 꼭지에서 떨어져 나가면 다시 푸르러질 수 없는 것과 같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 kho, sunakkhatta, āneñjādhimuttassa purisapuggalassa ye lokāmisasaṃyojane se pavutte.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세상의 미끼의 족쇄들은 떨어져 나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
‘lokāmisasaṃyojanena hi kho visaṃyutto āneñjādhimutto purisapuggalo’’’ti.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둔 사람은 세상의 미끼의 족쇄에서 풀려나 있다’라고.”
60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경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ākiñcaññāyatanādhimutto assa.
“그런데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
Ākiñcaññāyatan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āneñj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흔들림 없음과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수낙캇타여, 예를 들어 큰 바위가 둘로 쪼개지면 다시 붙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수낙캇타여,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에게서는 흔들림 없는 경지에 묶는 족쇄가 쪼개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은 흔들림 없는 경지에 묶는 족쇄에서 풀려나 있구나.’ 하고.”[불확실]
Seyyathāpi, sunakkhatta, puthusilā dvedhābhinnā appaṭisandhikā hoti;
수낙캇따여, 예를 들어 넓적한 바위가 둘로 쪼개지면 다시 붙일 수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sunakkhatta, ākiñcaññāyatanādhimuttassa purisapuggalassa ye āneñjasaṃyojane se bhinne.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흔들림 없음의 족쇄들은 쪼개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
‘āneñjasaṃyojanena hi kho visaṃyutto ākiñcaññāyatanādhimutto purisapuggalo’’’ti.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은 흔들림 없음의 족쇄에서 풀려나 있다’라고.”
61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ādhimutto assa.
“그런데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ākiñcaññāyatan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경지와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수낙캇타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토해 버렸다고 하자. 수낙캇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그 음식을 다시 먹고 싶어 하겠느냐?”
Seyyathāpi, sunakkhatta, puriso manuññabhojanaṃ bhuttāvī chaḍḍeyya.
수낙캇따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게워 냈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sunakkhatta, api nu tassa purisassa tasmiṃ bhatte puna bhottukamyatā assā’’ti?
수낙캇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에게 그 음식을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세존이시여, 그 음식은 역겨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Aduñhi, bhante, bhattaṃ paṭikūlasammata’’nti.
“세존이시여, 그 음식은 역겨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수낙캇타여,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묶는 족쇄가 토해져 나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마음이 쏠린 사람은 아무것도 없음의 경지에 묶는 족쇄에서 풀려나 있구나.’ 하고.”[불확실]
‘‘Evameva kho, sunakkhatt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ādhimuttassa purisapuggalassa ye ākiñcaññāyatanasaṃyojane se vante.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족쇄들은 게워 낸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
‘ākiñcaññāyatanasaṃyojanena hi kho visaṃyutt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ādhimutto purisapuggalo’ti.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마음을 둔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족쇄에서 풀려나 있다’라고.
62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은 바르게 열반에 마음이 쏠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이야기만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는 그 이야기를 따라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를 열지 않고, 알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불확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o purisapuggalo sammā nibbānādhimutto assa.
“그런데 수낙캇따여, 여기 어떤 사람이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자일 수 있다는 이런 도리가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mā nibbānādhimuttassa kho, sunakkhatta, purisapuggalassa tappatirūpī ceva kathā saṇṭhāti, tadanudhammañca anuvitakketi, anuvicāreti, tañca purisaṃ bhaja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말만이 자리 잡고, 그에 따르는 법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살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paṭisaṃyuttāya ca pana kathāya kacchamānāya na sussūsati, na sotaṃ odaha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na ca taṃ purisaṃ bhajati, na ca tena vittiṃ āpajjati.
그러나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와 얽힌 말이 오갈 때에는 듣고자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마음을 세우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를 통해 기쁨을 얻지 않는다.
수낙캇타여, 예를 들어 야자나무는 꼭대기가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다. 이와 같이, 수낙캇타여, 바르게 열반에 마음이 쏠린 사람에게서는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묶는 족쇄가 뿌리째 잘려 나갔다. 야자나무 그루터기처럼 되어, 아주 없어져서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바르게 열반에 마음이 쏠린 사람은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경지에 묶는 족쇄에서 풀려나 있구나.’ 하고.”[불확실]
Seyyathāpi, sunakkhatta, tālo matthakacchinno abhabbo puna viruḷhiyā;
수낙캇따여, 예를 들어 야자나무가 그 꼭대기가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sunakkhatta, sammā nibbānādhimuttassa purisapuggalassa y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ṃyojane se ucchinnamūle tālāvatthukate anabhāvaṃkate āyatiṃ anuppādadhamme.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족쇄들은 뿌리째 끊기고, 밑동 잘린 야자나무처럼 되어, 다시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evamassa veditabbo –
그런 사람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ṃyojanena hi kho visaṃyutto sammā nibbānādhimutto purisapuggalo’’’ti.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은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족쇄에서 풀려나 있다’라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63
수낙캇타여, 이 가르침을 따르는 비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사문께서는 갈애가 화살이고 무명이 독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욕과 탐욕과 악의 때문에 그것이 아픔을 일으킨다고도 하셨다. 나는 갈애의 화살을 버렸고 무명의 독을 걷어냈다.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그렇게 자만할 뿐이다. 그는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을 가까이한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상을 보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듣는 일에 몰두한다.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맡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보는 일에 몰두한다.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대상을 헤아리는 일에도 몰두한다. 이렇게 몰두하는 그의 마음을 탐욕이 무너뜨린다. 탐욕에 마음이 무너지면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는다.[불확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massa –
“그런데 수낙캇따여, 이런 도리가 있다 — 여기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taṇhā kho sallaṃ samaṇena vuttaṃ, avijjāvisadoso, chandarāgabyāpādena ruppati.
‘갈애를 사문은 화살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독기는 욕구와 탐냄과 악의로 덧난다.
Taṃ me taṇhāsallaṃ pahīnaṃ, apanīto avijjāvisadoso, sammā nibbānādhimuttohamasmī’ti.
그 갈애의 화살을 나는 버렸고, 무명의 독기도 제거되었으며, 나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māni assa atathaṃ samānaṃ.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그는 그렇게 자만하는 자일 수 있다.
So yāni sammā nibbānādhimuttassa asappāyāni tāni anuyuñjeyya;
그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이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 그것들을 좇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anuyuñjeyya.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을 것이다.
Tass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anuyuttassa rāgo cittaṃ anuddhaṃseyya.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덮칠 것이다.
So rāgānuddhaṃsitena citte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탐욕이 덮친 마음으로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를 것이다.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이 독이 짙게 발린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와 동료, 친지와 혈육이 화살 치료를 하는 외과의사를 불러온다. 의사는 칼로 상처 입구를 짼다. 그런 다음 탐침으로 화살을 찾는다. 화살을 찾으면 뽑아내고 독을 제거한다. 그러나 독의 찌꺼기가 남는다. 찌꺼기가 남았음을 알고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자네 화살은 뽑혔네. 독도 걷어냈지만 찌꺼기가 아직 남아 있네. 이 정도면 자네에게 위험이 되기에 충분하네. 이로운 음식만 먹게.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다가 상처가 곪아 터지는 일이 없도록 하게. 때때로 상처를 씻고, 때때로 입구에 약을 바르게. 때맞춰 씻지도 바르지도 않아 고름과 피가 입구를 덮는 일이 없도록 하게. 또 바람과 햇볕 속을 돌아다니지 말게. 그러다 먼지와 가시가 입구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게. 그리고 여보게,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상처를 지키며 지내게.’[불확실]
‘‘Seyyathāpi, sunakkhatta, puriso sallena viddho assa savisena gāḷhūpalepanena.
“수낙캇따여, 마치 어떤 사람이 독이 묻고 두텁게 발린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이 화살을 뽑는 의사를 불러왔다고 하자.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eyya.
그의 그 화살을 뽑는 의사가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낼 것이다.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itvā esaniyā sallaṃ eseyya.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내고서 탐침으로 화살을 찾을 것이다.
Esaniyā sallaṃ esitvā sallaṃ abbuheyya, apaneyya visadosaṃ saupādisesaṃ.
탐침으로 화살을 찾고서 화살을 뽑아내고, 독기를 남은 것이 있는 채로 제거할 것이다.
Saupādisesoti jānamāno so evaṃ vadeyya –
남은 것이 있음을 알면서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ubbhataṃ kho te sallaṃ, apanīto visadoso saupādiseso.
‘여보게, 그대의 화살은 뽑혔고, 독기는 제거되었으나 남은 것이 있네.
Analañca te antarāyāya.
그리고 그것이 그대에게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네.
Sappāyāni ceva bhojanāni bhuñjeyyāsi, mā te asappāyāni bhojanāni bhuñjato vaṇo assāvī assa.
이로운 음식을 먹게.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어 그대의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는 일이 없도록 하게.
Kālena kālañca vaṇaṃ dhoveyyāsi,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eyyāsi, mā te na kālena kālaṃ vaṇaṃ dhovato na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ato pubbalohitaṃ vaṇamukhaṃ pariyonandhi.
그리고 때때로 상처를 씻게,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게. 때때로 상처를 씻지 않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지 않아 고름과 피가 그대의 상처 입구를 뒤덮는 일이 없도록 하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ā ca vātātape cārittaṃ anuyuñji, mā te vātātape cārittaṃ anuyuttassa rajosūkaṃ vaṇamukhaṃ anuddhaṃsesi.
그리고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니지 말게.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녀 먼지와 티끌이 그대의 상처 입구를 덮치는 일이 없도록 하게.
Vaṇānurakkhī ca, ambho purisa, vihareyyāsi vaṇasāropī’ti.
여보게, 상처를 지키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지내게.’
그런데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화살은 뽑혔다. 독도 찌꺼기 없이 말끔히 제거되었다. 이제 내게 위험이 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 그러니 상처가 곪아 터진다. 게다가 때때로 상처를 씻지도 않고, 약을 바르지도 않는다. 때맞춰 씻고 바르지 않으니 고름과 피가 입구를 덮는다. 또 바람과 햇볕 속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먼지와 가시가 입구를 더럽힌다. 그는 상처를 지키지도 않고, 아물 때까지 조심하지도 않는다. 이롭지 않은 이 행동에, 제거하고도 남아 있던 더러운 독 찌꺼기가 겹친다. 그래서 상처가 커진다. 상처가 커지면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는다.[불확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ubbhataṃ kho me sallaṃ, apanīto visadoso anupādiseso.
‘내 화살은 뽑혔고, 독기는 남은 것 없이 제거되었다.
Analañca me antarāyāyā’ti.
그리고 그것이 내게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다.’
So asappāyāni ceva bhojanāni bhuñjeyya.
그리하여 그는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을 것이다.
Tassa asappāyāni bhojanāni bhuñjato vaṇo assāvī assa.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는 그의 상처에서 진물이 흐를 것이다.
Na ca kālena kālaṃ vaṇaṃ dhoveyya, na ca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eyya.
그리고 때때로 상처를 씻지 않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na kālena kālaṃ vaṇaṃ dhovato, na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ato pubbalohitaṃ vaṇamukhaṃ pariyonandheyya.
때때로 상처를 씻지 않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지 않는 그의 상처 입구를 고름과 피가 뒤덮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ātātape ca cārittaṃ anuyuñjeyya.
그리고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닐 것이다.
Tassa vātātape cārittaṃ anuyuttassa rajosūkaṃ vaṇamukhaṃ anuddhaṃseyya.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니는 그의 상처 입구를 먼지와 티끌이 덮칠 것이다.
Na ca vaṇānurakkhī vihareyya na vaṇasāropī.
그리고 상처를 지키지도 않고 상처를 아물게 하지도 않으며 지낼 것이다.
Tassa imissā ca asappāyakiriyāya, asuci visadoso apanīto saupādiseso tadubhayena vaṇo puthuttaṃ gaccheyya.
그가 이렇게 이롭지 않게 한 것과, 그 부정한 독기가 남은 것이 있는 채로 제거된 것 — 그 둘로 인해 상처가 번질 것이다.
So puthuttaṃ gatena vaṇe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번진 상처로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를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수낙캇타여, 그와 같이 이 가르침을 따르는 비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사문께서는 갈애가 화살이고 무명이 독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욕과 탐욕과 악의 때문에 그것이 아픔을 일으킨다고도 하셨다. 나는 갈애의 화살을 버렸고 무명의 독을 걷어냈다.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그렇게 자만할 뿐이다. 그는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을 가까이한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상을 보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듣는 일에 몰두한다.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맡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보는 일에 몰두한다.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대상을 헤아리는 일에도 몰두한다. 이렇게 몰두하는 그의 마음을 탐욕이 무너뜨린다. 탐욕에 마음이 무너지면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는다. 수낙캇타여, 성자의 율에서 수행을 버리고 낮은 생활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곧 죽음이다. 그리고 더럽혀진 어떤 허물을 저지르는 것, 이것이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이다.[불확실]
‘‘Evameva kho, sunakkhatt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massa –
“수낙캇따여, 꼭 이와 같이 이런 도리가 있다 — 여기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taṇhā kho sallaṃ samaṇena vuttaṃ, avijjāvisadoso chandarāgabyāpādena ruppati.
‘갈애를 사문은 화살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독기는 욕구와 탐냄과 악의로 덧난다.
Taṃ me taṇhāsallaṃ pahīnaṃ, apanīto avijjāvisadoso, sammā nibbānādhimuttohamasmī’ti.
그 갈애의 화살을 나는 버렸고, 무명의 독기도 제거되었으며, 나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ṃmāni assa atathaṃ samānaṃ.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그는 그렇게 자만하는 자일 수 있다.
So yāni sammā nibbānādhimuttassa asappāyāni tāni anuyuñjeyy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anuyuñjeyy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anuyuñjeyya.
그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이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 그것들을 좇을 것이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anuyuttass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anuyuttassa rāgo cittaṃ anuddhaṃseyya.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덮칠 것이다.
So rāgānuddhaṃsitena citten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탐욕이 덮친 마음으로 그는 죽음에 이르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를 것이다.
Maraṇañhetaṃ, sunakkhatta, ariyassa vinaye yo sikkhaṃ paccakkhāya hīnāyāvattati;
수낙캇따여, 성스러운 율에서 이것이 죽음이다 — 배움을 저버리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maraṇamattañhetaṃ, sunakkhatta, dukkhaṃ yaṃ aññataraṃ saṃkiliṭṭhaṃ āpattiṃ āpajjati.
수낙캇따여, 이것이 죽을 만큼의 괴로움이다 — 더럽혀진 어떤 죄를 짓는 것이.[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64
수낙캇타여, 이 가르침을 따르는 비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사문께서는 갈애가 화살이고 무명이 독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욕과 탐욕과 악의 때문에 그것이 아픔을 일으킨다고도 하셨다. 나는 갈애의 화살을 버렸고 무명의 독을 걷어냈다.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두고 있다.’ 그가 정말로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상을 보거나,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듣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맡거나,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보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느끼거나,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대상을 헤아리는 일에도 몰두하지 않는다. 이렇게 몰두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탐욕은 무너뜨리지 못한다. 탐욕에 무너지지 않은 마음이므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지도 않는다.[불확실]
‘‘Ṭhānaṃ kho panetaṃ, sunakkhatta,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massa –
“그런데 수낙캇따여, 이런 도리가 있다 — 여기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taṇhā kho sallaṃ samaṇena vuttaṃ, avijjāvisadoso chandarāgabyāpādena ruppati.
‘갈애를 사문은 화살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독기는 욕구와 탐냄과 악의로 덧난다.
Taṃ me taṇhāsallaṃ pahīnaṃ, apanīto avijjāvisadoso, sammā nibbānādhimuttohamasmī’ti.
그 갈애의 화살을 나는 버렸고, 무명의 독기도 제거되었으며, 나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mā nibbānādhimuttasseva sato so yāni sammā nibbānādhimuttassa asappāyāni tāni nānuyuñjeyy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nānuyuñjeyya.
참으로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해 있기에, 그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이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 그것들을 좇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지 않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지 않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지 않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지 않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지 않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nānuyuttassa rāgo cittaṃ nānuddhaṃseyya.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지 않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지 않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지 않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지 않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지 않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지 않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덮치지 않을 것이다.
So na rāgānuddhaṃsitena cittena nev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n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탐욕이 덮치지 않은 마음으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않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다.
수낙캇타여, 어떤 사람이 독이 짙게 발린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와 동료, 친지와 혈육이 화살 치료를 하는 외과의사를 불러온다. 의사는 칼로 상처 입구를 짼다. 그런 다음 탐침으로 화살을 찾는다. 화살을 찾으면 뽑아내고, 독을 찌꺼기 없이 제거한다. 찌꺼기가 남지 않았음을 알고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자네 화살은 뽑혔네. 독도 찌꺼기 없이 말끔히 제거되었네. 이제 자네에게 위험이 될 것도 없네. 이로운 음식만 먹게.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다가 상처가 곪아 터지는 일이 없도록 하게. 때때로 상처를 씻고, 때때로 입구에 약을 바르게. 때맞춰 씻지도 바르지도 않아 고름과 피가 입구를 덮는 일이 없도록 하게. 또 바람과 햇볕 속을 돌아다니지 말게. 그러다 먼지와 가시가 입구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게. 그리고 여보게,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상처를 지키며 지내게.’[불확실]
‘‘Seyyathāpi, sunakkhatta, puriso sallena viddho assa savisena gāḷhūpalepanena.
“수낙캇따여, 마치 어떤 사람이 독이 묻고 두텁게 발린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Tass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bhisakkaṃ sallakattaṃ upaṭṭhāpeyyuṃ.
그의 친구와 동료, 친척과 혈육이 화살을 뽑는 의사를 불러왔다고 하자.
Tassa so bhisakko sallakatto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eyya.
그의 그 화살을 뽑는 의사가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낼 것이다.
Satthena vaṇamukhaṃ parikantitvā esaniyā sallaṃ eseyya.
칼로 상처 입구를 도려내고서 탐침으로 화살을 찾을 것이다.
Esaniyā sallaṃ esitvā sallaṃ abbuheyya, apaneyya visadosaṃ anupādisesaṃ.
탐침으로 화살을 찾고서 화살을 뽑아내고, 독기를 남은 것 없이 제거할 것이다.
Anupādisesoti jānamāno so evaṃ vadeyya –
남은 것이 없음을 알면서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mbho purisa, ubbhataṃ kho te sallaṃ, apanīto visadoso anupādiseso.
‘여보게, 그대의 화살은 뽑혔고, 독기는 남은 것 없이 제거되었네.
Analañca te antarāyāya.
그리고 그것이 그대에게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네.
Sappāyāni ceva bhojanāni bhuñjeyyāsi, mā te asappāyāni bhojanāni bhuñjato vaṇo assāvī assa.
이로운 음식을 먹게.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어 그대의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는 일이 없도록 하게.
Kālena kālañca vaṇaṃ dhoveyyāsi,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eyyāsi.
그리고 때때로 상처를 씻게,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ā te na kālena kālaṃ vaṇaṃ dhovato na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ato pubbalohitaṃ vaṇamukhaṃ pariyonandhi.
때때로 상처를 씻지 않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지 않아 고름과 피가 그대의 상처 입구를 뒤덮는 일이 없도록 하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ā ca vātātape cārittaṃ anuyuñji, mā te vātātape cārittaṃ anuyuttassa rajosūkaṃ vaṇamukhaṃ anuddhaṃsesi.
그리고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니지 말게.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녀 먼지와 티끌이 그대의 상처 입구를 덮치는 일이 없도록 하게.
Vaṇānurakkhī ca, ambho purisa, vihareyyāsi vaṇasāropī’ti.
여보게, 상처를 지키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지내게.’
그런데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화살은 뽑혔다. 독도 찌꺼기 없이 말끔히 제거되었다. 이제 내게 위험이 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이로운 음식만 먹는다. 그러니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는다. 그는 때때로 상처를 씻고, 때때로 입구에 약을 바른다. 때맞춰 씻고 바르니 고름과 피가 입구를 덮지 않는다. 또 바람과 햇볕 속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먼지와 가시가 입구를 더럽히지 않는다. 그는 상처를 지키며, 아물 때까지 조심하며 지낸다. 이로운 이 행동에, 독을 찌꺼기 없이 제거한 일이 겹쳐 상처가 아문다. 상처가 아물고 살갗이 제대로 돌아오면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지도 않는다.[불확실]
Tassa evamassa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ubbhataṃ kho me sallaṃ, apanīto visadoso anupādiseso.
‘내 화살은 뽑혔고, 독기는 남은 것 없이 제거되었다.
Analañca me antarāyāyā’ti.
그리고 그것이 내게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다.’
So sappāyāni ceva bhojanāni bhuñjeyya.
그리하여 그는 이로운 음식을 먹을 것이다.
Tassa sappāyāni bhojanāni bhuñjato vaṇo na assāvī assa.
이로운 음식을 먹는 그의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지 않을 것이다.
Kālena kālañca vaṇaṃ dhoveyya,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eyya.
그리고 때때로 상처를 씻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를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kālena kālaṃ vaṇaṃ dhovato kālena kālaṃ vaṇamukhaṃ ālimpato na pubbalohitaṃ vaṇamukhaṃ pariyonandheyya.
때때로 상처를 씻고 때때로 상처 입구에 약을 바르는 그의 상처 입구를 고름과 피가 뒤덮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a ca vātātape cārittaṃ anuyuñjeyya.
그리고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Tassa vātātape cārittaṃ ananuyuttassa rajosūkaṃ vaṇamukhaṃ nānuddhaṃseyya.
바람과 볕 속을 돌아다니지 않는 그의 상처 입구를 먼지와 티끌이 덮치지 않을 것이다.
Vaṇānurakkhī ca vihareyya vaṇasāropī.
그리고 상처를 지키고 상처를 아물게 하며 지낼 것이다.
Tassa imissā ca sappāyakiriyāya asu ca visadoso apanīto anupādiseso tadubhayena vaṇo viruheyya.
그가 이렇게 이롭게 한 것과, 그 독기가 남은 것 없이 제거된 것 — 그 둘로 인해 상처가 아물 것이다.
So ruḷhena vaṇena sañchavinā nev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n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아물어 새살이 덮인 상처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않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다.
수낙캇타여, 그와 같이 이 가르침을 따르는 비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사문께서는 갈애가 화살이고 무명이 독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욕과 탐욕과 악의 때문에 그것이 아픔을 일으킨다고도 하셨다. 나는 갈애의 화살을 버렸고 무명의 독을 걷어냈다.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두고 있다.’ 그가 정말로 바르게 열반에 마음을 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상을 보거나,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듣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맡거나,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보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느끼거나,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대상을 헤아리는 일에도 몰두하지 않는다. 이렇게 몰두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탐욕은 무너뜨리지 못한다. 탐욕에 무너지지 않은 마음이므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지도 않는다.[불확실]
‘‘Evameva kho, sunakkhatt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massa –
“수낙캇따여, 꼭 이와 같이 이런 도리가 있다 — 여기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taṇhā kho sallaṃ samaṇena vuttaṃ, avijjāvisadoso chandarāgabyāpādena ruppati.
‘갈애를 사문은 화살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독기는 욕구와 탐냄과 악의로 덧난다.
Taṃ me taṇhāsallaṃ pahīnaṃ, apanīto avijjāvisadoso, sammā nibbānādhimuttohamasmī’ti.
그 갈애의 화살을 나는 버렸고, 무명의 독기도 제거되었으며, 나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자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mā nibbānādhimuttasseva sato so yāni sammā nibbānādhimuttassa asappāyāni tāni nānuyuñjeyy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nānuyuñjeyy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nānuyuñjeyya.
참으로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해 있기에, 그는 바르게 열반으로 마음이 향한 이에게 이롭지 않은 것들, 그것들을 좇지 않을 것이다.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지 않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지 않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지 않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지 않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지 않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지 않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ssa asappāyaṃ cakkhunā rūpadassan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sotena sadd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ghānena gandh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jivhāya ras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kāyena phoṭṭhabbaṃ nānuyuttassa, asappāyaṃ manasā dhammaṃ nānuyuttassa, rāgo cittaṃ nānuddhaṃseyya.
눈으로 이롭지 않은 형색 보기를 좇지 않고, 귀로 이롭지 않은 소리를 좇지 않고, 코로 이롭지 않은 냄새를 좇지 않고, 혀로 이롭지 않은 맛을 좇지 않고, 몸으로 이롭지 않은 감촉을 좇지 않고, 마음으로 이롭지 않은 법을 좇지 않는 그에게, 탐욕이 마음을 덮치지 않을 것이다.
So na rāgānuddhaṃsitena cittena neva maraṇaṃ vā nigaccheyya na maraṇamattaṃ vā dukkhaṃ.
탐욕이 덮치지 않은 마음으로 그는 죽음에 이르지도 않고 죽을 만큼의 괴로움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다.
65
수낙캇타여, 나는 뜻을 알려 주려고 이 비유를 들었다. 그 뜻은 이러하다. 상처란 안의 여섯 감각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은 무명을 가리키고, 화살은 갈애를 가리킨다. 탐침은 마음챙김을, 칼은 성스러운 통찰지를 가리킨다. 화살 치료를 하는 외과의사란 아라한이자 정등각자인 여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Upamā kho me ayaṃ, sunakkhatta, katā atthassa viññāpanāya.
“수낙캇따여, 내가 이 비유를 든 것은 뜻을 알리기 위해서다.
Ayaṃyevettha attho –
여기서 뜻은 바로 이것이다 —
vaṇoti kho, sunakkhatta, channet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adhivacanaṃ;
수낙캇따여, ‘상처’란 여섯 가지 안의 감각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visadosoti kho, sunakkhatta, avijjāyetaṃ adhivacanaṃ;
수낙캇따여, ‘독기’란 무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sallanti kho, sunakkhatta, taṇhāyetaṃ adhivacanaṃ;
수낙캇따여, ‘화살’이란 갈애를 가리키는 말이다.
esanīti kho, sunakkhatta, satiyāyetaṃ adhivacanaṃ;
수낙캇따여, ‘탐침’이란 마음챙김을 가리키는 말이다.
satthanti kho, sunakkhatta, ariyāyetaṃ paññāya adhivacanaṃ;
수낙캇따여, ‘칼’이란 성스러운 통찰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bhisakko sallakattoti kho, sunakkhatta, tathāgatassetaṃ adhivacanaṃ arahato sammāsambuddhassa.
수낙캇따여, ‘화살을 뽑는 의사’란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낙캇타여, 여섯 접촉의 영역을 잘 단속하는 비구가 있다고 하자. 그는 ‘집착의 바탕은 괴로움의 뿌리다’ 하고 알아, 집착 없이 집착의 바탕이 다한 데서 해탈한다. 그런 그가 그 바탕에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So vata, sunakkhatta, bhikkhu chasu phassāyatanesu saṃvutakārī ‘upadhi dukkhassa mūla’nti –
“수낙캇따여, 여섯 접촉의 장소에서 단속하며 지내는 그 비구가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다’라고 —
iti viditvā nirupadhi upadhisaṅkhaye vimutto upadhismiṃ vā kāyaṃ upasaṃharissati cittaṃ vā uppādessatīti –
이렇게 알고서 집착이 없고 집착의 소멸로 해탈한 그가, 집착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키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없다.
수낙캇타여, 빛깔도 좋고 향기도 좋고 맛도 좋은 음료 잔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음료에는 독이 섞여 있다. 그때 살고 싶어 하고 죽기 싫어하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 수낙캇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것을 마시면 나는 죽거나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는다’고 알면서도 그 음료 잔을 마시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sunakkhatta, āpānīyakaṃso vaṇṇasampanno gandhasampanno rasasampanno;
수낙캇따여, 마치 빛깔을 갖추고 향을 갖추고 맛을 갖춘 음료 잔이 있는데,
so ca kho visena saṃsaṭṭho.
그것에 독이 섞여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aṭikūlo.
그때 살고자 하고 죽지 않으려 하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sunakkhatta, api nu so puriso amuṃ āpānīyakaṃsaṃ piveyya yaṃ jaññā –
수낙캇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저 음료 잔을 마시겠는가 —
‘imāhaṃ pivitvā maraṇaṃ vā nigacchām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이것을 마시고 나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는다’고?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낙캇타여, 그와 같이 여섯 접촉의 영역을 잘 단속하는 비구가 있다. 그는 ‘집착의 바탕은 괴로움의 뿌리다’ 하고 알아, 집착 없이 집착의 바탕이 다한 데서 해탈한다. 그런 그가 그 바탕에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Evameva kho, sunakkhatta, so vata bhikkhu chasu phassāyatanesu saṃvutakārī ‘upadhi dukkhassa mūla’nti –
“수낙캇따여, 꼭 이와 같이, 여섯 접촉의 장소에서 단속하며 지내는 그 비구가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다’라고 —
iti viditvā nirupadhi upadhisaṅkhaye vimutto upadhismiṃ vā kāyaṃ upasaṃharissati cittaṃ vā uppādessatīti –
이렇게 알고서 집착이 없고 집착의 소멸로 해탈한 그가, 집착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키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런 도리는 없다.
수낙캇타여, 또 맹독을 지닌 독사가 있다고 하자. 그때 살고 싶어 하고 죽기 싫어하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 수낙캇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 뱀에게 물리면 나는 죽거나 죽음에 맞먹는 괴로움을 겪는다’고 알면서도 그 맹독 독사에게 손이나 손가락을 내밀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sunakkhatta, āsīviso ghoraviso.
수낙캇따여, 마치 무서운 독을 지닌 독사가 있다고 하자.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aṭikūlo.
그때 살고자 하고 죽지 않으려 하며 즐거움을 바라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Taṃ kiṃ maññasi, sunakkhatta, api nu so puriso amussa āsīvisassa ghoravisassa hatthaṃ vā aṅguṭṭhaṃ vā dajjā yaṃ jaññā –
수낙캇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저 무서운 독을 지닌 독사에게 손이나 엄지를 내밀겠는가 —
‘imināhaṃ daṭṭho maraṇaṃ vā nigacchām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이것에게 물려 나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겪는다’고?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낙캇타여, 그와 같이 여섯 접촉의 영역을 잘 단속하는 비구가 있다. 그는 ‘집착의 바탕은 괴로움의 뿌리다’ 하고 알아, 집착 없이 집착의 바탕이 다한 데서 해탈한다. 그런 그가 그 바탕에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Evameva kho, sunakkhatta, so vata bhikkhu chasu phassāyatanesu saṃvutakārī ‘upadhi dukkhassa mūla’nti –
“수낙캇따여, 꼭 이와 같이, 여섯 접촉의 장소에서 단속하며 지내는 그 비구가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다’라고 —
iti viditvā nirupadhi upadhisaṅkhaye vimutto upadhismiṃ vā kāyaṃ upasaṃharissati cittaṃ vā uppādessatīti –
이렇게 알고서 집착이 없고 집착의 소멸로 해탈한 그가, 집착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키리라는 것 —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이런 도리는 없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릿차비족의 아들 수낙캇타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수낙캇타의 경이 끝났다. 다섯 번째 경이다.[불확실]
Idamavoca bhagavā.
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Attamano sunakkhatto licchavipu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릿차위의 아들 수낙캇따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Sunakkhattasuttaṃ niṭṭhitaṃ pañcamaṃ.
수낙캇따 경이 끝났다. 다섯 번째.[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