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4.171
의도 경
Cetanāsuttaṃ
교차 검사
넷의 모음Catukkanipātapāḷi
(18) 3. Sañcetaniyavaggo
(18) 3. 의도 품
1. Cetanāsuttaṃ
1. 의도 경
171
비구들이여, 몸이 있으면 몸으로 하는 의도가 원인이 되어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말이 있으면 말로 하는 의도가 원인이 되어 그렇게 된다. 마음이 있으면 마음으로 하는 의도가 원인이 되어 그렇게 된다. 그 바탕에는 무명이 있다.[불확실]
‘‘Kāye vā, bhikkhave, sati kāyasañcetanāhetu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몸이 있을 때, 몸의 의도를 원인으로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Vācāya vā, bhikkhave, sati vacīsañcetanāhetu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말이 있을 때, 말의 의도를 원인으로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Mane vā, bhikkhave, sati manosañcetanāhetu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avijjāpaccayāva.
비구들이여, 마음이 있을 때, 마음의 의도를 원인으로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 오직 무명을 조건으로 하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는 스스로 그 몸의 지음을 짓는다.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남들이 그를 두고 그 몸의 지음을 짓기도 한다. 그때도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는 분명히 알면서 짓기도 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짓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āmaṃ vā taṃ, bhikkhave, kāya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스스로 그 몸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Pare vāssa taṃ, bhikkhave, kāyasaṅkhāraṃ abhisaṅkharon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다른 이들이 그에게 그 몸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kāya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또렷이 알아차리면서 그 몸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A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kāya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그 몸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그는 스스로 그 말의 지음을 짓는다.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남들이 그를 두고 그 말의 지음을 짓기도 한다. 그때도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는 분명히 알면서 짓기도 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짓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āmaṃ vā taṃ, bhikkhave, vacī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스스로 그 말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pare vāssa taṃ, bhikkhave, vacīsaṅkhāraṃ abhisaṅkharonti;
비구들이여, 다른 이들이 그에게 그 말의 작용을 짓는다;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vacī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또렷이 알아차리면서 그 말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a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vacī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그 말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그는 스스로 그 마음의 지음을 짓는다.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남들이 그를 두고 그 마음의 지음을 짓기도 한다. 그때도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는 분명히 알면서 짓기도 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짓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조건으로 그의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āmaṃ vā taṃ, bhikkhave, mano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스스로 그 마음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pare vāssa taṃ, bhikkhave, manosaṅkhāraṃ abhisaṅkharon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비구들이여, 다른 이들이 그에게 그 마음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mano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또렷이 알아차리면서 그 마음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asampajāno vā taṃ, bhikkhave, mano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또렷이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그 마음의 작용을 짓나니,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모든 일에는 무명이 따라붙어 있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꺼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으키던 그 몸이 없다. 그런 말도 없고 그런 마음도 없다. 그런 밭도 없고 그런 터도 없다. 그런 자리도 없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으킬 그런 빌미도 없다.
‘‘Imesu, bhikkhave, dhammesu avijjā anupatitā, avijjāyatveva asesavirāganirodhā so kāyo na h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sā vācā na h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so mano na h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ṃ, khettaṃ taṃ na hoti…pe… vatthuṃ taṃ na hoti…pe… āyatanaṃ taṃ na hoti…pe… adhikaraṇaṃ taṃ na hoti yaṃpaccayāssa taṃ uppajjati ajjhattaṃ sukhadukkha’’nti.
“비구들이여, 이 법들에는 무명이 따라붙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몸이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말이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마음이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밭이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터가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영역이 없고, 그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안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 그 근거가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AN 4.171:171.4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자기라는 존재를 얻는 데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 넷은 무엇인가?
‘‘Cattārome, bhikkhave, attabhāvapaṭilābhā.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자기 존재의 획득이 있다.
Katame cattāro?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자기라는 존재를 얻되 그 얻음에 자기의 의도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의도만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의 의도와 남의 의도가 함께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쪽 의도도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구들이여, 자기라는 존재를 얻는 데에는 이 네 가지가 있다.
Atthi, bhikkhave,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비구들이여, 자기 존재의 획득이 있으니,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는 자기의 의도가 작용하고 남의 의도는 작용하지 않는다.
Atthi, bhikkhave,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parasañcetanā kamati, no attasañcetanā.
비구들이여, 자기 존재의 획득이 있으니,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는 남의 의도가 작용하고 자기의 의도는 작용하지 않는다.
Atthi, bhikkhave,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ca kamati parasañcetanā ca.
비구들이여, 자기 존재의 획득이 있으니,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는 자기의 의도도 작용하고 남의 의도도 작용한다.
Atthi, bhikkhave,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nev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비구들이여, 자기 존재의 획득이 있으니,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는 자기의 의도도 작용하지 않고 남의 의도도 작용하지 않는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attabhāvapaṭilābhā’’ti.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자기 존재의 획득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간추려 말씀하신 이 뜻을 저는 이렇게 자세히 알아듣습니다.
Evaṃ vutte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imassa kho ahaṃ, bhante, bhagavatā saṃkhittena bhāsitassa evaṃ vitthārena atthaṃ ājānāmi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이 뜻을 저는 이렇게 자세히 이해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가운데 자기의 의도만 작용하여 자기라는 존재를 얻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생들은 자기의 의도를 원인으로 그 몸에서 목숨을 놓습니다. 남의 의도만 작용한 경우라면, 그 중생들은 남의 의도를 원인으로 목숨을 놓습니다. 두 의도가 함께 작용한 경우라면, 그 둘을 원인으로 목숨을 놓습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attasañcetanā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거기서 자기 존재의 획득으로서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 자기의 의도가 작용하고 남의 의도는 작용하지 않는 것, 그 경우에는 자기의 의도를 원인으로 그 중생들이 그 몸에서 죽어 떠납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parasañcetanā kamati no attasañcetanā, parasañcetanā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거기서 자기 존재의 획득으로서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 남의 의도가 작용하고 자기의 의도는 작용하지 않는 것, 그 경우에는 남의 의도를 원인으로 그 중생들이 그 몸에서 죽어 떠납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ca kamati parasañcetanā ca, attasañcetanā ca parasañcetanā ca 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거기서 자기 존재의 획득으로서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 자기의 의도도 작용하고 남의 의도도 작용하는 것, 그 경우에는 자기의 의도와 남의 의도를 원인으로 그 중생들이 그 몸에서 죽어 떠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쪽 의도도 작용하지 않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떤 신들을 두고 그렇게 보아야 합니까? 사리뿟따여,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경지에 이른 신들을 두고 그렇게 보아야 한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neva 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katame tena devā daṭṭhabbā’’’ti?
세존이시여, 거기서 자기 존재의 획득으로서 그 자기 존재의 획득에서 자기의 의도도 작용하지 않고 남의 의도도 작용하지 않는 것, 그 경우에는 어떤 신들을 보아야 합니까?’”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 sāriputta, devā tena daṭṭhabbā’’ti.
“사리뿟따여, 그 경우에는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이른 신들을 보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중생들은 그 몸에서 목숨을 놓은 뒤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옵니다.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입니까? 또 어떤 중생들은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입니까?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āgāmino honti āgantāro itthattaṃ?
“세존이시여,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그 몸에서 죽어 떠나 돌아오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는 자가 됩니까?
Ko pana,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anāgāmino honti anāgantāro itthatta’’nti?
그러면 세존이시여,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그 몸에서 죽어 떠나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지 않는 자가 됩니까?”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아래로 묶는 결박들을 아직 끊지 못했다. 그가 바로 이 삶에서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경지에 들어가 머문다. 그는 그것을 맛들이고 바라며 그것으로 흡족해한다. 거기에 머물러 거기에 마음을 두고 자주 지내며, 물러남 없이 목숨을 마친다. 그러면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경지에 이른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목숨을 놓은 뒤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온다.[불확실]
‘‘Idha, sāriputta,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so diṭṭheva dhamm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버려지지 않았는데, 그는 지금여기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tadassādeti, taṃ nikāme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그는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바라며, 그것으로 만족을 얻는다;
tattha ṭhito tadadhimutto tabbahulavihārī aparihīno kālaṃ kurumān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upapajjati.
거기에 머물고, 그것에 몰입하고, 그것에 자주 머물러 물러서지 않은 채 목숨을 마치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이른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So tato cut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그는 거기서 죽어 떠나 돌아오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는 자가 된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여기 어떤 사람은 아래로 묶는 결박들을 이미 끊었다. 그도 바로 이 삶에서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경지에 들어가 머문다. 그는 그것을 맛들이고 바라며 그것으로 흡족해한다. 거기에 머물러 거기에 마음을 두고 자주 지내며, 물러남 없이 목숨을 마친다. 그러면 지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경지에 이른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목숨을 놓은 뒤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오지 않는다.[불확실]
‘‘Idha pana, sāriputta,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so diṭṭheva dhamm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그러나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버려졌는데, 그는 지금여기서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들어 머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o tadassādeti, taṃ nikāme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그는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바라며, 그것으로 만족을 얻는다;
tattha ṭhito tadadhimutto tabbahulavihārī aparihīno kālaṃ kurumān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upapajjati.
거기에 머물고, 그것에 몰입하고, 그것에 자주 머물러 물러서지 않은 채 목숨을 마치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이른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그는 거기서 죽어 떠나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지 않는 자가 된다.
사리뿟따여, 이것이 어떤 중생들이 그 몸에서 목숨을 놓은 뒤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곳으로 다시 오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중생들이 목숨을 놓은 뒤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어 다시 오지 않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Ayaṃ kho, sāriputta,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āgāmino honti āgantāro itthattaṃ.
“사리뿟따여,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니, 이로써 여기 어떤 중생들은 그 몸에서 죽어 떠나 돌아오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는 자가 된다.
Ayaṃ pana, sāriputta,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anāgāmino honti anāgantāro itthatta’’nti.
그리고 사리뿟따여,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니, 이로써 여기 어떤 중생들은 그 몸에서 죽어 떠나 돌아오지 않는 자가 되고, 이 상태로 오지 않는 자가 된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