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4.191
귀로 따라 들음 경
Sotānugatasuttaṃ
교차 검사
넷의 모음 빠알리Catukkanipātapāḷi
(20) 5. Mahāvaggo
(20) 5. 큰 품
1. Sotānugatasuttaṃ
1. 귀로 따라 들음 경
191
비구들이여, 귀로 들어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숙해진 가르침이 있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은 가르침이 있다. 그런 가르침에는 네 가지 이로움이 따라온다. 그 넷은 무엇인가?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cattāro ānisaṃsā pāṭikaṅkhā.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Katame cattāro?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Idha,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 가르침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귀로 들어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숙해진 가르침이 있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은 가르침이 있다. 거기에 따라오는 첫 번째 이로움이 이것이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ayaṃ paṭhamo ānisaṃso pāṭikaṅkho.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이것이 첫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또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있다. 그 비구가 신들의 모임에서 가르침을 설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그 가르침과 계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 자리로구나.'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api ca kho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러나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한다.
Tassa evaṃ hoti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yaṃ vā so dhammavinayo, yatthāh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nti.
‘이것이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그 안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m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북소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먼 길을 가다가 북소리를 듣는다. 그에게는 아무 의심도 망설임도 없다. '북소리인가, 북소리가 아닌가?' 하고 헤매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북소리라고 결론을 내린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kusalo bherisaddassa.
비구들이여, 마치 북소리에 능숙한 사람과 같다.
So addhānamaggappaṭipanno bherisaddaṃ suṇeyya.
그가 먼 길을 가다가 북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Tassa na heva kho assa kaṅkhā vā vimati vā –
그에게는 의혹도 의심도 없을 것이다 —
‘bherisaddo nu kho, na nu kho bherisaddo’ti!
‘북소리인가, 북소리가 아닌가?’ 하는!
Atha kho bherisaddotveva niṭṭhaṃ gaccheyya.
그러고는 ‘북소리다’라고 바로 결론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와 같이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있다. 그 비구가 신들의 모임에서 가르침을 설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그 가르침과 계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 자리로구나.'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귀로 들어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숙해진 가르침이 있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은 가르침이 있다. 거기에 따라오는 두 번째 이로움이 이것이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api ca kho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러나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한다.
Tassa evaṃ hoti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yaṃ vā so dhammavinayo, yatthāh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nti.
‘이것이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그 안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ayaṃ dutiyo ānisaṃso pāṭikaṅkho.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이것이 두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또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설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떤 천신의 아들이 신들의 모임에서 가르침을 설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그 가르침과 계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 자리로구나.'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napi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도 않고,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api ca kho devapu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러나 천자(天子)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한다.
Tassa evaṃ hoti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yaṃ vā so dhammavinayo, yatthāh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nti.
‘이것이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그 안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소라 나팔 소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먼 길을 가다가 소라 나팔 소리를 듣는다. 그에게는 아무 의심도 망설임도 없다. 소라 나팔 소리인지 아닌지를 두고 헤매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소라 나팔 소리라고 결론을 내린다.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kusalo saṅkhasaddassa.
비구들이여, 마치 소라고둥 소리에 능숙한 사람과 같다.
So addhānamaggappaṭipanno saṅkhasaddaṃ suṇeyya.
그가 먼 길을 가다가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Tassa na heva kho assa kaṅkhā vā vimati vā –
그에게는 의혹도 의심도 없을 것이다 —
‘saṅkhasaddo nu kho, na nu kho saṅkhasaddo’ti!
‘소라고둥 소리인가, 소라고둥 소리가 아닌가?’ 하는!
Atha kho saṅkhasaddotveva niṭṭhaṃ gaccheyya.
그러고는 ‘소라고둥 소리다’라고 바로 결론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와 같이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설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떤 천신의 아들이 신들의 모임에서 가르침을 설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그 가르침과 계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 자리로구나.'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귀로 들어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숙해진 가르침이 있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은 가르침이 있다. 거기에 따라오는 세 번째 이로움이 이것이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napi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도 않고,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api ca kho devapu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러나 천자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한다.
Tassa evaṃ hoti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ayaṃ vā so dhammavinayo, yatthāh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nti.
‘이것이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 내가 예전에 그 안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ayaṃ tatiyo ānisaṃso pāṭikaṅkho.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이것이 세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또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설해 주지도 않는다. 천신의 아들이 신들의 모임에서 설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저절로 태어난 이가 저절로 태어난 다른 이를 일깨워 준다. '벗이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곳 말일세.' 그가 이렇게 답한다. '기억하네, 벗이여. 기억하고말고.'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napi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napi devapu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도 않고,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고, 천자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api ca kho opapātiko opapātikaṃ sāreti –
그러나 화생한 이가 화생한 이를 일깨운다 —
‘sarasi tvaṃ, mārisa, sarasi tvaṃ, mārisa, yattha may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mhā’ti.
‘어르신이시여, 그대는 기억하십니까? 어르신이시여, 그대는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살았던 곳을.’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sarāmi, mārisa, sarāmi, mārisā’ti.
‘기억합니다, 어르신이시여. 기억합니다, 어르신이시여.’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나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어릴 적 흙장난을 함께 하며 자란 두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들이 어느 날 어쩌다 서로 마주친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이것도 기억하는가? 저것도 기억하는가?' 그가 이렇게 답한다. '기억하네, 여보게. 기억하고말고.'
Seyyathāpi, bhikkhave, dve sahāyakā sahapaṃsukīḷikā.
비구들이여, 마치 함께 흙장난하며 놀던 두 친구와 같다.
Te kadāci karahaci aññamaññaṃ samāgaccheyyuṃ.
그들이 어느 때 어느 날 서로 만난다고 하자.
Añño pana sahāyako sahāyakaṃ evaṃ vadeyya –
그러면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idampi, samma, sarasi, idampi, samma, sarasī’ti.
‘벗이여, 이것도 기억하는가? 벗이여, 이것도 기억하는가?’
So evaṃ vadeyya –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sarāmi, samma, sarāmi, sammā’ti.
‘기억하네, 벗이여. 기억하네, 벗이여.’
비구들이여, 바로 그와 같이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두루 배운다. 산문으로 된 경, 산문과 시가 섞인 것, 문답으로 풀어 놓은 것을 배운다. 시로 읊은 것과 벅찬 마음이 절로 터져 나온 것도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전해지는 것, 지난 생의 이야기, 놀랍고 신기한 일을 전한 것도 있다. 묻고 답하며 풀어 가는 것 또한 그가 배우는 가르침이다. 그는 그 가르침을 귀로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힌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는다. 그러다 그가 알아차림을 잃은 채 목숨을 마친다. 그러고는 어떤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그에게는 가르침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을 갖추고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는 비구가 설해 주지도 않는다. 천신의 아들이 신들의 모임에서 설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저절로 태어난 이가 저절로 태어난 다른 이를 일깨워 준다. '벗이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닦던 그곳 말일세.' 그가 이렇게 답한다. '기억하네, 벗이여. 기억하고말고.' 비구들이여, 알아차림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더디다. 그러나 그 중생은 이내 뛰어난 곳으로 나아간다. 귀로 들어 익히고 입으로 되뇌어 익숙해진 가르침이 있다. 마음으로 곱씹고 견해로 훤히 꿰뚫은 가르침이 있다. 거기에 따라오는 네 번째 이로움이 이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가르침에는 이 네 가지 이로움이 따라온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비구들이여, 꼭 그와 같이 비구는 법을 익힌다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경(설법),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 미증유법, 문답.
Tassa te dhammā sotānugatā honti,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에게 그 법들은 귀로 따라 들은 것이 되고, 말로 익힌 것이 되고, 마음으로 거듭 살핀 것이 되고, 견해로 잘 꿰뚫은 것이 된다.
So muṭṭhassati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그는 마음챙김을 잊은 채 죽음을 맞이하여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Tassa tattha na heva kho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napi bhikkhu iddhimā cetovasippa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napi devaputto devaparisāyaṃ dhammaṃ deseti;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도 않고, 신통을 갖추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고, 천자가 신들의 회중에서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api ca kho opapātiko opapātikaṃ sāreti –
그러나 화생한 이가 화생한 이를 일깨운다 —
‘sarasi tvaṃ, mārisa, sarasi tvaṃ, mārisa, yattha may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mhā’ti.
‘어르신이시여, 그대는 기억하십니까? 어르신이시여, 그대는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예전에 청정한 삶을 살았던 곳을.’
So evamāha –
그는 이렇게 말한다 —
‘sarāmi, mārisa, sarāmi, mārisā’ti.
‘기억합니다, 어르신이시여. 기억합니다, 어르신이시여.’
Dandho, bhikkhave, satuppādo;
비구들이여,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더디다;
atha kho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그러고는 그 중생은 아주 빠르게 특별한 경지로 나아간다.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ayaṃ catuttho ānisaṃso pāṭikaṅkho.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이것이 네 번째로 기대되는 이익이다.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ime cattāro ānisaṃsā pāṭikaṅkhā’’ti.
비구들이여, 귀로 따라 들은 법들, 말로 익힌 법들, 마음으로 거듭 살핀 법들, 견해로 잘 꿰뚫은 법들에는 이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