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ettagūmāṇavapucchā
4. 멧따구 학인의 질문
1055
“세존이시여, 여쭙습니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 (멧따구 존자가 말했다)
‘‘Pucchāmi taṃ bhagavā brūhi me taṃ, (iccāyasmā mettagū)
“세존이시여, 저는 당신께 여쭙니다.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소서.” (이렇게 멧따구 존자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베다에 이른, 닦은 분이라 여깁니다.
Maññāmi taṃ vedaguṃ bhāvitattaṃ;
저는 당신을 앎에 이르신 분, 자신을 닦으신 분이라 여깁니다.
이 세상의 갖가지 모습의 괴로움들은 /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Kuto nu dukkhā samudāgatā ime, ye keci lokasmimanekarūpā’’.
이 괴로움들은 대체 어디에서 함께 생겨났습니까 — 세상에 여러 모습으로 있는 그 어떤 것이든?
1056
“그대는 참으로 괴로움의 근원을 내게 물었다. /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Dukkhassa ve maṃ pabhavaṃ apucchasi, (mettagūti bhagavā)
“그대는 참으로 내게 괴로움의 근원을 물었다.”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아는 대로 그대에게 말하리라.
Taṃ te pavakkhāmi yathā pajānaṃ;
그것을 나는 그대에게 말하리라, 아는 자로서 아는 그대로.
집착의 바탕에서 괴로움이 생겨난다, / 이 세상의 갖가지 모습의 괴로움이.
Upadhinidānā pabhavanti dukkhā, ye keci lokasmimanekarūpā.
괴로움들은 집착의 바탕을 근원으로 하여 생겨난다 — 세상에 여러 모습으로 있는 그 어떤 것이든.
1057
알지 못하면서 집착의 바탕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 거듭거듭 괴로움에 이른다.
‘‘Yo ve avidvā upadhiṃ karoti, punappunaṃ dukkhamupeti mando;
“참으로 알지 못하는 자는 집착의 바탕을 짓나니, 그 무딘 자는 거듭거듭 괴로움에 다가간다.
그러니 아는 이는 집착의 바탕을 짓지 말라, / 괴로움이 태어남에서 생김을 보면서.”
Tasmā pajānaṃ upadhiṃ na kayirā, dukkhassa jātippabhavānupassī’’.
그러므로 아는 자는 집착의 바탕을 짓지 말아야 한다, 괴로움이 태어나는 근원을 거듭 살피면서.”
1058
“우리가 물은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 다른 것을 여쭙니다. 자, 말씀해 주십시오.
‘‘Yaṃ taṃ apucchimha akittayī no, aññaṃ taṃ pucchāma tadiṅgha brūhi;
“저희가 여쭌 그것을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여쭙겠으니, 자 그것을 말씀해 주소서.
지혜로운 이들은 어떻게 홍수를 건넙니까, / 태어남과 늙음, 근심과 한탄을.
Kathaṃ nu dhīrā vitaranti oghaṃ, jātiṃ jaraṃ sokapariddavañca;
굳건한 이들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넙니까 — 태어남과 늙음과 슬픔과 비탄을?
성자시여, 그것을 제게 잘 설명해 주십시오. / 이 법을 당신께서는 아시니까요.”[불확실]
Taṃ me muni sādhu viyākarohi, tathā hi te vidito esa dhammo’’.
성자시여, 그것을 제게 잘 대답해 주소서. 참으로 이 법은 당신께 알려져 있으니.”[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059
“그대에게 법을 설명하리라. /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Kittayissāmi te dhammaṃ, (mettagūti bhagavā)
“나는 그대에게 법을 밝히리라.”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지금 여기서 보는, 전해 들음에 기대지 않는 법을.
Diṭṭhe dhamme anītihaṃ;
보이는 법에서, 전해 들은 말이 아닌 것을.
이를 알고 마음챙겨 걸으면 / 세상의 얽어맴을 건널 것이다.”
Yaṃ viditvā sato caraṃ, tare loke visattikaṃ’’.
그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며 다니는 이는, 세상의 얽어맴을 건널 것이다.”
1060
“대선인이시여, 저는 그 으뜸가는 법을 / 기뻐합니다.
‘‘Tañcāhaṃ abhinandāmi, mahesi dhammamuttamaṃ;
“위대한 선인이시여, 저는 그 더없는 법을 기뻐합니다.
이를 알고 마음챙겨 걸으면 / 세상의 얽어맴을 건널 것입니다.”
Yaṃ viditvā sato caraṃ, tare loke visattikaṃ’’.
그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며 다니는 이는, 세상의 얽어맴을 건널 것입니다.”
1061
“무엇이든 그대가 분명히 안다면 /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Yaṃ kiñci sampajānāsi, (mettagūti bhagavā)
“그대가 무엇이든 또렷이 아는 것은,” (“멧따구여” 하고 세존께서)
위로나 아래로나 옆으로나 가운데로나,
Uddhaṃ adho tiriyañcāpi majjhe;
위로, 아래로, 또한 가로로, 그리고 가운데로.
이것들에 대한 즐김과 머묾을 몰아내어 / 의식이 존재에 서지 않게 하라.[불확실]
Etesu nandiñca nivesanañca, panujja viññāṇaṃ bhave na tiṭṭhe.
이것들에 대한 즐김과 자리 잡음을 밀어내어, 의식이 존재 안에 머물지 않게 하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062
이렇게 지내며 마음챙기고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 내 것이라는 것들을 버리고 걸어
‘‘Evaṃvihārī sato appamatto, bhikkhu caraṃ hitvā mamāyitāni;
“이렇게 머무는 자로서 마음챙기고 게으르지 않은 비구는, 내 것으로 여긴 것들을 버리고 다니면서,
태어남과 늙음, 근심과 한탄을 / 바로 여기서 알아 괴로움을 버릴 것이다.”
Jātiṃ jaraṃ sokapariddavañca, idheva vidvā pajaheyya dukkhaṃ’’.
태어남과 늙음과 슬픔과 비탄을, 바로 여기서 아는 자로서 괴로움을 버려야 한다.”
1063
“대선인의 이 말씀을 기뻐합니다. / 고따마시여, 집착의 바탕 없음을 잘 설하셨습니다.[불확실]
‘‘Etābhinandāmi vaco mahesino, sukittitaṃ gotamanūpadhīkaṃ;
“저는 위대한 선인의 이 말씀을 기뻐합니다. 고따마시여, 집착의 바탕 없음이 잘 밝혀졌습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참으로 세존께서는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 이 법을 당신께서는 아시니까요.
Addhā hi bhagavā pahāsi dukkhaṃ, tathā hi te vidito esa dhammo.
참으로 세존께서는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참으로 이 법은 당신께 알려져 있으니.
1064
성자시여, 당신께서 쉼 없이 가르치신다면 / 그들 또한 반드시 괴로움을 버릴 것입니다.[불확실]
‘‘Te cāpi nūnappajaheyyu dukkhaṃ, ye tvaṃ muni aṭṭhitaṃ ovadeyya;
성자시여, 당신께서 끊임없이 가르치시는 그들 또한 반드시 괴로움을 버릴 것입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용상이시여, 당신을 만나 절합니다. / 세존께서 저도 쉼 없이 가르쳐 주시기를.”
Taṃ taṃ namassāmi samecca nāga, appeva maṃ bhagavā aṭṭhitaṃ ovadeyya’’.
훌륭한 분이시여, 저는 다가와 그런 당신께 예를 올립니다. 부디 세존께서 저를 끊임없이 가르쳐 주시기를.”
1065
“베다에 이른 바라문을 알아볼 수 있다면, / 가진 것 없고 욕계의 존재에 매이지 않는 이를.
‘‘Yaṃ brāhmaṇaṃ vedagumābhijaññā, akiñcanaṃ kāmabhave asattaṃ;
“앎에 이른 바라문이라고 알아볼 만한 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감각적 욕망의 존재에 붙들리지 않은 이,
그는 분명 이 홍수를 건넜고, / 저편에 이르렀으며, 거침도 의혹도 없다.
Addhā hi so oghamimaṃ atāri, tiṇṇo ca pāraṃ akhilo akaṅkho.
참으로 그는 이 거센 물결을 건넜다. 저편으로 건너간 이, 메마르지 않고 의심 없는 이다.
1066
이 세상에서 아는 이, 베다에 이른 사람이 / 이런저런 존재에 대한 얽매임을 버렸다면,[불확실]
‘‘Vidvā ca yo vedagū naro idha, bhavābhave saṅgamimaṃ visajja;
그리고 여기서 아는 자이며 앎에 이른 사람은, 이런저런 존재에 대한 이 얽매임을 놓아 버리고,[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그는 갈애를 떠나고 고뇌가 없고 바람이 없어 /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한다.”
So vītataṇho anīgho nirāso, atāri so jātijaranti brūmī’’ti.
그는 갈애를 떠났고 괴로움 없고 바라는 것 없으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한다.”
멧따구 청년의 질문, 네 번째가 끝났다.[불확실]
Mettagūmāṇavapucchā catutthī niṭṭhitā.
멧따구 학인의 질문, 네 번째가 끝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