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Paṭisambhidāvāro
8. 구분하는 통찰지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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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을, 사람은 지혜로 안다. 보고 이해하고 몸소 확인하고 닿은 만큼 안다. 지혜가 닿지 못한 그 뜻은 없다. 이렇게 하여 눈이 생기고 앎이 생겼다. 통찰이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뜻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에는 스물다섯 가지 법이 있다. 스물다섯 가지 뜻과 쉰 가지 언어 표현도 있다. 거기에 백 가지 앎이 더해진다.[불확실]
‘‘‘Yāvatā atthapaṭisambhidāya atthapaṭisambhidaṭṭho, ñāto diṭṭho vidito sacchikato phassito paññāya.
“‘뜻을 구분하는 통찰지에 뜻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이 있는 만큼, 그것은 통찰지로 알려지고, 보이고, 이해되고, 실현되고, 닿았다.
Aphassito paññāya atthapaṭisambhidaṭṭho natthī’ti –
통찰지로 닿지 않은, 뜻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은 없다’라고 —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눈이 일어났고, 앎이 일어났고, 통찰지가 일어났고, 명지가 일어났고, 빛이 일어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1:36.3에서 되살렸습니다.
Atthapaṭisambhidāya atthapaṭisambhidaṭṭhe pañcavīsati dhammā, pañcavīsati atthā, paññāsa niruttiyo, sataṃ ñāṇāni.
뜻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에 스물다섯 가지 법, 스물다섯 가지 뜻, 쉰 가지 언어, 백 가지 앎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법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도, 재치 있는 말솜씨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도 같다. 모두 지혜로 알고 보고 이해하고 몸소 확인하고 닿은 만큼이다. 지혜가 닿지 못한 재치 있는 말솜씨에 대한 분석적 앎의 뜻은 없다. 이렇게 하여 눈이 생기고 앎이 생겼다. 통찰이 생기고 밝음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재치 있는 말솜씨에 대한 분석적 앎이 지닌 뜻에는 스물다섯 가지 법과 스물다섯 가지 뜻이 있다. 쉰 가지 언어 표현과 백 가지 앎도 있다. 네 가지 분석적 앎을 합치면 법이 백 가지, 뜻이 백 가지다. 언어 표현은 이백 가지, 앎은 사백 가지에 이른다.[불확실]
‘‘‘Yāvatā dhammapaṭisambhidāya dhammapaṭisambhidaṭṭho…pe… yāvatā niruttipaṭisambhidāya niruttipaṭisambhidaṭṭho…pe… yāvatā paṭibhānapaṭisambhidāya paṭibhānapaṭisambhidaṭṭho, ñāto diṭṭho vidito sacchikato phassito paññāya.
“‘법을 구분하는 통찰지에 법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이 있는 만큼, 그것은 통찰지로 알려지고, 보이고, 이해되고, 실현되고, 닿았다. 통찰지로 닿지 않은, 법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은 없다’라고 — 눈이 일어났고, 앎이 일어났고, 통찰지가 일어났고, 명지가 일어났고, 빛이 일어났다. 법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법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에 스물다섯 가지 법, 스물다섯 가지 뜻, 쉰 가지 언어, 백 가지 앎이 있다. ‘언어를 구분하는 통찰지에 언어를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이 있는 만큼, 그것은 통찰지로 알려지고, 보이고, 이해되고, 실현되고, 닿았다. 통찰지로 닿지 않은, 언어를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은 없다’라고 — 눈이 일어났고, 앎이 일어났고, 통찰지가 일어났고, 명지가 일어났고, 빛이 일어났다. 언어를 구분하는 통찰지의, 언어를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에 스물다섯 가지 법, 스물다섯 가지 뜻, 쉰 가지 언어, 백 가지 앎이 있다. ‘영감을 구분하는 통찰지에 영감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이 있는 만큼, 그것은 통찰지로 알려지고, 보이고, 이해되고, 실현되고, 닿았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2:37.1 ~ PN:ps92/37.4에서 되살렸습니다.
Aphassito paññāya paṭibhānapaṭisambhidaṭṭho natthī’ti –
통찰지로 닿지 않은, 영감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은 없다’라고 —
cakkhuṃ udapādi …pe… āloko udapādi’’.
눈이 일어났고, 앎이 일어났고, 통찰지가 일어났고, 명지가 일어났고, 빛이 일어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1:36.3에서 되살렸습니다.
Paṭibhānapaṭisambhidaṭṭhe pañcavīsati dhammā, pañcavīsati atthā, paññāsa niruttiyo, sataṃ ñāṇāni.
영감을 구분하는 통찰지의 뜻에 스물다섯 가지 법, 스물다섯 가지 뜻, 쉰 가지 언어, 백 가지 앎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Catūsu paṭisambhidāsu sataṃ dhammā, sataṃ atthā, dve niruttisatāni, cattāri ñāṇasatāni.
네 가지 구분하는 통찰지에 백 가지 법, 백 가지 뜻, 이백 가지 언어, 사백 가지 앎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