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Iddhipādavāro
3. 성취수단의 장(章)
42
“‘이것은 의욕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하자 눈이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이 의욕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는 닦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닦았다’ 하고 생각해도 눈이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이것은 정진삼매를 갖춘 것이다. 이것은 마음삼매를 갖춘 것이다. 이것은 탐구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하자 눈이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이 탐구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는 닦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닦았다’ 하고 생각해도 눈이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Ayaṃ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이것이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kho panāyaṃ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 bhāvetabbo’ti me, bhikkhave…pe… bhāvito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그리고 이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은 닦아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닦았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Ayaṃ vīriyasamādhi…pe… ayaṃ cittasamādhi…pe… ayaṃ vīmaṃsā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이것이 정진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이것이 마음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이것이 검증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kho panāyaṃ vīmaṃsā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 bhāvetabboti me, bhikkhave…pe… bhāvito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그리고 이 검증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은 닦아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닦았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이것은 의욕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다’ 하자 눈이 생기고, 이어서 빛까지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또 ‘이 신통의 토대는 닦아야 한다’ 하고 ‘닦았다’ 하자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같은 법들에 대해 눈, 지식, 지혜, 밝은 앎, 빛이 생겼다.
Ayaṃ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ti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pe… so kho panāyaṃ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 bhāvetabboti…pe… bhāvitoti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것이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그리고 이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은 닦아야 한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닦았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눈이 생겼다’는 말은 어떤 뜻에서인가? ‘지식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는 말은 어떤 뜻에서인가? ‘밝은 앎이 생겼다’, ‘빛이 생겼다’는 말은 또 어떤 뜻에서인가?
Cakkhuṃ udapādīti –
‘눈이 생겼다’란 —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Ñāṇaṃ udapādīti –
‘앎가 생겼다’란 —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Paññā udapādīti –
‘통찰지가 생겼다’란 —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Vijjā udapādīti –
‘명지가 생겼다’란 —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Āloko udapādīti –
‘광명이 생겼다’란 —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눈이 생겼다’는 것은 본다는 뜻이다. ‘지식이 생겼다’는 것은 알았다는 뜻이고, ‘지혜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하게 안다는 뜻이다. ‘밝은 앎이 생겼다’는 것은 꿰뚫는다는 뜻이고, ‘빛이 생겼다’는 것은 환히 비춘다는 뜻이다.
Cakkhuṃ udapādīti –
‘눈이 생겼다’란 —
dassanaṭṭhena.
봄이라는 뜻에서다.
Ñāṇaṃ udapādīti –
‘앎가 생겼다’란 —
ñātaṭṭhena.
알려짐이라는 뜻에서다.
Paññā udapādīti –
‘통찰지가 생겼다’란 —
pajānanaṭṭhena.
분명히 앎이라는 뜻에서다.
Vijjā udapādīti –
‘명지가 생겼다’란 —
paṭivedhaṭṭhena.
꿰뚫음이라는 뜻에서다.
Āloko udapādīti –
‘광명이 생겼다’란 —
obhāsaṭṭhena.
비춤이라는 뜻에서다.
눈은 법이고, 그 뜻은 본다는 것이다. 지식은 법이고, 그 뜻은 알았다는 것이다. 지혜는 법이며 분명하게 안다는 것이 그 뜻이다. 밝은 앎은 법이며 꿰뚫는다는 것이 그 뜻이다. 빛은 법이고, 그 뜻은 환히 비춘다는 것이다. 이 다섯 법과 다섯 뜻은 의욕을 토대로 하고 신통의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신통의 토대를 대상으로 하고 활동 영역으로 한다. 신통의 토대에 포함되고 속하며, 거기서 일어난다. 신통의 토대에 서 있고, 거기에 확립되어 있다.
Cakkhuṃ dhammo, dassanaṭṭho attho.
눈은 법이고, 봄이라는 뜻은 의미다.
Ñāṇaṃ dhammo, ñātaṭṭho attho.
앎는 법이고, 알려짐이라는 뜻은 의미다.
Paññā dhammo, pajānanaṭṭho attho.
통찰지는 법이고, 분명히 앎이라는 뜻은 의미다.
Vijjā dhammo, paṭivedhaṭṭho attho.
명지는 법이고, 꿰뚫음이라는 뜻은 의미다.
Āloko dhammo, obhāsaṭṭho attho.
광명은 법이고, 비춤이라는 뜻은 의미다.
Ime pañca dhammā pañca atthā chandavatthukā iddhipādavatthukā iddhipādārammaṇā iddhipādagocarā iddhipādasaṅgahitā iddhipādapariyāpannā iddhipāde samudāgatā iddhipāde ṭhitā iddhipāde patiṭṭhitā.
이 다섯 법과 다섯 의미는 열의를 토대로 하고, 성취수단을 토대로 하며, 성취수단을 대상으로 하고, 성취수단을 활동 영역으로 하며, 성취수단에 포섭되고, 성취수단에 속하며, 성취수단에서 일어나고, 성취수단에 서 있고, 성취수단에 확립되어 있다.
‘법의 바퀴’라고 하는데, 어떤 뜻에서 법의 바퀴인가? 법을 굴리고 바퀴를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바퀴를 굴리고 법을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으로 굴리므로, 법다운 행으로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에 서서 굴리고, 법에 확립하여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에 확립시키며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에서 자재함을 얻어 굴리고, 자재함에 이르게 하며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에서 완성에 이르러 굴리고, 완성에 이르게 하며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을 공경하며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을 깃발로 삼아 굴리고, 기치로 삼아 굴리고, 으뜸으로 삼아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그 법의 바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든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법의 바퀴다. 믿음의 기능이 법이다. 그 법을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이렇게 이어져, 불사에 뛰어드는 열반은 궁극이라는 뜻에서 법이다. 그 법을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불확실]
Dhammacakkanti kenaṭṭhena dhammacakkaṃ?
‘법륜’이란, 무슨 뜻에서 법륜인가?
Dhammañca pavatteti cakkañcāti –
법도 굴리고 바퀴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Cakkañca pavatteti dhammañcāti –
바퀴도 굴리고 법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na pavattetīti –
법으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acariyāya pavattetīti –
법다운 행으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ṭhito pavattetīti –
법에 서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patiṭṭhito pavattetīti –
법에 확립되어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patiṭṭhāpento pavattetīti –
법에 확립시키면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vasippatto pavattetīti –
법에 자재를 얻어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vasiṃ pāpento pavattetīti –
법에 자재에 이르게 하면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pāramippatto pavattetīti –
법에 완성을 얻어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pāramiṃ pāpento pavattetīti –
법에 완성에 이르게 하면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pe… dhammaṃ apacāyamāno pavattetīti –
법륜이다. 법을 공경하면서 굴린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addhajo pavattetīti –
법을 깃발로 삼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aketu pavattetīti –
법을 표기로 삼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ādhipateyyo pavattetīti –
법을 주인으로 삼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Taṃ kho pana dhammacakk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
그리고 그 법륜은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든 되돌릴 수 없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Saddhindriyaṃ dhammo.
믿음의 기능은 법이다.
Taṃ dhammaṃ pavattetīti –
그 법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pe… amatogadhaṃ nibbānaṃ pariyosānaṭṭhena dhammo.
법륜이다. 불사로 들어가는 열반은 마침이라는 뜻에서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dhammaṃ pavattetīti –
그 법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이것은 정진삼매와 정진의 의지작용을 갖춘 신통의 토대다.’ 이렇게 생각하자 눈이 생겼다. 예전에 들어 본 적 없는 법들에 대해서였다.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밝은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또 ‘이 신통의 토대는 닦아야 한다’ 하고 ‘닦았다’ 하고 생각하자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같은 법들에 대해 다시 눈, 지식, 지혜, 밝은 앎, 빛이 생겼다. ‘눈이 생겼다’에서 ‘빛이 생겼다’까지는 각각 어떤 뜻에서인가? 본다는 뜻에서 눈이 생기고, 알았다는 뜻에서 지식이 생겼다. 분명하게 안다는 뜻에서 지혜가 생기고, 꿰뚫는다는 뜻에서 밝은 앎이 생겼다. 환히 비춘다는 뜻에서 빛이 생겼다. 눈은 법이고, 그 뜻은 본다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 밝은 앎도 그렇게 이어져, 빛은 법이고 그 뜻은 환히 비춘다는 것이다. 이 다섯 법과 다섯 뜻은 정진을 토대로 하고 신통의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마음을 토대로 하는 경우도, 탐구를 토대로 하는 경우도 신통의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신통의 토대를 대상으로 하고 활동 영역으로 하며, 거기에 포함되고 속한다. 거기서 일어나고, 거기에 서 있고, 거기에 확립되어 있다.
Ayaṃ vīriy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ti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pe… so kho panāyaṃ vīriy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 bhāvetabboti…pe… bhāvitoti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pe… āloko udapādi.
‘이것이 정진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이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그리고 이 정진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은 닦아야 한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닦았다’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눈이 생겼고, 앎이 생겼고, 통찰지가 생겼고, 명지가 생겼고, 광명이 생겼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NE 16:41.1에서 되살렸습니다.
Cakkhuṃ udapādīti –
‘눈이 생겼다’란 —
kenaṭṭhena…pe… āloko udapādīti –
무슨 뜻에서인가? ‘앎이 생겼다’란 — 무슨 뜻에서인가? ‘통찰지가 생겼다’란 — 무슨 뜻에서인가? ‘명지가 생겼다’란 — 무슨 뜻에서인가? ‘광명이 생겼다’란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2.7 ~ PN:ps96/42.14에서 되살렸습니다.
kenaṭṭhena?
무슨 뜻에서인가?
Cakkhuṃ udapādīti –
‘눈이 생겼다’란 —
dassanaṭṭhena…pe… āloko udapādīti –
봄이라는 뜻에서다. ‘앎이 생겼다’란 — 알려짐이라는 뜻에서다. ‘통찰지가 생겼다’란 — 분명히 앎이라는 뜻에서다. ‘명지가 생겼다’란 — 꿰뚫음이라는 뜻에서다. ‘광명이 생겼다’란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2.17 ~ PN:ps96/42.24에서 되살렸습니다.
obhāsaṭṭhena.
비춤이라는 뜻에서다.
Cakkhuṃ dhammo, dassanaṭṭho attho…pe… āloko dhammo, obhāsaṭṭho attho.
눈은 법이고, 봄이라는 뜻은 의미다. 앎은 법이고, 알려짐이라는 뜻은 의미다. 통찰지는 법이고, 분명히 앎이라는 뜻은 의미다. 명지는 법이고, 꿰뚫음이라는 뜻은 의미다. 광명은 법이고, 비춤이라는 뜻은 의미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2.26 ~ PN:ps96/42.30에서 되살렸습니다.
Ime pañca dhammā pañca atthā vīriyavatthukā iddhipādavatthukā…pe… cittavatthukā iddhipādavatthukā… vīmaṃsāvatthukā iddhipādavatthukā iddhipādārammaṇā iddhipādagocarā iddhipādasaṅgahitā iddhipādapariyāpannā iddhipāde samudāgatā iddhipāde ṭhitā iddhipāde patiṭṭhitā.
이 다섯 법과 다섯 의미는 정진을 토대로 하고, 성취수단을 토대로 하며, 성취수단을 대상으로 하고, 성취수단을 활동 영역으로 하며, 성취수단에 포섭되고, 성취수단에 속하며, 성취수단에서 일어나고, 성취수단에 서 있고, 성취수단에 확립되어 있다. 이 다섯 법과 다섯 의미는 마음을 토대로 하고, 성취수단을 토대로 하며, 성취수단을 대상으로 하고, 성취수단을 활동 영역으로 하며, 성취수단에 포섭되고, 성취수단에 속하며, 성취수단에서 일어나고, 성취수단에 서 있고, 성취수단에 확립되어 있다. 이 다섯 법과 다섯 의미는 검증을 토대로 하고, 성취수단을 토대로 하며, 성취수단을 대상으로 하고, 성취수단을 활동 영역으로 하며, 성취수단에 포섭되고, 성취수단에 속하며, 성취수단에서 일어나고, 성취수단에 서 있고, 성취수단에 확립되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2.31에서 되살렸습니다.
‘법의 바퀴’라고 하는데, 어떤 뜻에서 법의 바퀴인가? 법을 굴리고 바퀴를 굴리므로, 바퀴를 굴리고 법을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으로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다운 행으로 굴리므로, 법에 서서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법에 확립하여 굴리므로 법의 바퀴다. 이렇게 이어져, 불사에 뛰어드는 열반은 궁극이라는 뜻에서 법이다. 그 법을 굴리므로 법의 바퀴라고 한다. 법의 바퀴에 관한 설명이 끝났다.[불확실]
Dhammacakkanti kenaṭṭhena dhammacakkaṃ?
‘법륜’이란, 무슨 뜻에서 법륜인가?
Dhammañca pavatteti cakkañcāti –
법도 굴리고 바퀴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Cakkañca pavatteti dhammañcāti –
바퀴도 굴리고 법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na pavattetīti –
법으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acariyāya pavattetīti –
법다운 행으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ṭhito pavattetīti –
법에 서서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
법륜이다.
Dhamme patiṭṭhito pavattetīti –
법에 확립되어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ṃ…pe… amatogadhaṃ nibbānaṃ pariyosānaṭṭhena dhammo.
법륜이다. 불사로 들어가는 열반은 마침이라는 뜻에서 법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dhammaṃ pavattetīti –
그 법을 굴린다고 하여 —
dhammacakkanti.
법륜이다.
Dhammacakkakathā niṭṭhitā.
법륜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8.
8.
출세간에 대한 이야기Lokuttarakathā
43
세간을 넘어선 법들은 어떤 것인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네 가지 바른 노력, 네 가지 신통의 토대, 다섯 기능, 다섯 힘이 있다. 일곱 깨달음의 구성요소와 거룩한 여덟 갈래 길도 있다. 네 가지 거룩한 길, 사문의 네 가지 결실, 그리고 열반도 있다. 이 법들이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어떤 뜻에서 세간을 넘어선 것인가?
Katame dhammā lokuttarā?
어떤 법들이 출세간인가?
Cattāro satipaṭṭhānā, cattāro sammappadhānā, cattāro iddhipādā, pañcindriyāni, pañca balāni, satta bojjhaṅgā,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cattāro ariyamaggā, cattāri ca sāmaññaphalāni, nibbānañca –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네 가지 바른 노력, 네 가지 성취수단, 다섯 기능, 다섯 힘, 일곱 깨달음의 요소, 여덟 부분으로 된 성스러운 길, 네 가지 성스러운 도, 그리고 네 가지 사문의 결실과 열반 —
ime dhammā lokuttarā.
이 법들이 출세간이다.
Lokuttarāti kenaṭṭhena lokuttarā?
‘출세간’이란, 무슨 뜻에서 출세간인가?
세간을 건너고, 세간에서 벗어나 건너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으로부터 건너 올라가고, 세간을 떠나 건너 올라가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넘어서고, 세간을 뛰어넘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이미 뛰어넘었고, 세간보다 뛰어나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의 끝을 건너고, 세간에서 벗어나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세간을 떠나 벗어나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벗어났고, 세간과 떨어져 벗어났으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떠나 벗어났고, 세간에 머물지 않으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서 있지 않고, 세간에 물들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의해 물들지 않고, 세간에 얽혀 있지 않으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과 얽혀 있지 않고, 세간에 더럽혀지지 않으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 세간에서 해탈했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Lokaṃ tarantīti –
세간을 건넌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uttarantīti –
세간에서 건너 오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uttarantīti –
세간으로부터 건너 오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uttarantīti –
세간에서 건너 오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atikkamantīti –
세간을 넘어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samatikkamantīti –
세간을 온전히 넘어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samatikkantāti –
세간을 온전히 넘어섰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atirekāti –
세간보다 뛰어나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ntaṃ tarantīti –
세간의 끝을 건넌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nissarantīti –
세간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nissarantīti –
세간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nissarantīti –
세간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nissaṭāti –
세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nissaṭāti –
세간에 의해 벗어나 있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nissaṭāti –
세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na tiṭṭhantīti –
세간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miṃ na tiṭṭhantīti –
세간 안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na limpantīti –
세간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na limpantīti –
세간에 의해 물들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asaṃlittāti –
세간에 들러붙지 않았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asaṃlittāti –
세간에 의해 들러붙지 않았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anupalittāti –
세간에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anupalittāti –
세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vippamuttāti –
세간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세간과 떨어져 해탈했고, 세간으로부터 해탈했으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놓여났고, 세간을 벗어나 해탈했으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결합이 풀렸고, 세간과의 결합이 풀렸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으로부터 결합이 풀렸고, 세간에 대해 결합이 풀렸으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속박이 풀렸고, 세간을 떠나 결합이 풀렸으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깨끗해지고, 세간으로부터 깨끗해지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떠나 깨끗해지고, 세간에서 아주 깨끗해지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으로부터 아주 깨끗해지고, 세간을 떠나 아주 깨끗해지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서 일어서고, 세간으로부터 일어서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떠나 일어서고, 세간에서 돌아서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으로부터 돌아서고, 세간을 떠나 돌아서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에 붙잡히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묶이지 않고, 세간을 완전히 끊으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Lokena vippamuttāti –
세간에 의해 온전히 벗어났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vippamuttāti –
세간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vippamuttāti –
세간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났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vippamuttāti –
세간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visaññuttāti –
세간에 대한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na visaññuttāti –
세간과의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visaññuttāti –
세간에서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miṃ visaññuttāti –
세간 안에서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visaññuttāti –
세간으로부터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visaññuttāti –
세간에서 매임이 풀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sujjhantīti –
세간에서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sujjhantīti –
세간으로부터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sujjhantīti –
세간에서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visujjhantīti –
세간에서 온전히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visujjhantīti –
세간으로부터 온전히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visujjhantīti –
세간에서 온전히 깨끗해진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vuṭṭhahantīti –
세간에서 일어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vuṭṭhahantīti –
세간으로부터 일어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vuṭṭhahantīti –
세간에서 일어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ā vivaṭṭantīti –
세간에서 돌아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to vivaṭṭantīti –
세간으로부터 돌아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mhā vivaṭṭantīti –
세간에서 돌아선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na sajjantīti –
세간에 달라붙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na gayhantīti –
세간에 붙잡히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e na bajjhantīti –
세간에 묶이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samucchindantīti –
세간을 완전히 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세간을 완전히 끊었고, 세간을 가라앉히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가라앉혔고, 세간의 길이 아니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이 갈 곳이 아니고, 세간의 영역이 아니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과 공통되지 않고, 세간을 토해 내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토해 낸 세간을 다시 삼키지 않고, 세간을 버리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움켜쥐지 않고, 세간을 풀어 헤치므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을 쌓아 올리지 않고, 세간의 연기를 걷어 내므로 그래서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 세간에 연기를 피우지 않고, 세간을 넘어서고 이겨 내어 서 있으므로 이 때문에 세간을 넘어선 것이다.[불확실]
Lokaṃ samucchinnattāti –
세간을 완전히 끊었기 때문이라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paṭippassambhentīti –
세간을 가라앉힌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paṭippassambhitattāti –
세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라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sa apathāti –
세간의 길이 아니라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sa agatīti –
세간이 갈 곳이 아니라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sa avisayāti –
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ssa asādhāraṇāti –
세간과 공통되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vamantīti –
세간을 토해 낸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na paccāvamantīti –
세간을 도로 삼키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pajahantīti –
세간을 버린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na upādiyantīti –
세간을 움켜쥐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visinentīti –
세간을 풀어 없앤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na ussinentīti –
세간을 얽어 묶지 않는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vidhūpentīti –
세간을 흩어 버린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na saṃdhūpentīti –
세간을 다시 피워 올리지 않는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lokuttarā.
출세간이다.
Lokaṃ samatikkamma abhibhuyya tiṭṭhantīti –
세간을 온전히 넘어서고 압도하여 서 있다고 하여 —
lokuttarā.
출세간이다.
세간을 넘어선 것에 관한 설명이 끝났다.
Lokuttarakathā niṭṭhitā.
출세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9.
9.
힘에 대한 이야기Balakathā
44
사밧티에서였다. “비구들이여, 힘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다섯인가?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마음챙김의 힘, 삼매의 힘, 지혜의 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힘이다. 그런데 힘은 예순여덟 가지가 있다.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마음챙김의 힘, 삼매의 힘, 지혜의 힘이 있다. 부끄러움의 힘, 두려움의 힘, 숙고의 힘, 닦음의 힘, 허물없음의 힘이 있다. 거둠의 힘, 인내의 힘, 시설의 힘, 깊이 헤아림의 힘, 주재의 힘, 결정의 힘이 있다. 사마타의 힘과 위빠사나의 힘이 있다. 유학의 열 가지 힘, 무학의 열 가지 힘, 번뇌 다한 이의 열 가지 힘이 있다. 신통의 열 가지 힘과 여래의 열 가지 힘도 있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añcimāni, bhikkhave, balāni.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힘이 있다.
Katamāni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Saddhābalaṃ, vīriyabalaṃ, satibalaṃ, samādhibalaṃ, paññābalaṃ –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마음챙김의 힘, 삼매의 힘, 지혜의 힘 —
imāni kho, bhikkhave, pañca balāni.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힘이다.
‘‘Api ca, aṭṭhasaṭṭhi balāni –
“또한 예순여덟 가지 힘이 있다 —
saddhābalaṃ, vīriyabalaṃ, satibalaṃ, samādhibalaṃ, paññābalaṃ, hiribalaṃ, ottappabalaṃ, paṭisaṅkhānabalaṃ, bhāvanābalaṃ, anavajjabalaṃ, saṅgahabalaṃ, khantibalaṃ, paññattibalaṃ, nijjhattibalaṃ, issariyabalaṃ, adhiṭṭhānabalaṃ, samathabalaṃ, vipassanābalaṃ, dasa sekhabalāni, dasa asekhabalāni, dasa khīṇāsavabalāni, dasa iddhibalāni, dasa tathāgatabalāni’’.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마음챙김의 힘, 삼매의 힘, 지혜의 힘, 부끄러움의 힘, 두려움의 힘, 살펴봄의 힘, 닦음의 힘, 나무랄 데 없음의 힘, 거두어들임의 힘, 참음의 힘, 드러냄의 힘, 헤아림의 힘, 자재의 힘, 확립의 힘, 사마타의 힘, 위빳사나의 힘, 열 가지 배우는 이의 힘, 열 가지 더 배울 것 없는 이의 힘, 열 가지 번뇌 다한 이의 힘, 열 가지 신통의 힘, 열 가지 여래의 힘이다.”
무엇이 믿음의 힘인가? 불신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믿음의 힘이다.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다. 번뇌를 소진시킨다는 뜻에서도, 꿰뚫음 등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도 믿음의 힘이다.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도,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도 믿음의 힘이다.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도,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도 믿음의 힘이다. 진리를 이해한다는 뜻에서도,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도 믿음의 힘이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
Katamaṃ saddhābalaṃ?
믿음의 힘이란 무엇인가?
Assaddhiye na kampatīti –
믿음 없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
saddhābalaṃ.
믿음의 힘이다.
Sahajātānaṃ dhammānaṃ upatthambhanaṭṭhena saddhābalaṃ, kilesānaṃ pariyādānaṭṭhena saddhābalaṃ, paṭivedhādivisodhanaṭṭhena saddhābalaṃ, cittassa adhiṭṭhānaṭṭhena saddhābalaṃ, cittassa vodānaṭṭhena saddhābalaṃ, visesādhigamaṭṭhena saddhābalaṃ, uttari paṭivedhaṭṭhena saddhābalaṃ, saccābhisamayaṭṭhena saddhābalaṃ, nirodhe patiṭṭhāpakaṭṭhena saddhābalaṃ.
함께 생긴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고, 오염원들을 소진시킨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며, 꿰뚫음을 비롯한 것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고,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며,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고,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며,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고, 진리를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며,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다.
Idaṃ saddhābalaṃ.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
무엇이 정진의 힘인가?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정진의 힘이다.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다. 번뇌를 소진시킨다는 뜻에서도, 꿰뚫음 등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도 정진의 힘이다.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도,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도 정진의 힘이다.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도,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도 정진의 힘이다. 진리를 이해한다는 뜻에서도,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도 정진의 힘이다. 이것이 정진의 힘이다.
Katamaṃ vīriyabalaṃ?
정진의 힘이란 무엇인가?
Kosajje na kampatīti –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
vīriyabalaṃ.
정진의 힘이다.
Sahajātānaṃ dhammānaṃ upatthambhanaṭṭhena vīriyabalaṃ, kilesānaṃ pariyādānaṭṭhena vīriyabalaṃ, paṭivedhādivisodhanaṭṭhena vīriyabalaṃ, cittassa adhiṭṭhānaṭṭhena vīriyabalaṃ, cittassa vodānaṭṭhena vīriyabalaṃ, visesādhigamaṭṭhena vīriyabalaṃ, uttari paṭivedhaṭṭhena vīriyabalaṃ, saccābhisamayaṭṭhena vīriyabalaṃ, nirodhe patiṭṭhāpakaṭṭhena vīriyabalaṃ.
함께 생긴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고, 오염원들을 소진시킨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며, 꿰뚫음을 비롯한 것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고,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며,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고,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며,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고, 진리를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며,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다.
Idaṃ vīriyabalaṃ.
이것이 정진의 힘이다.
무엇이 마음챙김의 힘인가? 방일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마음챙김의 힘이다.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도 마음챙김의 힘이다. 이것이 마음챙김의 힘이다.
Katamaṃ satibalaṃ?
마음챙김의 힘이란 무엇인가?
Pamāde na kampatīti –
방일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
satibalaṃ.
마음챙김의 힘이다.
Sahajātānaṃ dhammānaṃ upatthambhanaṭṭhena satibalaṃ…pe… nirodhe patiṭṭhāpakaṭṭhena satibalaṃ.
함께 생긴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고, 오염원들을 소진시킨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며, 꿰뚫음을 비롯한 것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고,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며,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고,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며,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고, 진리를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며,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11에서 되살렸습니다.
Idaṃ satibalaṃ.
이것이 마음챙김의 힘이다.
무엇이 삼매의 힘인가? 들뜸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삼매의 힘이다.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도 삼매의 힘이다. 이것이 삼매의 힘이다.
Katamaṃ samādhibalaṃ?
삼매의 힘이란 무엇인가?
Uddhacce na kampatīti –
들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
samādhibalaṃ.
삼매의 힘이다.
Sahajātānaṃ dhammānaṃ upatthambhanaṭṭhena samādhibalaṃ…pe… nirodhe patiṭṭhāpakaṭṭhena samādhibalaṃ.
함께 생긴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고, 오염원들을 소진시킨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며, 꿰뚫음을 비롯한 것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고,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며,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고,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며,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고, 진리를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며,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11에서 되살렸습니다.
Idaṃ samādhibalaṃ.
이것이 삼매의 힘이다.
무엇이 지혜의 힘인가? 무명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지혜의 힘이다.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도 지혜의 힘이다. 이것이 지혜의 힘이다.
Katamaṃ paññābalaṃ?
지혜의 힘이란 무엇인가?
Avijjāya na kampatīti –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
paññābalaṃ.
지혜의 힘이다.
Sahajātānaṃ dhammānaṃ upatthambhanaṭṭhena paññābalaṃ…pe… nirodhe patiṭṭhāpakaṭṭhena paññābalaṃ.
함께 생긴 법들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고, 오염원들을 소진시킨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며, 꿰뚫음을 비롯한 것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고, 마음을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며, 마음을 맑게 한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고, 특별한 경지를 얻는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며, 더 높이 꿰뚫는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고, 진리를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며, 소멸에 확립시킨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11에서 되살렸습니다.
Idaṃ paññābalaṃ.
이것이 지혜의 힘이다.
무엇이 부끄러움의 힘인가? 출리로 감각적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악의 없음으로 악의를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다. 빛의 인식으로 해태와 혼침을 부끄러워하고, 흩어지지 않음으로 들뜸을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다. 법의 확정으로 의심을 부끄러워하고, 지식으로 무명을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다. 기쁨으로 싫증을 부끄러워하고, 초선으로 장애들을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아라한도로 모든 번뇌를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란 무엇인가?
Nekkhammena kāmacchandaṃ hirīyatīti –
출리로써 감각적 욕망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Abyāpādena byāpādaṃ hirīyatīti –
악의 없음으로써 악의를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Ālokasaññāya thinamiddhaṃ hirīyatīti –
밝음에 대한 인식으로써 해태와 혼침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Avikkhepena uddhaccaṃ hirīyatīti –
산란하지 않음으로써 들뜸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Dhammavavatthānena vicikicchaṃ hirīyatīti –
법을 판별함으로써 의심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Ñāṇena avijjaṃ hirīyatīti –
앎으로써 무명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Pāmojjena aratiṃ hirīyatīti –
기쁨으로써 싫증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Paṭhamena jhānena nīvaraṇe hirīyatīti –
제1선으로써 장애들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 —
hiribalaṃ…pe… arahattamaggena sabbakilese hirīyatīti –
부끄러움의 힘이다. 아라한도로써 모든 오염원을 부끄러워한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Idaṃ hiribalaṃ.
이것이 부끄러움의 힘이다.
무엇이 두려움의 힘인가? 출리로 감각적 욕망을 두려워하고, 악의 없음으로 악의를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빛의 인식으로 해태와 혼침을 두려워하고, 흩어지지 않음으로 들뜸을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법의 확정으로 의심을 두려워하고, 지식으로 무명을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기쁨으로 싫증을 두려워하고, 초선으로 장애들을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아라한도로 모든 번뇌를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이것이 두려움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란 무엇인가?
Nekkhammena kāmacchandaṃ ottappatīti –
출리로써 감각적 욕망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Abyāpādena byāpādaṃ ottappatīti –
악의 없음으로써 악의를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Ālokasaññāya thinamiddhaṃ ottappatīti –
밝음에 대한 인식으로써 해태와 혼침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Avikkhepena uddhaccaṃ ottappatīti –
산란하지 않음으로써 들뜸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Dhammavavatthānena vicikicchaṃ ottappatīti –
법을 판별함으로써 의심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Ñāṇena avijjaṃ ottappatīti –
앎으로써 무명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Pāmojjena aratiṃ ottappatīti –
기쁨으로써 싫증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Paṭhamena jhānena nīvaraṇe ottappatīti –
제1선으로써 장애들을 두려워한다고 하여 —
ottappabalaṃ…pe… arahattamaggena sabbakilese ottappatīti –
두려움의 힘이다. 아라한도로써 모든 오염원을 두려워한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Idaṃ ottappabalaṃ.
이것이 두려움의 힘이다.
무엇이 숙고의 힘인가? 출리로 감각적 욕망을 숙고하고, 악의 없음으로 악의를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빛의 인식으로 해태와 혼침을 숙고하고, 흩어지지 않음으로 들뜸을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법의 확정으로 의심을 숙고하고, 지식으로 무명을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기쁨으로 싫증을 숙고하고, 초선으로 장애들을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아라한도로 모든 번뇌를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이것이 숙고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란 무엇인가?
Nekkhammena kāmacchandaṃ paṭisaṅkhātīti –
출리로써 감각적 욕망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Abyāpādena byāpādaṃ paṭisaṅkhātīti –
악의 없음으로써 악의를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Ālokasaññāya thinamiddhaṃ paṭisaṅkhātīti –
밝음에 대한 인식으로써 해태와 혼침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Avikkhepena uddhaccaṃ paṭisaṅkhātīti –
산란하지 않음으로써 들뜸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Dhammavavatthānena vicikicchaṃ paṭisaṅkhātīti –
법을 판별함으로써 의심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Ñāṇena avijjaṃ paṭisaṅkhātīti –
앎으로써 무명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Pāmojjena aratiṃ paṭisaṅkhātīti –
기쁨으로써 싫증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Paṭhamena jhānena nīvaraṇe paṭisaṅkhātīti –
제1선으로써 장애들을 살펴본다고 하여 —
paṭisaṅkhānabalaṃ…pe… arahattamaggena sabbakilese paṭisaṅkhātīti –
살펴봄의 힘이다. 아라한도로써 모든 오염원을 살펴본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paṭisaṅkhānabalaṃ.
살펴봄의 힘이다.
Idaṃ paṭisaṅkhānabalaṃ.
이것이 살펴봄의 힘이다.
무엇이 닦음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를 닦고,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을 닦으므로 닦음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을 닦고, 들뜸을 버리며 흩어지지 않음을 닦으므로 닦음의 힘이다. 의심을 버리며 법의 확정을 닦고, 무명을 버리며 지식을 닦으므로 닦음의 힘이다. 싫증을 버리며 기쁨을 닦고, 장애들을 버리며 초선을 닦으므로 닦음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를 닦으므로 닦음의 힘이다. 이것이 닦음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ṃ bhāve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를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ṃ bhāve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aṃ bhāve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Uddhaccaṃ pajahanto avikkhepaṃ bhāvetīti –
들뜸을 버리면서 산란하지 않음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Vicikicchaṃ pajahanto dhammavavatthānaṃ bhāvetīti –
의심을 버리면서 법을 판별함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Avijjaṃ pajahanto ñāṇaṃ bhāvetīti –
무명을 버리면서 앎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Aratiṃ pajahanto pāmojjaṃ bhāvetīti –
싫증을 버리면서 기쁨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Nīvaraṇe pajahanto paṭhamaṃ jhānaṃ bhāvetīti –
장애들을 버리면서 제1선을 닦는다고 하여 —
bhāvanā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ṃ bhāvetīti –
닦음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도를 닦는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Idaṃ bhāvanābalaṃ.
이것이 닦음의 힘이다.
무엇이 허물없음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이 버려져 출리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악의가 버려져 악의 없음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이 버려져 빛의 인식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들뜸이 버려져 흩어지지 않음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의심이 버려져 법의 확정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무명이 버려져 지식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싫증이 버려져 기쁨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장애들이 버려져 초선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가 버려져 아라한도에는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이것이 허물없음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ssa pahīnattā nekkhamme natthi kiñci vajjanti –
감각적 욕망을 버렸기에 출리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Byāpādassa pahīnattā abyāpāde natthi kiñci vajjanti –
악의를 버렸기에 악의 없음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Thinamiddhassa pahīnattā ālokasaññāya natthi kiñci vajjanti –
해태와 혼침을 버렸기에 밝음에 대한 인식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Uddhaccassa pahīnattā avikkhepe natthi kiñci vajjanti –
들뜸을 버렸기에 산란하지 않음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Vicikicchāya pahīnattā dhammavavatthāne natthi kiñci vajjanti –
의심을 버렸기에 법을 판별함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Avijjāya pahīnattā ñāṇe natthi kiñci vajjanti –
무명을 버렸기에 앎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Aratiyā pahīnattā pāmojje natthi kiñci vajjanti anavajjabalaṃ.
싫증을 버렸기에 기쁨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Nīvaraṇānaṃ pahīnattā paṭhamajjhāne natthi kiñci vajjanti –
장애들을 버렸기에 제1선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 —
anavajjabalaṃ…pe… sabbakilesānaṃ pahīnattā arahattamagge natthi kiñci vajjanti –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렸기에 아라한도에는 나무랄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anavajjabalaṃ.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Idaṃ anavajjabalaṃ.
이것이 나무랄 데 없음의 힘이다.
무엇이 거둠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의 힘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므로 거둠의 힘이다.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의 힘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므로 거둠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의 힘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므로 거둠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의 힘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므로 거둠의 힘이다. 이것이 거둠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saṅgahabalaṃ?
거두어들임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vasena cittaṃ saṅgaṇhā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saṅgahabalaṃ.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vasena cittaṃ saṅgaṇhā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saṅgahabalaṃ.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āvasena cittaṃ saṅgaṇhā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saṅgaha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vasena cittaṃ saṅgaṇhātīti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들뜸을 버리면서 산란하지 않음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의심을 버리면서 법을 판별함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무명을 버리면서 앎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싫증을 버리면서 기쁨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장애들을 버리면서 제1선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 —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도에 의해 마음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여[불확실]
불확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97 ~ PN:ps96/44.105에서 되살렸습니다.
saṅgahabalaṃ.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Idaṃ saṅgahabalaṃ.
이것이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무엇이 인내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이 버려져 출리가 받아들여지고, 악의가 버려져 악의 없음이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이 버려져 빛의 인식이 받아들여지고, 들뜸이 버려져 흩어지지 않음이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의심이 버려져 법의 확정이 받아들여지고, 무명이 버려져 지식이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싫증이 버려져 기쁨이 받아들여지고, 장애들이 버려져 초선이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가 버려져 아라한도가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이것이 인내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khantibalaṃ?
참음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ssa pahīnattā nekkhammaṃ khama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렸기에 출리가 견딘다고 하여 —
khantibalaṃ.
참음의 힘이다.
Byāpādassa pahīnattā abyāpādo khamatīti –
악의를 버렸기에 악의 없음이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Thinamiddhassa pahīnattā ālokasaññā khama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렸기에 밝음에 대한 인식이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Uddhaccassa pahīnattā avikkhepo khamatīti –
들뜸을 버렸기에 산란하지 않음이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Vicikicchāya pahīnattā dhammavavatthānaṃ khamatīti –
의심을 버렸기에 법을 가려 정함이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Avijjāya pahīnattā ñāṇaṃ khamatīti –
무명을 버렸기에 앎이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Aratiyā pahīnattā pāmojjaṃ khamatīti –
싫증을 버렸기에 환희가 견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Nīvaraṇānaṃ pahīnattā paṭhamaṃ jhānaṃ khamatīti –
장애들을 버렸기에 제1선이 견딘다 —
khantibalaṃ…pe… sabbakilesānaṃ pahīnattā arahattamaggo khamatīti –
견딤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렸기에 아라한의 도가 견딘다[불확실]
불확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Idaṃ khantibalaṃ.
이것이 견딤의 힘이다.
무엇이 시설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의 힘으로 마음을 정해 세우므로 시설의 힘이다.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의 힘으로 마음을 정해 세우므로 시설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의 힘으로 마음을 정해 세우므로 시설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의 힘으로 마음을 정해 세우므로 시설의 힘이다. 이것이 시설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paññattibalaṃ?
알게 함의 힘이란 무엇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vasena cittaṃ paññape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를 통해 마음을 알게 한다[불확실]
불확실 —
paññattibalaṃ.
알게 함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vasena cittaṃ paññape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을 통해 마음을 알게 한다 —
paññattibalaṃ.
알게 함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āvasena cittaṃ paññape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마음을 알게 한다 —
paññatti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vasena cittaṃ paññapetīti –
알게 함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통해 마음을 알게 한다[불확실]
불확실 —
paññattibalaṃ.
알게 함의 힘이다.
Idaṃ paññattibalaṃ.
이것이 알게 함의 힘이다.
무엇이 깊이 헤아림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의 힘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하므로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의 힘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하므로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의 힘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하므로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의 힘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하므로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 이것이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nijjhattibalaṃ?
납득시킴의 힘이란 무엇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vasena cittaṃ nijjhāpe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를 통해 마음을 납득시킨다[불확실]
불확실 —
nijjhattibalaṃ.
납득시킴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vasena cittaṃ nijjhāpe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을 통해 마음을 납득시킨다 —
nijjhattibalaṃ.
납득시킴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āvasena cittaṃ nijjhāpe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마음을 납득시킨다 —
nijjhatti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vasena cittaṃ nijjhāpetīti –
납득시킴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통해 마음을 납득시킨다[불확실]
불확실 —
nijjhattibalaṃ.
납득시킴의 힘이다.
Idaṃ nijjhattibalaṃ.
이것이 납득시킴의 힘이다.
무엇이 주재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의 힘으로 마음을 뜻대로 부리므로 주재의 힘이다.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의 힘으로 마음을 뜻대로 부리므로 주재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의 힘으로 마음을 뜻대로 부리므로 주재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의 힘으로 마음을 뜻대로 부리므로 주재의 힘이다. 이것이 주재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issariyabalaṃ?
지배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vasena cittaṃ vasaṃ vatte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를 통해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
issariyabalaṃ.
지배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vasena cittaṃ vasaṃ vatte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을 통해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
issariyabalaṃ.
지배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āvasena cittaṃ vasaṃ vatte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
issariya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vasena cittaṃ vasaṃ vattetīti –
지배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통해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불확실]
불확실 —
issariyabalaṃ.
지배의 힘이다.
Idaṃ issariyabalaṃ.
이것이 지배의 힘이다.
무엇이 결정의 힘인가? 감각적 욕망을 버리며 출리의 힘으로 마음을 굳게 결정하므로 결정의 힘이다. 악의를 버리며 악의 없음의 힘으로 마음을 굳게 결정하므로 결정의 힘이다. 해태와 혼침을 버리며 빛의 인식의 힘으로 마음을 굳게 결정하므로 결정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를 버리며 아라한도의 힘으로 마음을 굳게 결정하므로 결정의 힘이다. 이것이 결정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adhiṭṭhānabalaṃ?
굳게 세움의 힘이란 무엇인가?
Kāmacchandaṃ pajahanto nekkhammavasena cittaṃ adhiṭṭhātīti –
감각적 욕망을 버리면서 출리를 통해 마음을 굳게 세운다 —
adhiṭṭhānabalaṃ.
굳게 세움의 힘이다.
Byāpādaṃ pajahanto abyāpādavasena cittaṃ adhiṭṭhātīti –
악의를 버리면서 악의 없음을 통해 마음을 굳게 세운다 —
adhiṭṭhānabalaṃ.
굳게 세움의 힘이다.
Thinamiddhaṃ pajahanto ālokasaññāvasena cittaṃ adhiṭṭhātīti –
해태와 혼침을 버리면서 밝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마음을 굳게 세운다 —
adhiṭṭhānabalaṃ…pe… sabbakilese pajahanto arahattamaggavasena cittaṃ adhiṭṭhātīti –
굳게 세움의 힘이다. 모든 오염원을 버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통해 마음을 굳게 세운다[불확실]
불확실 —
adhiṭṭhānabalaṃ.
굳게 세움의 힘이다.
Idaṃ adhiṭṭhānabalaṃ.
이것이 굳게 세움의 힘이다.
무엇이 사마타의 힘인가? 출리의 힘으로 마음이 한곳에 모여 흩어지지 않는 것이 사마타의 힘이다. 악의 없음의 힘으로, 빛의 인식의 힘으로도 그렇다. 이렇게 이어져, 들숨에서 놓아 버림을 관찰하는 힘으로도 마음이 한곳에 모여 흩어지지 않는다. 날숨에서 놓아 버림을 관찰하는 힘으로도 마찬가지이니, 이것이 사마타의 힘이다. ‘사마타의 힘’이라는 것은 어떤 뜻에서 사마타의 힘인가? 초선으로 장애들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제이선으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제삼선으로 희열에 흔들리지 않고, 제사선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공간이 끝없음의 영역을 증득하여 물질의 인식과 부딪침의 인식, 갖가지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의식이 끝없음의 영역을 증득하여 공간이 끝없음의 영역의 인식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증득하여 의식이 끝없음의 영역의 인식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인식도 아니고 인식 아님도 아닌 영역을 증득하여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의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들뜸과 들뜸에 따르는 번뇌들과 오온에 흔들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떨지 않으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이것이 사마타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란 무엇인가?
Nekkhamm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athabalaṃ, abyāpād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athabalaṃ, ālokasaññā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athabalaṃ…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athabalaṃ, paṭinissaggānupassī passāsavasena cittassa ekaggatā avikkhepo samathabalaṃ.
출리를 통한 마음의 한끝 집중, 산란하지 않음이 사마타의 힘이고, 악의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한끝 집중, 산란하지 않음이 사마타의 힘이고, 밝음에 대한 인식을 통한 마음의 한끝 집중, 산란하지 않음이 사마타의 힘이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들숨을 통한 마음의 한끝 집중, 산란하지 않음이 사마타의 힘이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는 날숨을 통한 마음의 한끝 집중, 산란하지 않음이 사마타의 힘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athabalanti kenaṭṭhena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라 하니, 어떤 뜻에서 사마타의 힘인가?
Paṭhamena jhānena nīvaraṇe na kampatīti –
제1선으로써 장애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Dutiyena jhānena vitakkavicāre na kampatīti –
제2선으로써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Tatiyena jhānena pītiyā na kampatīti –
제3선으로써 희열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Catutthena jhānena sukhadukkhe na kampatīti –
제4선으로써 즐거움과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rūpasaññāya paṭighasaññāya nānattasaññāya na kampatīti –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으로써 물질에 대한 인식과 부딪힘의 인식과 갖가지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ākāsānañcāyatanasaññāya na kampatīti –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으로써 허공이 무한한 경지에 대한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iññāṇañcāyatanasaññāya na kampatīti –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으로써 의식이 무한한 경지에 대한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ākiñcaññāyatanasaññāya na kampatīti –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대한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Uddhacce ca uddhaccasahagatakilese ca khandhe ca na kampatī na calati na vedhatīti –
들뜸에도, 들뜸과 함께하는 오염원들에도, 무더기들에도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떨리지 않는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Idaṃ samathabalaṃ.
이것이 사마타의 힘이다.
무엇이 위빠사나의 힘인가? 무상을 관찰함이 위빠사나의 힘이고, 괴로움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놓아 버림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물질에 대해 무상을 관찰함이 위빠사나의 힘이고, 괴로움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물질에 대해 놓아 버림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느낌에 대해서도, 인식에 대해서도, 형성들에 대해서도, 의식에 대해서도 같다. 눈에 대해서부터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그렇다.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관찰함이 위빠사나의 힘이고, 괴로움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이렇게 이어져 늙음과 죽음에 대해 놓아 버림을 관찰함도 위빠사나의 힘이다. ‘위빠사나의 힘’이라는 것은 어떤 뜻에서 위빠사나의 힘인가? 무상을 관찰하여 항상하다는 인식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괴로움을 관찰하여 즐겁다는 인식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무아를 관찰하여 자아라는 인식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싫어함을 관찰하여 즐김에 흔들리지 않고, 탐욕이 사라짐을 관찰하여 탐욕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소멸을 관찰하여 일어남에 흔들리지 않고, 놓아 버림을 관찰하여 붙잡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무명과 무명에 따르는 번뇌들과 오온에 흔들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떨지 않으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이것이 위빠사나의 힘이다.[불확실]
Katamaṃ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란 무엇인가?
Anicc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dukkh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pe… paṭinissagg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rūpe anicc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rūpe dukkh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pe… rūpe paṭinassagg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vedanāya…pe… saññāya… saṅkhāresu… viññāṇe… cakkhusmiṃ…pe… jarāmaraṇe anicc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jarāmaraṇe dukkh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pe… jarāmaraṇe paṭinissaggānupassanā vipassanābalaṃ.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물질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물질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느낌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느낌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인식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인식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형성작용들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의식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의식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눈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눈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상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괴로움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무아를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소멸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이 위빳사나의 힘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16 ~ PN:ps96/44.228에서 되살렸습니다.
Vipassanābalanti kenaṭṭhena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라 하니, 어떤 뜻에서 위빳사나의 힘인가?
Aniccānupassanāya niccasaññāya na kampatīti –
무상을 거듭 살핌으로써 항상하다는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Dukkhānupassanāya sukhasaññāya na kampatīti –
괴로움을 거듭 살핌으로써 즐겁다는 인식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Anattānupassanāya attasaññāya kampatīti –
무아를 거듭 살핌으로써 자아라는 인식에 흔들린다[불확실]
불확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Nibbidānupassanāya nandiyā na kampatīti –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으로써 즐김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Virāgānupassanāya rāge na kampatīti –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으로써 탐욕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Nirodhānupassanā samudaye na kampatīti –
소멸을 거듭 살핌은 일어남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Paṭinissaggānupassanāya ādāne na kampatīti –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으로써 취함에 흔들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Avijjāya avijjāsahagatakilese ca khandhe ca na kampati na calati na vedhatīti –
무명에도, 무명과 함께하는 오염원들에도, 무더기들에도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떨리지 않는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Idaṃ vipassanābalaṃ.
이것이 위빳사나의 힘이다.
유학의 열 가지 힘과 무학의 열 가지 힘은 어떤 것인가? 바른 견해를 배우므로 유학의 힘이고, 거기서 배움을 마쳤으므로 무학의 힘이다. 바른 사유를 배우므로 유학의 힘이고, 거기서 배움을 마쳤으므로 무학의 힘이다.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도 그렇다.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 바른 지식, 바른 해탈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배우므로 유학의 힘이고, 거기서 배움을 마쳤으므로 무학의 힘이다. 이것이 유학의 열 가지 힘이고 무학의 열 가지 힘이다.
Katamāni dasa sekhabalāni, dasa asekhabalāni?
열 가지 배우는 이의 힘과 열 가지 다 배운 이의 힘이란 무엇인가?
Sammādiṭṭhiṃ sikkhatīti –
바른 견해를 배운다 —
sekhabalaṃ.
배우는 이의 힘이다.
Tattha sikkhitattā asekhabalaṃ.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다 배운 이의 힘이다.
Sammāsaṅkappaṃ sikkhatīti –
바른 사유를 배운다 —
sekhabalaṃ.
배우는 이의 힘이다.
Tattha sikkhitattā –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asekhabalaṃ.
다 배운 이의 힘이다.
Sammāvācaṃ…pe… sammākammantaṃ… sammāājīvaṃ… sammāvāyāmaṃ… sammāsatiṃ… sammāsamādhiṃ… sammāñāṇaṃ…pe… sammāvimuttiṃ sikkhatīti –
바른 말을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행위를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생계를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정진을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마음챙김을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삼매를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앎을 배운다 — 배우는 이의 힘이다.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바른 해탈을 배운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37 ~ PN:ps96/44.240에서 되살렸습니다.
sekhabalaṃ.
배우는 이의 힘이다.
Tattha sikkhitattā –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asekhabalaṃ.
다 배운 이의 힘이다.
Imāni dasa sekhabalāni, dasa asekhabalāni.
이것이 열 가지 배우는 이의 힘이고, 열 가지 다 배운 이의 힘이다.
번뇌 다한 이의 열 가지 힘은 어떤 것인가? 번뇌 다한 비구는 모든 형성이 무상하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잘 보고 있다.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가 소멸했음을 공언한다. ‘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또 번뇌 다한 비구는 감각적 욕망이 숯불 구덩이와 같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잘 보고 있다.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가 소멸했음을 공언한다. ‘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또 번뇌 다한 비구의 마음은 멀리 떠남으로 기울고,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쏠린다. 멀리 떠남에 머물고 출리를 즐기며, 번뇌의 바탕이 되는 법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가 소멸했음을 공언한다. ‘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또 번뇌 다한 비구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 잘 닦아 놓았다.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가 소멸했음을 공언한다. ‘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또 번뇌 다한 비구는 네 가지 바른 노력을 닦아 잘 닦아 놓았다. 네 가지 신통의 토대와 다섯 기능, 다섯 힘, 일곱 깨달음의 구성요소도 그렇다. 거룩한 여덟 갈래 길도 닦아 잘 닦아 놓았다. 여덟 갈래 길을 잘 닦아 놓았다는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가 소멸했음을 공언한다. ‘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이것이 번뇌 다한 이의 열 가지 힘이다.[불확실]
Katamāni dasa khīṇāsavabalāni?
열 가지 번뇌 다한 이의 힘이란 무엇인가?
Idha khīṇāsavassa bhikkhuno aniccato sabbe saṅkhārā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ā honti.
여기, 번뇌 다한 비구에게 모든 형성작용이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인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aniccato sabbe saṅkhārā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ā honti, id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khīṇāsavo bhikkhu āsavānaṃ khayaṃ paṭijānāti –
번뇌 다한 비구에게 모든 형성작용이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인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khīṇā me āsavā’’ti.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Puna caparaṃ khīṇāsavassa bhikkhuno aṅgārakāsūpamā kāmā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ā honti.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감각적 욕망들이 숯불 구덩이와 같다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인다.
Y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aṅgārakāsūpamā kāmā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ā honti, id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khīṇāsavo bhikkhu āsavānaṃ khayaṃ paṭijānāti –
번뇌 다한 비구에게 감각적 욕망들이 숯불 구덩이와 같다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인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khīṇā me āsavā’’ti.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Puna caparaṃ khīṇāsavassa bhikkhuno vivekaninnaṃ cittaṃ hoti vivekapoṇaṃ vivekapabbhāraṃ vivekaṭṭhaṃ nekkhammābhirataṃ byantībhūtaṃ sabbaso āsavaṭṭhāniyehi dhammehi.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의 마음은 떨침으로 기울고, 떨침으로 쏠리고, 떨침으로 굽고, 떨침에 서 있고, 출리를 기뻐하며, 번뇌의 발판이 되는 법들에서 온통 벗어나 있다.
Y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vivekaninnaṃ cittaṃ hoti vivekapoṇaṃ vivekapabbhāraṃ vivekaṭṭhaṃ nekkhammābhirataṃ byantibhūtaṃ sabbaso āsavaṭṭhāniyehi dhammehi, id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khīṇāsavo bhikkhu āsavānaṃ khayaṃ paṭijānāti –
번뇌 다한 비구의 마음이 떨침으로 기울고, 떨침으로 쏠리고, 떨침으로 굽고, 떨침에 서 있고, 출리를 기뻐하며, 번뇌의 발판이 되는 법들에서 온통 벗어나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khīṇā me āsavā’’ti.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Puna caparaṃ khīṇāsavassa bhikkhuno cattāro satipaṭṭhānā bhāvitā honti subhāvitā.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Y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cattāro satipaṭṭhānā bhāvitā honti subhāvitā, id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khīṇāsavo bhikkhu āsavānaṃ khayaṃ paṭijānāti –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khīṇā me āsavā’’ti.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Puna caparaṃ khīṇāsavassa bhikkhuno cattāro sammappadhānā bhāvitā honti subhāvitā…pe…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honti subhāvitā… pañcindriyāni bhāvitāni honti subhāvitāni… pañca balāni bhāvitāni honti subhāvitāni… satta bojjhaṅgā bhāvitā honti subhāvitā…p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bhāvito hoti subhāvito.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바른 노력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바른 노력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성취수단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네 가지 성취수단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다섯 기능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다섯 기능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다섯 힘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다섯 힘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곱 깨달음의 요소가 닦이고 잘 닦여 있다. 번뇌 다한 비구에게 일곱 깨달음의 요소가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다시 또, 번뇌 다한 비구에게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56 ~ PN:ps96/44.258에서 되살렸습니다.
Y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aṭṭhaṅgiko maggo bhāvito hoti subhāvito, idampi khīṇāsavassa bhikkhuno 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khīṇāsavo bhikkhu āsavānaṃ khayaṃ paṭijānāti –
번뇌 다한 비구에게 여덟 갈래 길이 닦이고 잘 닦여 있다는 것, 이것도 번뇌 다한 비구의 힘이니, 그 힘에 의지하여 번뇌 다한 비구는 번뇌들의 다함을 이렇게 밝힌다 —
‘‘khīṇā me āsavā’’ti.
“나의 번뇌들은 다했다.”
Imāni dasa khīṇāsavabalāni.
이것이 열 가지 번뇌 다한 이의 힘이다.
신통의 열 가지 힘은 어떤 것인가? 결심으로 이루는 신통, 변화시키는 신통, 마음으로 만든 신통이 있다. 지식이 번뜩이는 신통, 삼매가 번뜩이는 신통, 거룩한 신통도 있다. 업의 과보로 생긴 신통, 공덕 있는 이의 신통, 명지로 이루어진 신통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때그때 바르게 노력한 인연으로 성취된다는 뜻의 신통이 있다. 이것이 신통의 열 가지 힘이다.
Katamāni dasa iddhibalāni?
열 가지 신통의 힘이란 무엇인가?
Adhiṭṭhānā iddhi, vikubbanā iddhi, manomayā iddhi, ñāṇavipphārā iddhi, samādhivipphārā iddhi, ariyā iddhi, kammavipākajā iddhi, puññavato iddhi, vijjāmayā iddhi, tattha tattha sammā payogappaccayā ijjhanaṭṭhena iddhi –
결의의 신통, 변형의 신통, 마음으로 만드는 신통, 앎이 퍼져 나온 신통, 삼매가 퍼져 나온 신통, 성스러운 신통, 업의 과보로 생긴 신통, 공덕 있는 이의 신통, 명지로 이루어진 신통, 여기저기서 바르게 애쓴 것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에서의 신통 —
imāni dasa iddhibalāni.
이것이 열 가지 신통의 힘이다.
여래의 열 가지 힘은 어떤 것인가? 여래는 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 같은 자리를 공언하고, 대중 속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업의 받아 지님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 경우에 따라, 원인에 따라 과보를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 같은 자리를 공언하고, 대중 속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여래는 모든 곳으로 이끄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 같은 자리를 공언하고, 대중 속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또 여래는 여러 요소와 갖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또 여래는 중생들의 갖가지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또 여래는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들의 기능이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또 여래는 선정, 해탈, 삼매, 증득의 오염과 정화와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불확실]
Katamāni dasa tathāgatabalāni?
열 가지 여래의 힘이란 무엇인가?
Idha tathāgato 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여기, 여래는 도리를 도리대로, 도리 아닌 것을 도리 아닌 것대로 있는 그대로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mpi tathāgato 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여래가 도리를 도리대로, 도리 아닌 것을 도리 아닌 것대로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지은 업들의 과보를 근거에 따라 원인에 따라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여래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지은 업들의 과보를 근거에 따라 원인에 따라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모든 곳으로 이끄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여래가 모든 곳으로 이끄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anekadhātunānādhātulo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여러 요소와 갖가지 요소를 지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anekadhātunānādhātulo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pe….
여래가 여러 요소와 갖가지 요소를 지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72에서 되살렸습니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중생들이 갖가지 성향을 지녔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pe….
여래가 중생들이 갖가지 성향을 지녔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72에서 되살렸습니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기능이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pe….
여래가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기능이 높고 낮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72에서 되살렸습니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다시 또, 여래는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의 오염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
Yampi tathāgato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mpi tathāgatassa…pe….
여래가 선(禪)과 해탈과 삼매와 증득의 오염과 깨끗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72에서 되살렸습니다.
또 여래는 갖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곧 한 생, 두 생 … 이렇게 양상과 상세한 내용을 갖춘 갖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또 여래는 청정하고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천안으로 중생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또 여래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얻는다. 지금 여기서 스스로 최고의 지혜로 실현하고 이르러 머문다. 이것도 여래의 힘이다. 이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황소 같은 자리를 공언하고, 대중 속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이것이 여래의 열 가지 힘이다.[불확실]
Puna caparaṃ tathāgat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다시 또, 여래는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한 생도, 두 생도 기억하며, 이와 같이 모습과 함께 자세하게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Yampi tathāgat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여래가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
Seyyathidaṃ –
곧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dampi tathāgatassa…pe….
한 생도, 두 생도 기억한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88에서 되살렸습니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pe… yampi tathāgat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pe… idampi tathāgatassa…pe….
다시 또, 여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여래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4.288에서 되살렸습니다.
Puna caparaṃ tathāgat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다시 또, 여래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문다.
Yampi tathāgat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tathāgatassa tathāgatabalaṃ hoti, yaṃ balaṃ āgamma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i.
여래가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서 스스로 깨달아 실현하고 그것을 이루어 머문다는 것, 이것도 여래에게 여래의 힘이 되니, 그 힘에 의지하여 여래는 으뜸가는 자리를 자처하고, 여러 회중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거룩한 바퀴를 굴린다.
Imāni dasa tathāgatabalāni.
이것이 열 가지 여래의 힘이다.
45
믿음의 힘, 정진의 힘, 마음챙김의 힘, 삼매의 힘, 지혜의 힘은 각각 어떤 뜻에서 힘인가? 부끄러움의 힘과 두려움의 힘은 어떤 뜻에서 힘인가? 숙고의 힘에서 여래의 힘에 이르기까지도 각각 어떤 뜻에서 힘인가? 불신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다.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다. 방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다. 들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고,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지혜의 힘이다. 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부끄러워하므로 부끄러움의 힘이고, 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두려워하므로 두려움의 힘이다. 지식으로 번뇌들을 숙고하므로 숙고의 힘이다. 거기서 생겨난 법들이 한 맛이 되므로 닦음의 힘이다. 거기에 허물이 조금도 없으므로 허물없음의 힘이다. 그것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이므로 거둠의 힘이고, 그것이 그에게 받아들여지므로 인내의 힘이다. 그것으로 마음을 정해 세우므로 시설의 힘이다. 그것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하므로 깊이 헤아림의 힘이다. 그것으로 마음을 뜻대로 부리므로 주재의 힘이고, 그것으로 마음을 굳게 결정하므로 결정의 힘이다. 그것으로 마음이 한곳에 모이므로 사마타의 힘이다. 거기서 생겨난 법들을 관찰하므로 위빠사나의 힘이다. 거기서 배우므로 유학의 힘이고, 거기서 배움을 마쳤으므로 무학의 힘이다. 그것으로 번뇌가 다하므로 번뇌 다한 이의 힘이다. 그에게 성취되므로 신통의 힘이다. 헤아릴 수 없다는 뜻에서 여래의 힘이다. 힘에 관한 설명이 끝났다.[불확실]
Kenaṭṭhena saddhābalaṃ?
어떤 뜻에서 믿음의 힘인가?
Kenaṭṭhena vīriyabalaṃ?
어떤 뜻에서 정진의 힘인가?
Kenaṭṭhena satibalaṃ?
어떤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인가?
Kenaṭṭhena samādhibalaṃ?
어떤 뜻에서 삼매의 힘인가?
Kenaṭṭhena paññābalaṃ?
어떤 뜻에서 통찰지의 힘인가?
Kenaṭṭhena hiribalaṃ?
어떤 뜻에서 부끄러움의 힘인가?
Kenaṭṭhena ottappabalaṃ?
어떤 뜻에서 두려움의 힘인가?
Kenaṭṭhena paṭisaṅkhānabalaṃ…pe… kenaṭṭhena tathāgatabalaṃ?
어떤 뜻에서 성찰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닦음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허물없음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거두어들임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견딤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알게 함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납득시킴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지배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굳게 세움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사마타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위빳사나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배우는 이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다 배운 이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번뇌 다한 이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신통의 힘인가? 어떤 뜻에서 여래의 힘인가?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5.19 ~ PN:ps96/45.47에서 되살렸습니다.
Assaddhiye akampiyaṭṭhena saddhābalaṃ.
믿음 없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믿음의 힘이다.
Kosajje akampiyaṭṭhena vīriyabalaṃ.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정진의 힘이다.
Pamāde akampiyaṭṭhena satibalaṃ.
방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마음챙김의 힘이다.
Uddhacce akampiyaṭṭhena samādhibalaṃ.
들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삼매의 힘이다.
Avijjāya akampiyaṭṭhena paññābalaṃ.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통찰지의 힘이다.
Hirīyati pāpake akusale dhammeti –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부끄러워한다 —
hiribalaṃ.
부끄러움의 힘이다.
Ottappati pāpake akusale dhammeti –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두려워한다 —
ottappabalaṃ.
두려움의 힘이다.
Ñāṇena kilese paṭisaṅkhātīti –
앎으로써 오염원들을 성찰한다 —
paṭisaṅkhānabalaṃ.
성찰의 힘이다.
Tattha jātā dhammā ekarasā hontīti –
거기서 생긴 법들이 한맛이 된다 —
bhāvanābalaṃ.
닦음의 힘이다.
Tattha natthi kiñci vajjanti –
거기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다 —
anavajjabalaṃ.
허물없음의 힘이다.
Tena cittaṃ saṅgaṇhātīti –
그것으로 마음을 거두어들인다 —
saṅgahabalaṃ.
거두어들임의 힘이다.
Taṃ tassa khamatīti –
그것이 그에게 견딜 만하다 —
khantibalaṃ.
견딤의 힘이다.
Tena cittaṃ paññapetīti –
그것으로 마음을 알게 한다[불확실]
불확실 —
paññattibalaṃ.
알게 함의 힘이다.
Tena cittaṃ nijjhāpetīti –
그것으로 마음을 납득시킨다[불확실]
불확실 —
nijjhattibalaṃ.
납득시킴의 힘이다.
Tena cittaṃ vasaṃ vattetīti –
그것으로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
issariyabalaṃ.
지배의 힘이다.
Tena cittaṃ adhiṭṭhātīti –
그것으로 마음을 굳게 세운다 —
adhiṭṭhānabalaṃ.
굳게 세움의 힘이다.
Tena cittaṃ ekagganti –
그것으로 마음이 한끝에 모인다 —
samathabalaṃ.
사마타의 힘이다.
Tattha jāte dhamme anupassatīti –
거기서 생긴 법들을 거듭 살핀다 —
vipassanābalaṃ.
위빳사나의 힘이다.
Tattha sikkhatīti –
거기서 배운다 —
sekhabalaṃ.
배우는 이의 힘이다.
Tattha sikkhitattā –
거기서 이미 배웠으므로 —
asekhabalaṃ.
다 배운 이의 힘이다.
Tena āsavā khīṇāti –
그것으로 번뇌들이 다했다 —
khīṇāsavabalaṃ.
번뇌 다한 이의 힘이다.
Tassa ijjhatīti –
그에게 이루어진다 —
iddhibalaṃ.
신통의 힘이다.
Appameyyaṭṭhena tathāgatabalanti.
헤아릴 수 없다는 뜻에서 여래의 힘이다.
Balakathā niṭṭhitā.
힘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10.
10.
공에 대한 논의Suññakathā
46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에 머물렀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상은 비었다, 세상은 비었다’ 하고들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를 두고 ‘세상은 비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Suñño loko, suñño loko’ti, bhante, vuccati.
“‘세상은 비었다, 세상은 비었다’고, 세존이시여, 말합니다.
Kittāvatā nu kho, bhante, ‘suñño loko’ti vuccatī’’ti?
세존이시여, 어떤 점에서 ‘세상은 비었다’고 말합니까?”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으므로 ‘세상은 비었다’고 한다. 아난다여, 무엇이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는가?
‘‘Yasmā kho, ānanda,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tasmā ‘suñño loko’ti vuccati.
“아난다여,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기에, 그래서 ‘세상은 비었다’고 말한다.
Kiñcānanda,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아난다여, 그러면 무엇이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는가?
아난다여, 눈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다. 형상들도, 눈의 의식도, 눈의 접촉도 그렇다.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낌도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모두 그렇다.
Cakkhu kho, ānanda,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아난다여, 눈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Rūpā suññā attena vā attaniyena vā.
물질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Cakkhuviññāṇaṃ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눈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Cakkhusamphasso suñño attena vā attaniyena vā.
눈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Yampidaṃ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귀는 비어 있고, 소리들도 비어 있다. 코는 비어 있고, 냄새들도 비어 있다. 혀는 비어 있고, 맛들도 비어 있다. 몸은 비어 있고, 감촉들도 비어 있다. 마음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다. 법들도, 마음의 의식도, 마음의 접촉도 그렇다. 마음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낌도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그렇다.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비어 있으므로 ‘세상은 비었다’고 한다.
‘‘Sotaṃ suññaṃ…pe… saddā suññā… ghānaṃ suññaṃ… gandhā suññā… jivhā suññā… rasā suññā… kāyo suñño… phoṭṭhabbā suññā… mano suñño attena vā attaniyena vā.
귀는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소리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귀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귀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귀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코는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냄새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코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코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코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혀는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맛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혀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혀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혀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몸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감촉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몸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몸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몸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마음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6:46.10 ~ PN:ps96/46.14에서 되살렸습니다.
Dhammā suññā attena vā attaniyena vā.
법들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Manoviññāṇaṃ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마음의 의식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Manosamphasso suñño attena vā attaniyena vā.
마음의 접촉은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Yampidaṃ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마음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껴진 것, 곧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것도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다.
Yasmā kho, ānanda, suññaṃ attena vā attaniyena vā tasmā ‘suñño loko’ti vuccatī’’ti.
아난다여, 자아로도 자아에 속한 것으로도 비었기에, 그래서 ‘세상은 비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