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Carasuttaṃ
11. 걸어감 경
110
이것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라한이신 그분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
비구들이여, 걷고 있는 비구에게 감각적 욕망이나 악의나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으면, 몰아내지도 끝내지도 없애지도 않으면, 그는 걷는 동안에도 열의가 없다. 잘못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늘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에게도 똑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면, 서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가 없고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늘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에게도 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으면,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 없고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늘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누워서 깨어 있는 비구에게도 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으면, 누워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 없고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늘 게으르고 정진이 모자란 사람이라 불린다.[불확실]
‘‘Carato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걸어가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몰아내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어짐으로 이끈다고 하자.[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Caram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anātāpī anottāpī satataṃ samitaṃ kusīto hīnavīriyoti vuccati.
비구들이여, 걸어가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늘 한결같이 게으르고 정진이 약한 자라고 불린다.
‘‘Ṭhit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karoti na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몰아내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어짐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하자.
Ṭhito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anātāpī anottāpī satataṃ samitaṃ kusīto hīnavīriyoti vuccati.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늘 한결같이 게으르고 정진이 약한 자라고 불린다.
‘‘Nisinn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karoti na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몰아내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어짐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하자.
Nisinno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anātāpī anottāpī satataṃ samitaṃ kusīto hīnavīriyoti vuccati.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늘 한결같이 게으르고 정진이 약한 자라고 불린다.
‘‘Sayān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jāgarassa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누워서 깨어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adhivāseti nappajahati na vinodeti na byantīkaroti na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고 몰아내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어짐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하자.
Sayānopi, bhikkhave, bhikkhu jāgaro evaṃbhūto anātāpī anottāpī satataṃ samitaṃ kusīto hīnavīriyoti vuccati.
비구들이여, 누워 있는 비구도 깨어 있으면서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늘 한결같이 게으르고 정진이 약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걷고 있는 비구에게도 감각적 욕망이나 악의나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면, 몰아내고 끝내고 없애면, 그는 걷는 동안에도 열의가 있다. 잘못을 두려워한다. 그는 늘 정진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다잡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에게도 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면, 서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가 있고 잘못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 늘 정진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다잡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에게도 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면,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가 있고 잘못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 늘 정진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다잡은 사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누워서 깨어 있는 비구에게도 같은 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면, 누워 있는 동안에도 그는 열의가 있고 잘못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 늘 정진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다잡은 사람이라 불린다.[불확실]
‘‘Carato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걸어가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고 없어짐으로 이끈다고 하자.
Caram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ātāpī ottāpī satataṃ samitaṃ āraddhavīriyo pahita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걸어가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며 늘 한결같이 정진을 다하고 스스로를 다잡은 자라고 불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Ṭhit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고 없어짐으로 이끈다고 하자.
Ṭhito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ātāpī ottāpī satataṃ samitaṃ āraddhavīriyo pahita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서 있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며 늘 한결같이 정진을 다하고 스스로를 다잡은 자라고 불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Nisinn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고 없어짐으로 이끈다고 하자.
Nisinnopi, bhikkhave, bhikkhu evaṃbhūto ātāpī ottāpī satataṃ samitaṃ āraddhavīriyo pahita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앉아 있는 비구도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며 늘 한결같이 정진을 다하고 스스로를 다잡은 자라고 불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yānassa cepi, bhikkhave, bhikkhuno jāgarassa uppajjati kāmavitakko vā byāpādavitakko vā vihiṃsāvitakko vā.
“비구들이여, 누워서 깨어 있는 비구에게라도 감각적 욕망의 사유나 악의의 사유나 해침의 사유가 일어난다고 하자.
Tañce, bhikkhave, bhikkhu nādhivāseti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비구들이여, 그것을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몰아내고 끝내고 없어짐으로 이끈다고 하자.
Sayānopi, bhikkhave, bhikkhu jāgaro evaṃbhūto ātāpī ottāpī satataṃ samitaṃ āraddhavīriyo pahitattoti vuccatī’’ti.
비구들이여, 누워 있는 비구도 깨어 있으면서 이러한 상태이면 열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며 늘 한결같이 정진을 다하고 스스로를 다잡은 자라고 불린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Etamatthaṃ bhagavā avoca.
세존께서는 이 뜻을 말씀하셨다.
Tatthetaṃ iti vuccati –
그리하여 이것이 이렇게 말해졌다 —
걷거나 서 있거나, / 앉거나 눕거나 하면서
‘‘Caraṃ vā yadi vā tiṭṭhaṃ, nisinno uda vā sayaṃ;
“걸어가든 혹은 서 있든, 앉아 있든 혹은 누워 있든;
나쁜 생각을 떠올리는 이는, / 집에 얽매인 생각을 하는 이는
Yo vitakkaṃ vitakketi, pāpakaṃ gehanissitaṃ.
집에 얽매인 나쁜 사유를 사유하는 자,
그릇된 길에 들어선 것이니, / 홀리는 것들에 취한 것이니
‘‘Kummaggaṃ paṭipanno so, mohaneyyesu mucchito;
“그는 그릇된 길에 들어선 자, 미혹하게 하는 것들에 홀려 있으니;
그런 비구는 해낼 수 없다, /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닿는 일을.
Abhabbo tādiso bhikkhu, phuṭṭhuṃ sambodhimuttamaṃ.
그러한 비구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닿을 수 없다.
그러나 걷거나 서 있거나, / 앉거나 눕거나 하면서
‘‘Yo ca caraṃ vā tiṭṭhaṃ vā, nisinno uda vā sayaṃ;
“그리고 걸어가든 서 있든, 앉아 있든 혹은 누워 있든;
생각을 가라앉히고, / 생각의 그침을 기뻐하는 이는
Vitakkaṃ samayitvāna, vitakkūpasame rato;
사유를 가라앉히고, 사유의 그침을 기뻐하는 자,
그런 비구는 해낼 수 있다, /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닿는 일을.
Bhabbo so tādiso bhikkhu, phuṭṭhuṃ sambodhimuttama’’nti.
그러한 비구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닿을 수 있다.”
이 뜻도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이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Ekādasamaṃ.
열한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