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Indriyabhāvanāsuttaṃ
10. 감각 기능 닦음 경
453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가장갈라의 수벨루바나 숲에 머물고 계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gajaṅgalāyaṃ viharati suveḷuvane.
한때 세존께서 가장갈라의 수웰루와나에 머무셨다.
그때 파라시비야의 제자인 청년 웃따라가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세존께 인사를 드렸다. 정중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불확실]
Atha kho uttaro māṇavo pārāsiviyantevās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빠라사위야의 제자인 웃따라 청년이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다가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uttaraṃ māṇavaṃ pārāsiviyantevāsi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빠라사위야의 제자인 웃따라 청년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웃따라여, 파라시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기능을 닦는 수행을 가르치는가?” “그렇습니다, 고타마 존자시여. 파라시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기능을 닦는 수행을 가르칩니다.” “웃따라여,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치는가?” “고타마 존자시여, 여기서는 눈으로 형상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합니다. 파라시비야 바라문은 이렇게 제자들에게 감각기능을 닦는 수행을 가르칩니다.”
‘‘deseti, uttara,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ṃ indriyabhāvana’’nti?
“웃따라여, 빠라사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 기능 닦음을 가르치는가?”
‘‘Deseti, bho gotama,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ṃ indriyabhāvana’’nti.
“고따마 존자시여, 빠라사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 기능 닦음을 가르칩니다.”
‘‘Yathā kathaṃ pana, uttar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ṃ indriyabhāvana’’nti?
“웃따라여, 그러면 빠라사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 기능 닦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Idha, bho gotama, cakkhunā rūpaṃ na passati, sotena saddaṃ na suṇāti –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눈으로 형색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
evaṃ kho, bho gotam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ṃ indriyabhāvana’’nti.
고따마 존자시여, 빠라사위야 바라문은 제자들에게 감각 기능 닦음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웃따라여, 그렇다면 눈먼 사람이 감각기능을 닦은 사람이 되겠구나. 귀먼 사람도 그렇게 될 것이다. 파라시비야 바라문의 말대로라면 그렇다. 눈먼 사람은 눈으로 형상을 보지 못하고, 귀먼 사람은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Evaṃ sante kho, uttara, andho bhāvitindriyo bhavissati, badhiro bhāvitindriyo bhavissati;
“웃따라여, 그렇다면 눈먼 이가 감각 기능을 닦은 이가 될 것이고, 귀먹은 이가 감각 기능을 닦은 이가 될 것이다;
yathā pārāsiviyassa brāhmaṇassa vacanaṃ.
빠라사위야 바라문의 말대로라면.
Andho hi, uttara, cakkhunā rūpaṃ na passati, badhiro sotena saddaṃ na suṇātī’’ti.
웃따라여, 눈먼 이는 눈으로 형색을 보지 못하고, 귀먹은 이는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청년 웃따라는 말문이 막혀 풀이 죽었다. 어깨를 떨구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 모습을 아시고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Evaṃ vutte, uttaro māṇavo pārāsiviyantevāsī tuṇhībhūto maṅkubhūto pattakkhandho adhomukho pajjhāyanto appaṭibhāno nisīdi.
이렇게 말씀하시자, 빠라사위야의 제자인 웃따라 청년은 말이 없어지고, 당황하고,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떨구고, 풀이 죽어, 대꾸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Atha kho bhagavā uttaraṃ māṇavaṃ pārāsiviyantevāsiṃ tuṇhībhūtaṃ maṅkubhūtaṃ pattakkhandhaṃ adhomukhaṃ pajjhāyantaṃ appaṭibhānaṃ vid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빠라사위야의 제자인 웃따라 청년이 말이 없어지고, 당황하고,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떨구고, 풀이 죽어, 대꾸하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
“아난다여, 파라시비야 바라문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감각기능의 수행은 이와 다르다. 성자의 율에서 말하는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도 그와는 다르다.”
‘‘aññathā kho, ānanda, deseti pārāsiviyo brāhmaṇo sāvakānaṃ indriyabhāvanaṃ, aññathā ca pan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ī’’ti.
“아난다여, 빠라사위야 바라문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감각 기능 닦음은 다르고, 아난다여,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은 다르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복되신 분이시여, 세존께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을 가르쳐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비구들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Etassa, bhagavā, kālo;
“세존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etassa, sugata, kālo yaṃ bhagavā ariyassa vinaye anuttaraṃ indriyabhāvanaṃ deseyya.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지금이 그때입니다 — 세존께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을 설해 주십시오.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이 지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아난다 존자는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Tenahānanda,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그러면 아난다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454
“아난다여,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은 어떤 것인가?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상을 보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Kathañc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i?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 있는가?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아난다여, 여기 비구에게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눈 밝은 사람이 눈을 떴다가 감거나 감았다가 뜨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상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Seyyathāpi, ānanda, cakkhumā puriso ummīletvā vā nimīleyya, nimīletvā vā ummīleyya;
아난다여, 마치 눈 있는 사람이 눈을 떴다가 감거나, 감았다가 뜨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cakkhuviññeyyesu rūp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눈으로 아는 형색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455
또 아난다여, 비구가 귀로 소리를 들으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sotena saddaṃ sut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귀로 소리를 듣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힘센 사람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귀로 알 수 있는 소리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appakasireneva accharaṃ pahareyya;
아난다여, 마치 힘센 사람이 아주 쉽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sotaviññeyyesu sadd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귀로 아는 소리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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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다여, 비구가 코로 냄새를 맡으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코로 냄새를 맡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살짝 오목한 연잎 위에서 물방울이 굴러다닐 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코로 알 수 있는 냄새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Seyyathāpi, ānanda, īsakaṃpoṇe padumapalāse udakaphusitāni pavattanti, na saṇṭhanti;
아난다여, 마치 약간 기울어진 연잎에서 물방울들이 굴러 떨어지고 머물지 않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ghānaviññeyyesu gandh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코로 아는 냄새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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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다여, 비구가 혀로 맛을 보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jivhāya rasaṃ sāyit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혀로 맛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힘센 사람이 혀끝에 침 덩어리를 모았다가 힘들이지 않고 뱉어 내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혀로 알 수 있는 맛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jivhagge kheḷapiṇḍaṃ saṃyūhitvā appakasirena vameyya;
아난다여, 마치 힘센 사람이 혀끝에 침을 모아 힘들이지 않고 뱉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jivhāviññeyyesu ras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혀로 아는 맛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458
또 아난다여, 비구가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몸으로 알 수 있는 감촉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아난다여,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것과 같이;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kāyaviññeyyesu phoṭṭhabb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몸으로 아는 감촉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459
또 아난다여, 비구가 마음으로 법을 알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내게 마음에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거친 것이며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뛰어나다. 곧 평정이다.’ 그에게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들면서도 들지 않는 것도 사라진다. 그리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evaṃ pajānāti –
그는 이렇게 안다 —
‘uppannaṃ kho me id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나에게 이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났다.
Tañca kho saṅkhataṃ oḷārikaṃ paṭiccasamuppannaṃ.
그런데 그것은 형성된 것이고, 거친 것이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난 것이다.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이 고요하고 이것이 빼어나니, 곧 —
upekkhā’ti.
평온이다.’
Tassa taṃ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그에게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upekkhā saṇṭhāti.
평온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힘센 사람이 하루 종일 달구어진 쇠솥에 물방울 두세 방울을 떨어뜨린다고 하자. 물방울이 떨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물방울은 곧 말라 없어지고 만다. 아난다여,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있다고 하자. 일어난 느낌이 그렇게 빠르고 순식간에, 힘들이지 않고 사라지고 평정이 자리 잡는다. 아난다여, 이것을 마음으로 알 수 있는 법들에 대한,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이라고 한다. 아난다여,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은 이와 같다.
Seyyathāpi, ānanda, balavā puriso divasaṃsantatte ayokaṭāhe dve vā tīṇi vā udakaphusitāni nipāteyya.
아난다여, 마치 힘센 사람이 온종일 달구어진 쇠솥에 물방울 두세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Dandho, ānanda, udakaphusitānaṃ nipāto, atha kho naṃ khippameva parikkhayaṃ pariyādānaṃ gaccheyya;
아난다여,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느리지만, 그것은 곧바로 다 없어지고 다함에 이를 것이다;
evameva kho, ānanda, yassa kassaci evaṃsīghaṃ evaṃtuvaṭaṃ evaṃappakasirena uppannaṃ manāpaṃ uppannaṃ amanāpaṃ uppannaṃ manāpāmanāpaṃ nirujjhati, upekkhā saṇṭhāti –
아난다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재빠르게,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소멸하고, 평온이 자리 잡으면 —
ayaṃ vuccat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manoviññeyyesu dhammesu.
아난다여, 이것이 성자의 율에서 마음으로 아는 법들에 대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라 불린다.
Evaṃ kho, ānanda,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hoti.
아난다여, 이와 같이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이 있다.
460
아난다여, 어떻게 해서 배우는 이로서 길을 걷는 사람이 되는가?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상을 보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일어난 그 느낌 때문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혐오한다.
‘‘Kathañcānanda, sekho hoti pāṭipado?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배우는 이, 길을 걷는 이가 되는가?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아난다여, 여기 비구에게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So tena uppannena manāpena uppannena amanāpena uppannena manāpāmanāpena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그는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나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마찬가지다.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그렇다. 거기서도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일어난 그 느낌 때문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며 혐오한다. 아난다여, 배우는 이로서 길을 걷는 사람은 이와 같다.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귀로 소리를 듣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코로 냄새를 맡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혀로 맛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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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tena uppannena manāpena uppannena amanāpena uppannena manāpāmanāpena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그는 그 일어난 마음에 드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일어난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
Evaṃ kho, ānanda, sekho hoti pāṭipado.
아난다여, 이와 같이 배우는 이, 길을 걷는 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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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여, 어떻게 해서 성자가 감각기능을 닦은 사람이 되는가?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상을 보면 느낌이 일어난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Kathañc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성자가 감각 기능을 닦은 이가 되는가?
Idhānanda, bhikkhuno cakkhunā rūpaṃ disvā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아난다여, 여기 비구에게 눈으로 형색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그가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을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낸다. 또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지 않은 것을 싫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다고 여기며 지낸다. 이번에는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과 싫지 않은 것 모두를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낸다.
So sace ākaṅkhati –
그가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다시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지 않은 것과 싫은 것 모두를 싫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다고 여기며 지낸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과 싫지 않은 것 둘 다를 피하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평정하게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평정하게 지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ṃ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ṃ sato sampajāno’ti, upekkhako tattha viharati sato sampajāno.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그 둘 다를 피하고 평온한 자로서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평온한 자로서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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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다여, 비구가 귀로 소리를 들을 때나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느낌이 일어난다.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 마음으로 법을 알 때도 마찬가지다. 그 느낌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들면서도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을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낸다. 또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지 않은 것을 싫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다고 여기며 지낸다.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no sotena saddaṃ sutvā…pe…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uppajjati manāpaṃ, uppajjati amanāpaṃ, uppajjati manāpāmanāpaṃ.
“다시 아난다여, 비구에게 귀로 소리를 듣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코로 냄새를 맡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혀로 맛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마음으로 법을 알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나고, 마음에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일어난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MN 152:455.1 ~ PN:mn152/458.1에서 되살렸습니다.
So sace ākaṅkhati –
그가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e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appaṭikūle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이번에는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과 싫지 않은 것 모두를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지 않다고 여기며 지낸다. 다시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지 않은 것과 싫은 것 모두를 싫다고 여기며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싫다고 여기며 지낸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바란다고 하자. ‘싫은 것과 싫지 않은 것 둘 다를 피하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평정하게 지내리라.’ 그러면 그는 거기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평정하게 지낸다. 아난다여, 성자가 감각기능을 닦은 사람이 되는 것은 이와 같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e ca appaṭikūle ca ap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ap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appaṭikūle ca paṭikūle ca paṭikūlasaññī vihareyya’nti, paṭi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서도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문다.
Sace ākaṅkhati –
만약 바란다면 —
‘paṭikūlañca appaṭikūlañca tadubhayampi 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ṃ sato sampajāno’ti, upekkhako tattha viharati sato sampajāno.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그 둘 다마저 피하고 평온한 자로서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평온한 자로서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머문다.
Evaṃ kho, 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
아난다여, 이와 같이 성자가 감각 기능을 닦은 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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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아난다여, 나는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수행을 가르쳤다. 배우는 이로서 길을 걷는 사람도 가르쳤고, 감각기능을 닦은 성자도 가르쳤다. 아난다여, 제자들을 이롭게 하려는 스승이 연민으로 해 주어야 할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이미 다 해 주었다.
‘‘Iti kho, ānanda, desitā mayā ariyassa vinaye anuttarā indriyabhāvanā, desito sekho pāṭipado, desito ariyo bhāvitindriyo.
“아난다여, 이와 같이 나는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 기능 닦음을 설했고, 배우는 이, 길을 걷는 이를 설했고, 성자, 감각 기능을 닦은 이를 설했다.
Yaṃ kho, ānanda, satthārā karaṇīyaṃ sāvakānaṃ hitesinā anukampakena anukampaṃ upādāya, kataṃ vo taṃ mayā.
아난다여, 이익을 바라고 연민하는 스승이 연민하여 제자들에게 해야 할 일, 그것을 나는 그대들에게 했다.
아난다여, 여기 나무 아래가 있고 여기 빈 집이 있다. 선정을 닦아라. 방일하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
Etāni, ānanda, rukkhamūlāni, etāni suññāgārāni, jhāyathānanda, mā pamādattha,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아난다여, 여기 나무 밑들이 있고, 여기 빈집들이 있다. 아난다여, 선정을 닦아라. 게을리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는 이가 되지 마라.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ti.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우리의 가르침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에 즐거워하였다. 인드리야바와나 경이 끝났다. 열 번째 경.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아난다 존자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Indriyabhāvanā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감각 기능 닦음 경이 끝났다. 열째다.
Saḷāyatanavaggo niṭṭhito pañcamo.
여섯 감각 장소 품이 끝났다. 다섯째다.
Tassuddānaṃ –
그 요약은 이러하다 —
Anāthapiṇḍiko channo, puṇṇo nandakarāhulā;
아나타삔디까와 찬나, 뿐나와 난다까와 라훌라,
Chachakkaṃ saḷāyatanikaṃ, nagaravindeyyasuddhikā;
여섯씩 여섯과 여섯 감각 장소에 관한 것, 나가라윈데야와 청정에 관한 것,[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ndriyabhāvanā cāpi, vaggo ovādapañcamoti.
그리고 감각 기능 닦음도 있으니, 가르침의 품, 다섯째 품이다.
Idaṃ vaggānamuddānaṃ –
이것이 품들의 요약이다 —
Devadahonupado ca, suññato ca vibhaṅgako;
데와다하와 아누빠다, 그리고 공(空)과 분석,
Saḷāyatanoti vaggā, uparipaṇṇāsake ṭhitāti.
여섯 감각 장소라 하는 품들이 우빠리빤나사까에 자리한다.
Uparipaṇṇāsakaṃ samattaṃ.
우빠리빤나사까가 끝났다.
세 개의 오십 묶음으로 장식된 전체Tīhi paṇṇāsakehi paṭimaṇḍito sakalo
Majjhimanikāyo samatto.
맛지마 니까야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