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6.55
소나 경
Soṇasuttaṃ
교차 검사
여섯의 모음 빠알리Chakkanipātapāḷi
6. Mahāvaggo
6. 대품
1. Soṇasuttaṃ
1. 소나 경
5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깃자꾸따 산에 머무셨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셨다.
그 무렵 소나 존자는 라자가하의 시따와나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홀로 물러나 앉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힘써 정진하며 사는 이가 있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붙들림을 놓지 못한다. 번뇌에서도 풀려나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재산이 있다. 그 재산을 누리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차라리 배움을 그만두고 속가로 돌아가면 어떨까. 재산을 누리며 좋은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soṇo rājagahe viharati sītavanasmiṃ.
그때 소나 존자는 라자가하의 시따 숲에 머물고 있었다.
Atha kho āyasmato soṇass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그때 홀로 있으며 한거하던 소나 존자에게 이런 마음의 사유가 일어났다 —
‘‘ye kho keci bhagavato sāvakā āraddhavīriyā viharanti, ahaṃ tesaṃ aññataro.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정진을 다하여 머무는 이들이 누구든,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Atha ca pana me n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ati, saṃvijjanti kho pana me kule bhogā, sakkā bhogā ca bhuñjituṃ puññāni ca kātuṃ.
그런데도 내 마음은 취착하지 않고서 번뇌들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집안에는 재물이 있고, 재물을 누리면서 공덕도 지을 수 있다.
Yaṃnūnāhaṃ sikkhaṃ paccakkhāya hīnāyāvattitvā bhoge ca bhuñjeyyaṃ puññāni ca kareyya’’nti.
나는 차라리 배움을 버리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 재물도 누리고 공덕도 지으면 어떨까.」
세존께서는 소나 존자의 마음속 생각을 마음으로 아셨다.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그 짧은 사이였다. 세존께서는 깃자꾸따 산에서 모습을 감추셨다. 그러고는 시따와나의 소나 존자 앞에 나타나셨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소나 존자도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소나 존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to soṇ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
그때 세존께서 마음으로 소나 존자의 마음의 사유를 아시고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miñjeyya, evamevaṃ kho –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꼭 그와 같이 —
gijjhakūṭe pabbate antarahito sītavane āyasmato soṇassa sammukhe pāturahosi.
독수리봉 산에서 사라져 시따 숲의 소나 존자 앞에 나타나셨다.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세존께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Āyasmāpi kho soṇ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소나 존자도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soṇa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소나 존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소나야, 홀로 물러나 앉아 있던 너에게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느냐?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힘써 정진하며 사는 이가 있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붙들림을 놓지 못한다. 번뇌에서도 풀려나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재산이 있다. 그 재산을 누리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차라리 배움을 그만두고 속가로 돌아가면 어떨까. 재산을 누리며 좋은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Nanu te, soṇa,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소나여, 홀로 있으며 한거하던 너에게 이런 마음의 사유가 일어나지 않았느냐 —
‘ye kho keci bhagavato sāvakā āraddhavīriyā viharanti, ahaṃ tesaṃ aññataro.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정진을 다하여 머무는 이들이 누구든,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다.
Atha ca pana me n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ati, saṃvijjanti kho pana me kule bhogā, sakkā bhogā ca bhuñjituṃ puññāni ca kātuṃ.
그런데도 내 마음은 취착하지 않고서 번뇌들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집안에는 재물이 있고, 재물을 누리면서 공덕도 지을 수 있다.
Yaṃnūnāhaṃ sikkhaṃ paccakkhāya hīnāyāvattitvā bhoge ca bhuñjeyyaṃ puññāni ca kareyya’’’nti?
나는 차라리 배움을 버리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 재물도 누리고 공덕도 지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전에 집에 있을 때 비파 줄을 잘 다루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si, soṇa, kusalo tvaṃ pubbe agāriyabhūto vīṇāya tantissare’’ti?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위나의 현 소리에 능숙했느냐?」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파 줄이 너무 팽팽하게 조여져 있을 때는 어떠하더냐? 그 비파에서 좋은 소리가 나고 탈 만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si, soṇa, yadā te vīṇāya tantiyo accāyatā honti, api nu te vīṇā tasmiṃ samaye saravatī vā hoti kammaññā vā’’ti?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위나의 현들이 너무 팽팽할 때, 그때 네 위나가 소리가 좋거나 연주하기에 알맞더냐?」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파 줄이 너무 느슨하게 늘어져 있을 때는 어떠하더냐? 그 비파에서 좋은 소리가 나고 탈 만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si, soṇa, yadā te vīṇāya tantiyo atisithilā honti, api nu te vīṇā tasmiṃ samaye saravatī vā hoti kammaññā vā’’ti?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위나의 현들이 너무 느슨할 때, 그때 네 위나가 소리가 좋거나 연주하기에 알맞더냐?」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소나야, 줄이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을 때는 어떠하냐? 알맞은 자리에 놓인 그 비파는 좋은 소리가 나고 탈 만하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Yadā pana te, soṇa, vīṇāya tantiyo na accāyatā honti nātisithilā same guṇe patiṭṭhitā, api nu te vīṇā tasmiṃ samaye saravatī vā hoti kammaññā vā’’ti?
「그러면 소나여, 네 위나의 현들이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아 고른 상태에 자리 잡았을 때, 그때 네 위나가 소리가 좋고 연주하기에 알맞더냐?」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
"소나야, 그와 꼭 같다. 정진이 지나치면 들뜸으로 간다. 정진이 너무 느슨하면 게으름으로 간다. 그러니 소나야, 너는 정진을 고르게 다잡아라. 여러 기능이 균형을 이루도록 꿰뚫어 보고 거기서 그 표상을 붙들어라."
‘‘Evamevaṃ kho, soṇa, accāraddhavīriyaṃ uddhaccāya saṃvattati, atisithilavīriyaṃ kosajjāya saṃvattati.
「소나여, 꼭 그와 같이 지나친 정진은 들뜸으로 이끌고, 너무 느슨한 정진은 나태로 이끈다.
Tasmātiha tvaṃ, soṇa, vīriyasamathaṃ adhiṭṭhahaṃ, indriyānañca samataṃ paṭivijjha, tattha ca nimittaṃ gaṇhāhī’’ti.
그러므로 소나여, 여기서 너는 정진의 균형을 확립하고, 기능들의 고름을 꿰뚫으며, 거기서 표상을 붙들어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소나 존자에게 이렇게 일러 주셨다. 그러고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그 짧은 사이였다. 세존께서는 시따와나에서 모습을 감추시고 깃자꾸따 산에 나타나셨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soṇo bhagavato paccassosi.
「예, 세존이시여」 하고 소나 존자가 세존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soṇaṃ iminā ovādena ovaditvā –
그때 세존께서 소나 존자를 이 가르침으로 가르치시고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ṃ kho –
마치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이, 꼭 그와 같이 —
sītavane antarahito gijjhakūṭe pabbate pāturahosi.
시따 숲에서 사라져 독수리봉 산에 나타나셨다.
그 뒤 소나 존자는 정진을 고르게 다잡았다. 여러 기능이 균형을 이루도록 꿰뚫어 보고 거기서 그 표상을 붙들었다. 그리고 홀로 떨어져 게으름 없이 애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지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목표에 이르렀다. 그것은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목적이었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이다. 그는 그것을 바로 이 생에서 스스로 알아 이루고 그 안에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할 일은 마쳤다. 이제 이런 상태로 다시 오는 일은 없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알았다. 이렇게 하여 소나 존자도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Atha kho āyasmā soṇo aparena samayena vīriyasamathaṃ adhiṭṭhāsi, indriyānañca samataṃ paṭivijjhi, tattha ca nimittaṃ aggahesi.
그때 소나 존자는 그 뒤에 정진의 균형을 확립하고, 기능들의 고름을 꿰뚫었으며, 거기서 표상을 붙들었다.
Atha kho āyasmā soṇ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 –
그때 소나 존자는 홀로 떨어져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물면서, 오래지 않아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ā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 목적인, 위없는 —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청정한 삶의 완성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들어 머물렀다.
주 [불확실: 회피목록 「성취하여」 행의 확정역 전문(「제4선에 들어 머문다.」, 정형구29)은 이 좌표에 넣을 수 없다 — 저본 55.36에는 catutthaṃ jhānaṃ이 없고 brahmacariyapariyosānaṃ … upasampajja vihāsi(청정한 삶의 완성)뿐이다. 저본이 이기므로 기각형 「성취하여」만 확정역의 upasampajja 대응어 「들어」로 옮겼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그는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Aññataro ca panāyasmā soṇo arahataṃ ahosi.
그리하여 소나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아라한이 된 소나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존께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 가서 내가 얻은 앎을 세존 앞에서 말씀드리자.' 그래서 소나 존자는 세존께 나아갔다. 가서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소나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ato soṇassa arahattappattassa etadahosi –
그때 아라한과에 이른 소나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yaṃnūnāhaṃ yena bhagavā tenupasaṅkameyyaṃ;
「나는 차라리 세존께 나아가면 어떨까;
upasaṅkamitvā bhagavato santike aññaṃ byākareyya’’nti.
나아가서 세존 앞에서 최상의 앎을 밝히면 어떨까.」
Atha kho āyasmā so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소나 존자는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o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소나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아라한인 비구가 있습니다. 번뇌를 다하고 삶을 다 살았으며 할 일을 마친 비구입니다. 짐을 내려놓고 자기 목표에 다다랐습니다. 존재에 매인 결박을 남김없이 끊고 바르게 알아 풀려났습니다. 그런 비구는 여섯 가지에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벗어남에 기울고, 홀로 지냄에 기울고, 해치지 않음에 기웁니다. 갈애의 다함과 붙들림의 다함과 미혹 없음에도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Yo so, bhante,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vimutto, so cha ṭhānāni adhimutto hoti –
「세존이시여,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으며 청정한 삶을 완성했고 할 일을 마쳤으며 짐을 내려놓았고 자신의 이익에 도달했으며 존재의 족쇄를 온전히 부수었고 바른 앎으로 해탈한 그 비구는 여섯 가지 도리에 기울어 있습니다 —
nekkhammādhimutto hoti, pavivekādhimutto hoti, abyāpajjādhimutto hoti, taṇhākkhayādhimutto hoti, upādānakkhayādhimutto hoti, asammohādhimutto hoti.
출리에 기울어 있고, 멀리 여읨에 기울어 있고, 악의 없음에 기울어 있고, 갈애의 소멸에 기울어 있고, 취착의 소멸에 기울어 있고, 미혹 없음에 기울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존자는 그저 믿음 하나에 기대어 벗어남에 마음이 기울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한 비구는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에 더 보탤 것도 자기에게서 보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이 다하여 탐욕에서 벗어났기에 벗어남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냄이 다하여 성냄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합니다.
‘‘Siyā kho pana, bhante, idhekaccassa āyasmato evamassa –
「그런데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
‘kevalaṃsaddhāmattakaṃ nūna ayamāyasmā nissāya nekkhammādhimutto’ti.
‘이 존자는 오직 믿음만을 의지하여 출리에 기울어 있는 것이겠지.’
Na kho panetaṃ, bhante, evaṃ daṭṭhabbaṃ.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Khīṇāsavo, bhante, bhikkhu vusitavā katakaraṇīyo karaṇīyaṃ attano asamanupassanto katassa vā paṭicayaṃ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nekkhamm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nekkhamm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nekkhammādhimutto hoti.
세존이시여, 번뇌가 다하고 청정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친 비구는, 자신에게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을 더 쌓을 것도 보지 않으므로,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출리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출리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출리에 기울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존자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서 홀로 지냄에 마음이 기울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한 비구는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에 더 보탤 것도 자기에게서 보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이 다하여 탐욕에서 벗어났기에 홀로 지냄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냄이 다하여 성냄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합니다.
‘‘Siyā kho pana, bhante, idhekaccassa āyasmato evamassa –
「그런데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
‘lābhasakkārasilokaṃ nūna ayamāyasmā nikāmayamāno pavivekādhimutto’ti.
‘이 존자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면서 멀리 여읨에 기울어 있는 것이겠지.’
Na kho panetaṃ, bhante, evaṃ daṭṭhabbaṃ.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Khīṇāsavo, bhante, bhikkhu vusitavā katakaraṇīyo karaṇīyaṃ attano asamanupassanto katassa vā paṭicayaṃ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pavivek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pavivek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pavivekādhimutto hoti.
세존이시여, 번뇌가 다하고 청정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친 비구는, 자신에게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을 더 쌓을 것도 보지 않으므로,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멀리 여읨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멀리 여읨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멀리 여읨에 기울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존자는 계율과 의례에 매달리는 것을 알맹이로 여겨 그리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해치지 않음에 마음이 기울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번뇌를 다한 비구는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에 더 보탤 것도 자기에게서 보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이 다하여 탐욕에서 벗어났기에 해치지 않음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냄이 다하여 성냄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에 그러합니다.
‘‘Siyā kho pana, bhante, idhekaccassa āyasmato evamassa –
「그런데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
‘sīlabbataparāmāsaṃ nūna ayamāyasmā sārato paccāgacchanto abyāpajjādhimutto’ti.
‘이 존자는 계와 의례에 대한 집착을 핵심이라 여겨 되돌아가면서 악의 없음에 기울어 있는 것이겠지.’
Na kho panetaṃ, bhante, evaṃ daṭṭhabbaṃ.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것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Khīṇāsavo, bhante, bhikkhu vusitavā katakaraṇīyo karaṇīyaṃ attano asamanupassanto katassa vā paṭicayaṃ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abyāpajj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abyāpajj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abyāpajjādhimutto hoti.
세존이시여, 번뇌가 다하고 청정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친 비구는, 자신에게 해야 할 일도 이미 한 일을 더 쌓을 것도 보지 않으므로,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악의 없음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악의 없음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악의 없음에 기울어 있습니다.
그는 탐욕이 다하여 탐욕에서 벗어났기에 갈애의 다함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하여 거기서 벗어났기에도 그러합니다. 붙들림의 다함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같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하여 거기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미혹 없음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하여 거기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taṇhākkhay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taṇhākkhay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taṇhākkhayādhimutto hoti.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갈애의 소멸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갈애의 소멸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갈애의 소멸에 기울어 있습니다.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upādānakkhay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upādānakkhay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upādānakkhayādhimutto hoti.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취착의 소멸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취착의 소멸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취착의 소멸에 기울어 있습니다.
‘‘Khayā rāgassa vītarāgattā asammohādhimutto hoti, khayā dosassa vītadosattā asammohādhimutto hoti, khayā mohassa vītamohattā asammohādhimutto hoti.
「탐욕이 다하여 탐욕을 여의었기에 미혹 없음에 기울어 있고, 성냄이 다하여 성냄을 여의었기에 미혹 없음에 기울어 있으며, 어리석음이 다하여 어리석음을 여의었기에 미혹 없음에 기울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마음이 바르게 풀려난 비구가 있습니다. 눈으로 아는 형색들이 아무리 세차게 눈앞에 밀려와도 그의 마음을 삼키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 굳게 서서 흔들림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그는 그것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귀로 아는 소리도, 코로 아는 냄새도, 혀로 아는 맛도 그러합니다. 몸으로 아는 감촉과 마음으로 아는 법들도 같습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세차게 마음 앞에 밀려와도 그의 마음을 삼키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 굳게 서서 흔들림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그는 그것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Evaṃ sammā vimuttacittassa, bhante, bhikkhuno bhusā cepi cakkhuviññeyyā rūpā cakkhussa āpāthaṃ āgacchanti, nevassa cittaṃ pariyādiyanti.
「세존이시여, 이렇게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눈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형색들이 눈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Amissīkatamevassa cittaṃ hoti ṭhitaṃ āneñjappattaṃ vayañcassānupassati.
그의 마음은 뒤섞이지 않은 채로 있어 확고하고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으며, 그는 그것의 사라짐을 거듭 살핍니다.
Bhusā cepi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manoviññeyyā dhammā manassa āpāthaṃ āgacchanti, nevassa cittaṃ pariyādiyanti.
귀로 알아야 할 강렬한 소리들이 귀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코로 알아야 할 강렬한 냄새들이 코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며, 혀로 알아야 할 강렬한 맛들이 혀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몸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감촉들이 몸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며, 마음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법들이 마음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AN 6.55:55.62에서 되살렸습니다.
Amissīkatamevassa cittaṃ hoti ṭhitaṃ āneñjappattaṃ vayañcassānupassati.
그의 마음은 뒤섞이지 않은 채로 있어 확고하고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으며, 그는 그것의 사라짐을 거듭 살핍니다.
세존이시여, 한 덩어리로 된 바위산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 갈라진 틈도 없고 속이 비지도 않은 산입니다. 동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산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서쪽에서 몰아쳐도, 북쪽에서 몰아쳐도 뒤흔들리거나 떨지 않습니다. 남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산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Seyyathāpi, bhante, selo pabbato acchiddo asusiro ekagghano.
세존이시여, 마치 바위산이 틈도 없고 구멍도 없이 한 덩어리인 것과 같습니다.
Atha puratthimāya cepi disāya āgaccheyya bhusā vātavuṭṭhi neva naṃ saṅkampeyya na sampakampeyya na sampavedheyya, atha pacchimāya cepi disāya āgaccheyya bhusā vātavuṭṭhi…pe… atha uttarāya cepi disāya āgaccheyya bhusā vātavuṭṭhi… atha dakkhiṇāya cepi disāya āgaccheyya bhusā vātavuṭṭhi neva naṃ saṅkampeyya na sampakampeyya na sampavedheyya;
그런데 동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와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고 뒤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하며, 서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와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고 뒤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하며, 북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와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고 뒤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하며, 남쪽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와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고 뒤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합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AN 6.55:55.67에서 되살렸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꼭 같습니다. 마음이 바르게 풀려난 비구도 그러합니다. 눈으로 아는 형색들이 아무리 세차게 눈앞에 밀려와도 그의 마음을 삼키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 굳게 서서 흔들림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그는 그것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귀로 아는 소리도, 코로 아는 냄새도, 혀로 아는 맛도 그러합니다. 몸으로 아는 감촉과 마음으로 아는 법들도 같습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세차게 마음 앞에 밀려와도 그의 마음을 삼키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 굳게 서서 흔들림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그는 그것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evamevaṃ kho, bhante, evaṃ sammāvimuttacittassa bhikkhuno bhusā cepi cakkhuviññeyyā rūpā cakkhussa āpāthaṃ āgacchanti, nevassa cittaṃ pariyādiyanti.
그와 꼭 같이, 세존이시여, 이렇게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는 눈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형색들이 눈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Amissīkatamevassa cittaṃ hoti ṭhitaṃ āneñjappattaṃ vayañcassānupassati.
그의 마음은 뒤섞이지 않은 채로 있어 확고하고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으며, 그는 그것의 사라짐을 거듭 살핍니다.
Bhusā cepi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manoviññeyyā dhammā manassa āpāthaṃ āgacchanti, nevassa cittaṃ pariyādiyanti.
귀로 알아야 할 강렬한 소리들이 귀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코로 알아야 할 강렬한 냄새들이 코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며, 혀로 알아야 할 강렬한 맛들이 혀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몸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감촉들이 몸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며, 마음으로 알아야 할 강렬한 법들이 마음의 영역에 들어오더라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AN 6.55:55.68에서 되살렸습니다.
Amissīkatamevassa cittaṃ hoti ṭhitaṃ āneñjappattaṃ vayañcassānupassatī’’ti.
그의 마음은 뒤섞이지 않은 채로 있어 확고하고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으며, 그는 그것의 사라짐을 거듭 살핍니다.」
출리에 마음 기울고 / 홀로 있음에 기울며
‘‘Nekkhammaṃ adhimuttassa, pavivekañca cetaso;
「출리에 기울고, 마음의 멀리 여읨에 기울며,
성냄 없음에 기울고 / 집착 다함에 기울며
Abyāpajjādhimuttassa, upādānakkhayassa ca.
악의 없음에 기울고, 취착의 소멸에 기운 이,
갈애 다함에 기울고 / 마음의 흐림 없음에
‘‘Taṇhākkhayādhimuttassa, asammohañca cetaso;
「갈애의 소멸에 기울고, 마음의 미혹 없음에 기운 이는,
감각 일어남을 보아 / 그 마음 바로 풀리네
Disvā āyatanuppādaṃ, sammā cittaṃ vimuccati.
감각영역의 일어남을 보고서,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다.
그렇게 바로 풀려나 / 마음 고요한 비구는
‘‘Tassa sammā vimuttassa, santacittassa bhikkhuno;
「그렇게 바르게 해탈하여, 마음이 고요한 그 비구에게는,
한 일에 더할 것이 없고 / 해야 할 일 남지 않네
Katassa paṭicayo natthi, karaṇīyaṃ na vijjati.
이미 한 일을 더 쌓을 것이 없고,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다.
통바위 한 덩이처럼 / 바람에 흔들림 없듯
‘‘Selo yathā ekagghano, vātena na samīrati;
「한 덩어리 바위산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그처럼 형색과 맛과 / 소리 냄새 감촉까지
Evaṃ rūpā rasā saddā, gandhā phassā ca kevalā.
그와 같이 형색도 맛도 소리도, 냄새도 감촉도 모두 그러하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 그런 이를 못 흔드네
‘‘Iṭṭhā dhammā aniṭṭhā ca, nappavedhenti tādino;
「마음에 드는 법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법들도, 그런 이를 흔들지 못한다;
그 마음 굳고 풀려나 / 스러져 감을 지켜보네
Ṭhitaṃ cittaṃ vippamuttaṃ, vayañcassānupassatī’’ti.
마음은 확고하고 온전히 벗어났으며, 그는 그것의 사라짐을 거듭 살핀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