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56.11
법의 바퀴를 굴리신 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교차 검사
1.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1. 법의 바퀴를 굴리신 경
1081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 머무셨다. 이시빠따나의 사슴 동산이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불확실]
Ekaṃ samayaṃ bhagavā bārāṇasiyaṃ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한때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pañcavaggiye bhikkhū āmantesi –
거기서 세존께서 다섯 비구를 부르셨다[불확실]
불확실 —
"비구들이여, 집을 떠난 사람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극단이 둘 있다. 그 둘은 무엇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에 빠져 그 즐거움을 탐닉하는 것이다. 저열하고 속되며 보통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성스럽지 않고 아무 이익도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이 또한 괴롭기만 할 뿐 성스럽지 않고 아무 이익도 없다.
‘‘dveme, bhikkhave, antā pabbajitena na sevitabbā.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극단은 출가자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Katame dve?
무엇이 둘인가?
Yo cāyaṃ kāmesu kāmasukhallik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iko anariyo anatthasaṃhito, yo cāyaṃ attakilamathānuyogo dukkho anariyo anatthasaṃhito.
감각적 욕망들에 대해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니, 이는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부의 것이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를 괴롭히는 데 몰두하는 것이니, 이는 괴롭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중도를 깨달았다. 그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뛰어난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Ete kho,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여래가 온전히 깨달은 중간의 도닦음은,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깨달은 그 중도란 무엇인가?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며, 고요함과 뛰어난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그 길 말이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곧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 바른 말과 바른 행위다. 이어서 바른 생계와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과 바른 삼매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다. 이 길이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뛰어난 앎과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끈다.
‘‘Katamā ca sā, bhikkhave,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래가 온전히 깨달았고,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그 중간의 도닦음이란 무엇인가?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부분의 길이니, 곧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Ayaṃ kho sā, bhikkhave,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 중간의 도닦음이니, 여래가 온전히 깨달았고, 눈을 만들고 앎을 만들며,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이러하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며 병듦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일,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일도 괴로움이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 또한 괴로움이다. 요컨대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 이것이 괴로움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며,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
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이러하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갈애가 그것이다. 즐김과 탐욕을 동반하며 여기저기서 기쁨을 찾는 갈애다. 곧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 –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이 갈애이니, 곧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이러하다.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식어 사라지는 것, 그것을 버리고 놓아 버리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 더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바로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함이니, 버림이고, 놓아버림이고, 해탈이고,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이러하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곧 바른 견해에서 시작해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부분의 길이니, 곧 —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9에서 되살렸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 나의 눈이 열렸다.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도 나에게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온전히 알아야 한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앞서처럼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온전히 알았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나에게 생겨났다.
‘‘‘Idaṃ dukkhaṃ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eyya’nti me, bhikkhave, pubbe…pe…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히 알아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22에서 되살렸습니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ā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히 알아졌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 나의 눈이 열렸다.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도 나에게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앞서처럼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버렸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나에게 생겨났다.
‘‘‘Idaṃ dukkhasamudayaṃ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pahātabba’nti me, bhikkhave, pubbe…pe…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25에서 되살렸습니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pahīn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졌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 나의 눈이 열렸다.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도 나에게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직접 실현해야 한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앞서처럼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직접 실현했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나에게 생겨났다.
‘‘‘Idaṃ dukkhanirodhaṃ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sacchikātabba’nti me, bhikkhave, pubbe…pe…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28에서 되살렸습니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sacchika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되었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 나의 눈이 열렸다.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도 나에게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앞서처럼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닦았다.' 전에 들어 본 적 없는 이 법에도 눈과 앎과 지혜와 밝음과 빛이 나에게 생겨났다.
‘‘‘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bhāvetabba’nti me, bhikkhave, pubbe…pe…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31에서 되살렸습니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bhāvi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그런데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졌다’라고,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내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통찰지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빛이 생겨났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는 세 번의 굴림과 열두 가지 모습이 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나에게 아주 맑아지기 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그러했다.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아우른 뭇 생명 가운데서도 그러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 앎과 봄이 나에게 아주 맑아졌다. 그제야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아우른 뭇 생명 가운데서 그렇게 선언했다.
‘‘Yāvakīvañca me, bhikkhave, imesu catūsu ariyasaccesu evaṃ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 yathābhūtaṃ ñāṇadassanaṃ na suvisuddhaṃ ahosi,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비구들이여, 내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이렇게 세 번 굴리고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아는 앎과 봄이 아주 청정해지지 않았을 때까지는,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Yato ca kho me, bhikkhave, imesu catūsu ariyasaccesu evaṃ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 yathābhūtaṃ ñāṇadassanaṃ suvisuddhaṃ ahosi, ath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이렇게 세 번 굴리고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아는 앎과 봄이 아주 청정해졌을 때, 그때 비로소,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알고 보는 것이 생겨났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다.'"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그리고 내게 앎과 봄이 생겨났다: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ti.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섯 비구는 마음이 기뻐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이 가르침이 설해지는 동안 꼰단냐 존자에게 티끌 없고 때 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열렸다. "무엇이든 생겨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모두 소멸하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ttamanā pañcavaggiyā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다섯 비구는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 –
그리고 이 설명이 설해질 때 꼰단냐 존자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났다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무엇이든 일어나는 성질을 지닌 것은 다 사라지는 성질을 지닌 것이다.’
세존께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시자 땅에 사는 신들이 소리를 높였다.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 동산에서 위없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이것은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되돌리지 못한다."
Pavattite ca pana bhagavatā dhammacakke bhummā devā saddamanussāvesuṃ –
그리고 세존께서 법의 바퀴를 굴리시자 땅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etaṃ bhagavatā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땅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이 소리를 높였다.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 동산에서 위없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이것은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되돌리지 못한다."
Bhummānaṃ devānaṃ saddaṃ sutvā cātumahārājikā devā saddamanussāvesuṃ –
땅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etaṃ bhagavatā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사대왕천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야마천과 도솔천의 신들이, 화락천과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소리를 높였다. 범천의 무리에 속한 신들도 뒤따라 소리를 높였다.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 동산에서 위없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이것은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되돌리지 못한다."
Cātumahārājikānaṃ devānaṃ saddaṃ sutvā tāvatiṃsā devā…pe… yāmā devā…pe… tusitā devā…pe… nimmānaratī devā…pe… paranimmitavasavattī devā…pe… brahmakāyikā devā saddamanussāvesuṃ –
사대왕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삼십삼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야마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야마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도솔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도솔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화락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화락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타화자재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범신천의 신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56.11:1081.44 ~ PN:sn56.11/1081.45에서 되살렸습니다.
‘‘etaṃ bhagavatā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으니, 이는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신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세상의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그 소리는 범천의 세계에까지 올라갔다. 그 순간, 그 찰나, 그 잠깐 사이의 일이었다. 이 만 개의 세계가 흔들리고 떨리고 요동쳤다. 신들의 위력마저 넘어서는 한량없이 눈부신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
Itiha tena khaṇena (tena layena) tena muhuttena yāva brahmalokā saddo abbhuggacchi.
이와 같이 그 순간에, (그 찰나에,) 그 잠깐 사이에 범천의 세계에까지 그 소리가 퍼져 올라갔다.
Ayañca dasasahassilokadhātu saṅkampi sampakampi sampavedhi, appamāṇo ca uḷāro obhāso loke pāturahosi atikkamma devānaṃ devānubhāvanti.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크게 흔들리고 진동했으며, 신들의 위력을 넘어서는 한량없고 광대한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꼰단냐가 참으로 알았구나, 꼰단냐가 참으로 알았구나!"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에게는 안냐시 꼰단냐라는 이름이 붙었다.
Atha kho bhagavā imaṃ udānaṃ udānesi –
그때 세존께서 이런 감흥어를 읊으셨다 —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ti!
“참으로 알았구나, 여보게, 꼰단냐가. 참으로 알았구나, 여보게, 꼰단냐가!”
Iti hidaṃ āyasmato koṇḍaññassa ‘aññāsikoṇḍañño’ tveva nāmaṃ ahosīti.
이리하여 꼰단냐 존자에게 ‘안냐시꼰단냐’라는 바로 그 이름이 생겼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