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12.61
배우지 못한 자 경
Assutavāsuttaṃ
교차 검사
1. Assutavāsuttaṃ
1. 배우지 못한 자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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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몸은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도 놓을 수 있다.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 말이다. 싫증이 나서 등을 돌리고 탐욕이 식으면, 거기서 풀려날 수 있다. 왜 그런가? 이 몸은 자라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생겨나는 것도 보이고 버려지는 것도 보인다. 그러니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도 이 몸에는 등을 돌릴 수 있다. 탐욕이 식을 수 있고 거기서 풀려날 수도 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pe… ‘‘assutavā, bhikkhave, puthujjano imasmiṃ cātumahābhūtikasmiṃ kāyasmiṃ nibbindeyyapi virajjeyyapi vimucceyyapi.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 “비구들이여.”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에 대해 싫어하여 떠날 수도 있고, 탐욕이 사라질 수도 있고, 해탈할 수도 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Dissati, bhikkhave, imassa cātumahābhūtikassa kāyassa ācayopi apacayopi ādānampi nikkhepanampi.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에는 쌓임도 줄어듦도, 취함도 내려놓음도 보인다.
Tasmā tatrāssutavā puthujjano nibbindeyyapi virajjeyyapi vimucceyyapi’’.
그러므로 거기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싫어하여 떠날 수도 있고, 탐욕이 사라질 수도 있고, 해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라 부르고 뜻이라 부르고 의식이라 부르는 이것 말이다.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여기에는 싫증을 내어 등을 돌리지 못한다. 탐욕도 식지 않고 거기서 풀려나지도 못한다. 왜 그런가? 그는 오랜 세월 이것을 끌어안고 내 것으로 삼아 움켜쥐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 이렇게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것에는 등을 돌리지 못한다. 탐욕이 식지도 않고 거기서 풀려나지도 못한다.[불확실]
‘‘Yañca kho etaṃ, bhikkhave, vuccati cittaṃ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ṃ itipi, 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ṃ nibbindituṃ nālaṃ virajjituṃ nālaṃ vimuccituṃ.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음이라고도 하고 마노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는 이것에 대해서는, 거기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싫어하여 떠나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Dīgharattañhetaṃ, bhikkhave, assutavato puthujjanassa ajjhositaṃ mamāyitaṃ parāmaṭṭhaṃ –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오랜 세월 이것에 집착하고 이것을 내 것으로 삼고 이것을 거머쥐어 왔기 때문이다 —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
Tasmā 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ṃ nibbindituṃ nālaṃ virajjituṃ nālaṃ vimuccituṃ.
그러므로 거기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싫어하여 떠나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차라리 이 몸을 자아로 여기는 편이 낫다.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 말이다.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도 마음을 자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이 몸은 한 해를 버티고 두 해를 버틴다. 세 해와 네 해, 다섯 해를 버티기도 한다. 열 해와 스무 해를 버티는 몸이 있고, 서른 해와 마흔 해, 쉰 해를 버티는 몸도 있다. 백 해를 버티고 그보다 더 오래 가는 것까지 눈에 보인다.
‘‘Varaṃ,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imaṃ cātumahābhūtikaṃ kāyaṃ attato upagaccheyya, na tveva cittaṃ.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가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을 자아로 여기는 것이 차라리 낫지, 마음을 그리 여기는 것은 낫지 않다.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Dissatāyaṃ, bhikkhave, cātumahābhūtiko kāyo ekampi vassaṃ tiṭṭhamāno dvepi vassāni tiṭṭhamāno tīṇipi vassāni tiṭṭhamāno cattāripi vassāni tiṭṭhamāno pañcapi vassāni tiṭṭhamāno dasapi vassāni tiṭṭhamāno vīsatipi vassāni tiṭṭhamāno tiṃ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cattārī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paññāsampi vassāni tiṭṭhamāno vassasatampi tiṭṭhamāno, bhiyyopi tiṭṭhamāno.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은 일 년을 머물기도 하고, 이 년을 머물기도 하고, 삼 년을 머물기도 하고, 사 년을 머물기도 하고, 오 년을 머물기도 하고, 십 년을 머물기도 하고, 이십 년을 머물기도 하고, 삼십 년을 머물기도 하고, 사십 년을 머물기도 하고, 오십 년을 머물기도 하고, 백 년을 머물기도 하고, 그보다 더 오래 머물기도 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음은 다르다. 마음이라 부르고 뜻이라 부르고 의식이라 부르는 이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일어나고 다른 것이 사라진다. 숲속 덤불을 돌아다니는 원숭이와 같다. 원숭이는 가지 하나를 붙잡았다가 놓고 다른 가지를 붙잡는다. 그것도 놓고 또 다른 가지를 붙잡는다. 비구들이여, 마음도 꼭 그와 같다. 마음이라 부르고 뜻이라 부르고 의식이라 부르는 이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일어나고 다른 것이 사라진다.
‘‘Yañca kho etaṃ, bhikkhave, vuccati cittaṃ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ṃ itipi, taṃ rattiyā ca divasassa ca aññadeva uppajjati aññaṃ nirujjhati.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음이라고도 하고 마노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일어나고 다른 것이 소멸한다.
Seyyathāpi, bhikkhave, makkaṭo araññe pavane caramāno sākhaṃ gaṇhati, taṃ muñcitvā aññaṃ gaṇhati, taṃ muñcitvā aññaṃ gaṇhati;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원숭이가 깊은 숲속을 돌아다니며 가지를 붙잡았다가 그것을 놓고 다른 가지를 붙잡고, 그것을 놓고 또 다른 가지를 붙잡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bhikkhave, yamidaṃ vuccati cittaṃ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ṃ itipi, taṃ rattiyā ca divasassa ca aññadeva uppajjati aññaṃ nirujjhati.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라고도 하고 마노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일어나고 다른 것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남 하나만을 붙든다. 오직 그것을 두고 찬찬히 뿌리부터 마음을 기울인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곧 무명을 조건으로 지음들이 있고, 지음들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이렇게 이어져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가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식어 없어지면 지음들이 없어진다. 지음들이 없어지면 의식이 없어지고, 이렇게 이어져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가 없어진다.'[불확실]
‘‘Tatra,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paṭiccasamuppādaṃyeva sādhukaṃ yoniso manasi karoti –
“비구들이여, 거기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바로 그 연기를 잘, 이치에 맞게 마음에 새긴다 —
‘iti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uppādā idaṃ uppajjat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
yadid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곧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 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 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생긴다.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가 일어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면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고,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면 여섯 감각 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 장소가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소멸한다.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무더기 전체가 소멸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싫증을 내어 등을 돌린다. 느낌과 인식에도, 지음들과 의식에도 마찬가지로 등을 돌린다. 등을 돌리면 탐욕이 식는다. 탐욕이 식으면 풀려나고, 풀려나면 풀려났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살아 마쳤고 할 일도 다 했다. 이제 이런 상태로 다시 오는 일은 없다.' 그는 이렇게 안다.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아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nibbindaṃ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그 사라짐으로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살아 마쳤으며, 할 일은 다 해 마쳤으니,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꿰뚫어 안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