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12.41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 경
Pañcaverabhayasuttaṃ
교차 검사
1. Pañcaverabhayasuttaṃ
1.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 경
41
세존께서 사왓티에 머무실 때였다. 그때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을 찾아뵈었다. 그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Sāvatthiyaṃ viharati.
사왓티에 머무셨다.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aṃ kho anāthapiṇḍikaṃ gahapatiṃ bhagavā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가라앉는다. 그는 흐름에 드는 네 가지 요소를 갖춘다. 성스러운 이치도 지혜로 잘 보아 꿰뚫는다. 그런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자기를 이렇게 밝힐 수 있다. 나에게 지옥은 끝났다. 짐승으로 태어나는 일도, 아귀의 세계도 끝났다. 나쁜 곳과 험한 곳으로 굴러떨어지는 일도 끝났다. 나는 흐름에 든 사람이어서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Yato kho, gahapati, ariyasāvakassa pañca bhayāni verāni vūpasantāni honti, catūhi ca sotāpattiyaṅgehi samannāgato hoti, ariyo cassa ñāyo paññāya sudiṭṭho hoti suppaṭividdho, s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가라앉고, 네 가지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추며, 그에게 성스러운 이치가 통찰지로 잘 보이고 잘 꿰뚫렸을 때, 그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밝힐 수 있다 —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no’’’ti.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태를 다했고, 아귀의 세계를 다했으며,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를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니,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가라앉은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란 무엇인가.
‘‘Katamāni pañca bhayāni verāni vūpasantāni honti?
“가라앉는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란 무엇인가?
장자여, 산 것을 죽이는 사람을 보라. 그는 그 탓에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는다. 마음으로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산 것을 죽이는 일에서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Yaṃ, gahapati, pāṇātipātī pāṇātipātapaccayā diṭṭhadhamm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samparāy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ayati, pāṇātipātā paṭiviratassa evaṃ taṃ bhayaṃ veraṃ vūpasantaṃ hoti.
장자여, 산 것을 죽이는 이가 산 것을 죽이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고,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으며, 마음의 괴로움과 근심도 겪는 그것 — 산 것을 죽이는 일에서 삼가는 이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와 같이 가라앉는다.
장자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는 그 탓에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는다. 마음으로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에서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삿된 음행을 하는 사람도 그렇다. 그는 그 탓에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는다. 마음으로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삿된 음행에서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다. 그는 그 탓에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는다. 마음으로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거짓말에서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술이며 독한 술처럼 취하게 하는 것에 빠져 흐트러지는 사람도 그렇다. 그는 그 탓에 지금 여기서도,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는다. 마음으로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는다. 취하게 하는 것에 빠져 흐트러지는 일에서 물러선 사람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Yaṃ, gahapati, adinnādāyī adinnādānapaccayā diṭṭhadhamm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samparāy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ayati, adinnādānā paṭiviratassa evaṃ taṃ bhayaṃ veraṃ vūpasantaṃ hoti.
장자여,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이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고,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으며, 마음의 괴로움과 근심도 겪는 그것 —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일에서 삼가는 이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와 같이 가라앉는다.
‘‘Yaṃ, gahapati, kāmesumicchācārī kāmesumicchācārapaccayā diṭṭhadhamm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samparāy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ayati,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assa evaṃ taṃ bhayaṃ veraṃ vūpasantaṃ hoti.
장자여, 감각적 쾌락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이가 감각적 쾌락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고,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으며, 마음의 괴로움과 근심도 겪는 그것 — 감각적 쾌락에서 그릇되게 행하는 일에서 삼가는 이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와 같이 가라앉는다.
‘‘Yaṃ, gahapati, musāvādī musāvādapaccayā diṭṭhadhamm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samparāy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ayati, musāvādā paṭiviratassa evaṃ taṃ bhayaṃ veraṃ vūpasantaṃ hoti.
장자여, 거짓말하는 이가 거짓말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고,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으며, 마음의 괴로움과 근심도 겪는 그것 — 거짓말하는 일에서 삼가는 이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와 같이 가라앉는다.
‘‘Yaṃ, gahapati,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yī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apaccayā diṭṭhadhamm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samparāyikampi bhayaṃ veraṃ pasavati, cetasikampi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ayati,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ṭiviratassa evaṃ taṃ bhayaṃ veraṃ vūpasantaṃ hoti.
장자여, 곡주·과일주 따위 취하게 하는 것에 빠져 방일에 이르는 이가 곡주·과일주 따위 취하게 하는 것에 빠져 방일에 이르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 여기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고, 다음 생에서도 두려움과 원한을 낳으며, 마음의 괴로움과 근심도 겪는 그것 — 곡주·과일주 따위 취하게 하는 것에 빠져 방일에 이르는 일에서 삼가는 이에게는 그 두려움과 원한이 이와 같이 가라앉는다.
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이렇게 가라앉는다. 그러면 흐름에 드는 네 가지 요소를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Imāni pañca bhayāni verāni vūpasantāni honti.
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가라앉는다.
‘‘Katamehi catūhi sotāpattiyaṅgehi samannāgato hoti?
“어떤 네 가지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추는가?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세존께서는 참으로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다. 밝은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며, 바르게 가신 분이다. 세상을 아시고, 사람을 이끄는 데 위없는 분이다.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으신 분, 세존이시다.
Idha, gahapati, ariyasāvak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고, 앎과 실천을 갖추신 분이시고,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고, 세상을 아시는 분이시고, 길들여야 할 사람을 이끄시는 위없는 분이시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고, 깨달으신 분이시고, 세존이시다.’
그는 법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이니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다.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 할 만하다. 곧바로 이끌어 주고, 지혜로운 이라면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다.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법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은, 지금 여기서 볼 수 있고, 시간을 두지 않으며, 와서 보라 할 만하고, 향상으로 이끌며, 지혜로운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승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걸어가고 곧게 걸어간다. 이치대로 걸어가고 법답게 걸어간다. 네 쌍의 사람, 여덟 부류의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이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손님으로 맞아 마땅하다. 보시받아 마땅하고 두 손 모아 절할 만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복밭이다.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승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춘다 —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ti.
‘세존의 제자 승가는 잘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곧게 실천하며, 세존의 제자 승가는 이치에 맞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승가는 올바르게 실천한다. 곧 네 쌍의 사람이요 여덟 부류의 개인이니, 이 세존의 제자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한,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그는 성스러운 이들이 아끼는 계를 갖춘다. 그 계는 깨지지 않고 뚫리지 않는다. 얼룩지지 않고 점도 없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한다. 무엇에도 잡히지 않으며, 삼매로 이끈다. 이 네 가지로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춘다.[불확실]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 hoti akhaṇḍehi acchiddehi asabalehi akammāsehi bhujissehi viññuppasatthehi aparāmaṭṭhehi samādhisaṃvattanikehi.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다 — 흠 없고, 뚫린 데 없고, 얼룩 없고, 점 없으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가 기리며, 집착에 물들지 않아 삼매로 이끄는 계를.[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Imehi catūhi sotāpattiyaṅgehi samannāgato hoti.
이 네 가지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춘다.
그가 지혜로 잘 보아 꿰뚫는 성스러운 이치란 무엇인가.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조건에 따라 함께 일어남을 마음에 새긴다. 차근차근 그 근원에서부터 새긴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다. 이것이 일어나면 이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멎으면 이것이 멎는다.
‘‘Katamo cassa ariyo ñāyo paññāya sudiṭṭho hoti suppaṭividdho?
“그에게 통찰지로 잘 보이고 잘 꿰뚫린 성스러운 이치란 무엇인가?
Idha, gahapati, ariyasāvako paṭiccasamuppādaññeva sādhukaṃ yoniso manasi karoti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름 아닌 연기를 잘, 근원에 맞게 마음 기울인다 —
‘iti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이렇게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imass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곧 무명을 조건으로 지어감이 있다. 지어감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그렇게 이어져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가 일어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멎으면 지어감이 멎는다. 지어감이 멎으면 의식이 멎는다. 그렇게 이어져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가 멎는다.
Yadid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곧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들이 있고,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생겨난다.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일어남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12.39:39.4 ~ PN:sn12.39/39.6에서 되살렸습니다.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형성이 소멸하므로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므로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므로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므로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므로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므로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므로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비탄·괴로움·근심·고뇌가 소멸한다. 이렇게 하여 이 괴로움 덩어리 전체의 소멸이 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12.38:38.15 ~ PN:sn12.38/38.16에서 되살렸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혜로 잘 보아 꿰뚫는 성스러운 이치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가라앉는다. 그는 이 네 가지로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춘다. 이 성스러운 이치도 지혜로 잘 보아 꿰뚫는다. 그런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자기를 이렇게 밝힐 수 있다. 나에게 지옥은 끝났다. 짐승으로 태어나는 일도, 아귀의 세계도 끝났다. 나쁜 곳과 험한 곳으로 굴러떨어지는 일도 끝났다. 나는 흐름에 든 사람이어서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Ayamassa ariyo ñāyo paññāya sudiṭṭho hoti suppaṭividdho.
이것이 그에게 통찰지로 잘 보이고 잘 꿰뚫린 성스러운 이치이다.
‘‘Yato kho, gahapati, ariyasāvakassa imāni pañca bhayāni verāni vūpasantāni honti, imehi catūhi sotāpattiyaṅgehi samannāgato hoti, ayañcassa ariyo ñāyo paññāya sudiṭṭho hoti suppaṭividdho, s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ṃ byākareyya –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 다섯 가지 두려움과 원한이 가라앉고, 이 네 가지 흐름에 드는 요소를 갖추며, 그에게 이 성스러운 이치가 통찰지로 잘 보이고 잘 꿰뚫렸을 때, 그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밝힐 수 있다 —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no’’’ti.
‘나는 지옥을 다했고, 축생의 태를 다했고, 아귀의 세계를 다했으며, 괴로운 곳·나쁜 곳·파멸처를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이니,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