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8.11
웨란자 경
Verañjasuttaṃ
교차 검사
여덟의 모음Aṭṭhakanipātapāḷi
2. Mahāvaggo
2. 큰 품
1. Verañjasuttaṃ
1. 웨란자 경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베란자에 머무셨다. 날레루 님바나무 아래였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verañjāyaṃ viharati naḷerupucimandamūle.
한때 세존께서 웨란자의 날레루 님바 나무 아래 머무셨다.
그때 베란자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세존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정겨워 마음에 남을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그러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verañj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웨란자 바라문이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나아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정다운 인사말을 서로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verañjo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웨란자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님,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늙은 바라문에게 인사하지 않는다더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지도,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고요. 살 만큼 살아 노년에 이른 어른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정말 그러합니다. 존자님께서는 그런 바라문에게 인사하지 않으십니다.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으시고 자리도 권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온당한 일이 아닙니다.
‘‘Sutaṃ metaṃ, bho gotama –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
‘na samaṇo gotamo brāhmaṇe jiṇṇe vuḍḍhe mahallake addhagate vayoanuppatte abhivādeti vā paccuṭṭheti vā āsanena vā nimantetī’ti.
‘사문 고따마는 늙고 나이 들고 연로하고 세월이 흘러 만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절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고.
Tayidaṃ, bho gotama, tatheva.
고따마 존자시여, 그것은 정말 그렇습니다.
Na hi bhavaṃ gotamo brāhmaṇe jiṇṇe vuḍḍhe mahallake addhagate vayoanuppatte abhivādeti vā paccuṭṭheti vā āsanena vā nimanteti.
참으로 고따마 존자께서는 늙고 나이 들고 연로하고 세월이 흘러 만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절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습니다.
Tayidaṃ, bho gotama, na sampannamevā’’ti.
고따마 존자시여, 그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 세상에는 신도 있고 마라도 있고 범천도 있다. 사문과 바라문, 신과 사람의 무리도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인사할 만한 이를 나는 보지 못한다. 일어나 맞이하거나 자리를 권할 만한 이도 보지 못한다. 여래가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의 머리는 그 자리에서 쪼개지고 만다.
‘‘Nāhaṃ taṃ, brāhmaṇa,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amahaṃ abhivādeyyaṃ vā paccuṭṭheyyaṃ vā āsanena vā nimanteyyaṃ.
“바라문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무리 가운데, 내가 절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자리를 권할 만한 이를 보지 못한다.
Yañhi, brāhmaṇa, tathāgato abhivādeyya vā paccuṭṭheyya vā āsanena vā nimanteyya, muddhāpi tassa vipateyyā’’ti.
바라문이여, 여래가 누군가에게 절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자리를 권한다면, 그의 머리가 부서질 것이다.”
고따마 존자님은 맛이라곤 모르는 분이시군요!
‘‘Arasarūp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맛이 없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맛을 모른다는 말이다. 형색의 맛, 소리의 맛, 냄새의 맛이 여래에게서는 끊어졌다. 혀에 닿는 맛도 감촉의 맛도 마찬가지다. 뿌리째 뽑히고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었다. 앞으로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불확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rasarūp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맛이 없는 자다’라고.
Ye te, brāhmaṇa, rūparasā saddarasā gandharasā rasarasā phoṭṭhabbaras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바라문이여, 형색의 맛, 소리의 맛, 냄새의 맛, 맛의 맛, 감촉의 맛 — 이것들은 여래에게서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rasarūp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맛이 없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누릴 줄 모르는 분이시군요!
‘‘Nibbhog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누리는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누릴 줄 모른다는 말이다. 형색을 누리는 일, 소리를 누리는 일, 냄새를 누리는 일이 여래에게서는 끊어졌다. 맛을 누리는 일도 감촉을 누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뿌리째 뽑히고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었다. 앞으로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불확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nibbhog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누리는 것이 없는 자다’라고.
Ye te, brāhmaṇa, rūpabhogā saddabhogā gandhabhogā rasabhogā phoṭṭhabbabhog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바라문이여, 형색을 누림, 소리를 누림, 냄새를 누림, 맛을 누림, 감촉을 누림 — 이것들은 여래에게서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nibbhog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누리는 것이 없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하지 말라고만 하는 분이시군요!
‘‘Akiriyavād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행함 없음을 말하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하지 말라고만 한다는 말이다. 나는 몸으로 짓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한다. 말로 짓고 마음으로 짓는 나쁜 짓도 하지 말라고 한다. 여러 가지 악하고 좋지 않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한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kiriyavād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행함 없음을 말하는 자다’라고.
Ahañhi, brāhmaṇa, akiriyaṃ vadāmi kāyaduccaritassa vacīduccaritassa manoduccaritassa;
바라문이여, 나는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에 대해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kiriyaṃ vadāmi.
여러 가지 해로운 법들에 대해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kiriyavād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행함 없음을 말하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끊어 없앤다고 말하는 분이시군요!
‘‘Ucchedavād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끊어 없앰을 말하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끊어 없앤다고 말한다는 말이다.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어 없앤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 악하고 좋지 않은 것들도 끊어 없앤다고 말한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ucchedavād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끊어 없앰을 말하는 자다’라고.
Ahañhi, brāhmaṇa, ucchedaṃ vadāmi rāgassa dosassa mohassa;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끊어 없앰을 말한다;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ucchedaṃ vadāmi.
여러 가지 해로운 법들의 끊어 없앰을 말한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ucchedavād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끊어 없앰을 말하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역겨워하는 분이시군요!
‘‘Jegucchī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역겨워하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역겨워한다는 말이다.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짓을 역겨워한다. 여러 가지 악하고 좋지 않은 것들을 몸에 들이는 일도 역겨워한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jegucchī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역겨워하는 자다’라고.
Ahañhi, brāhmaṇa, jigucchāmi kāyaduccaritena vacīduccaritena manoduccaritena;
바라문이여, 나는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를 역겨워한다;
jigucchāmi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samāpattiyā.
여러 가지 해로운 법들을 갖추는 것을 역겨워한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jegucchī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역겨워하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뿌리 뽑자고만 하는 분이시군요!
‘‘Venayik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없애 버리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뿌리 뽑자고만 한다는 말이다.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뿌리 뽑으려고 법을 가르친다. 여러 가지 악하고 좋지 않은 것들을 뿌리 뽑으려고 법을 가르친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venayik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없애 버리는 자다’라고.
Ahañhi, brāhmaṇa, vinayāya dhammaṃ desemi rāgassa dosassa mohassa;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해 법을 설한다;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vinayāya dhammaṃ desemi.
여러 가지 해로운 법들을 없애기 위해 법을 설한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venayik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없애 버리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스스로를 태우는 분이시군요!
‘‘Tapassī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고행하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스스로를 태우는 자라는 말이다.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짓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태워 없애야 할 악하고 좋지 않은 것이라고. 그런 것들이 끊어진 사람을 나는 스스로를 태우는 자라 부른다. 뿌리째 뽑혀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여래에게서는 그런 것들이 이미 끊어졌다. 앞으로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passī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고행하는 자다’라고.
Tapanīyāhaṃ, brāhmaṇa, pāpake akusale dhamme vadāmi kāyaduccaritaṃ vacīduccaritaṃ manoduccaritaṃ.
바라문이여, 나는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를 태워야 할 해로운 법이라고 말한다.
Yassa kho, brāhmaṇa, tapanīy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mahaṃ ‘tapassī’ti vadāmi.
바라문이여, 누구든 태워야 할 해로운 법이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면, 나는 그를 ‘고행하는 자’라고 말한다.
Tathāgatassa kho, brāhmaṇa, tapanīy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바라문이여, 여래에게는 태워야 할 해로운 법이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tapassī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사문 고따마는 고행하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태에 들 일이 없는 분이시군요!
‘‘Apagabbho bhavaṃ gotamo’’ti!
“고따마 존자는 태에 들지 않는 분이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문 고따마는 태에 들지 않는 자라는 말이다. 앞으로 태에 들어 다시 태어나는 일이 끊어진 사람이 있다. 뿌리째 뽑혀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되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나는 태에 들지 않는 자라 부른다. 여래에게서는 그 일이 이미 끊어졌다. 앞으로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한다면 그 근거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뜻한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런 방식이 있으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pagabbho samaṇo gotamo’ti.
‘사문 고따마는 태에 들지 않는 자다’라고.
Yassa kho, brāhmaṇa, āyatiṃ gabbhaseyyā punabbhavābhinibbatti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mahaṃ ‘apagabbho’ti vadāmi.
바라문이여, 누구든 앞으로 모태에 눕는 일과 다시 태어나 생겨나는 일이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면, 나는 그를 ‘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Tathāgatassa kho, brāhmaṇa, āyatiṃ gabbhaseyyā punabbhavābhinibbatti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바라문이여, 여래에게는 앞으로 모태에 눕는 일과 다시 태어나 생겨나는 일이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밑동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없어져 앞으로 다시 생겨나지 않는 법이 되었다.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방식이니, 그 방식으로 나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apagabbh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i.
‘사문 고따마는 태에 들지 않는 자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대가 뜻하고서 말한 바가 아니다.
바라문이여, 암탉이 알을 낳았다고 하자. 여덟 개일 수도 있고 열 개나 열두 개일 수도 있다. 암탉은 그 알들을 제대로 품고 데우고 길렀다. 그 병아리들 가운데 한 마리가 맨 먼저 껍데기를 깬다. 발톱 끝이나 부리로 깨고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그 병아리를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맏이라 하겠는가, 막내라 하겠는가?
‘‘Seyyathāpi, brāhmaṇa, kukkuṭiyā aṇḍāni aṭṭha vā dasa vā dvādasa vā.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암탉에게 알이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 있다고 하자.
Tānāssu kukkuṭiyā sammā adhisayitāni sammā pariseditāni sammā paribhāvitāni.
그 알들을 암탉이 제대로 품고, 제대로 덥히고, 제대로 감쌌다고 하자.
Yo nu kho tesaṃ kukkuṭacchāpakānaṃ paṭhamataraṃ pādanakhasikhāya vā mukhatuṇḍakena vā aṇḍakosaṃ padāletvā sotthinā abhinibbhijjeyya, kinti svāssa vacanīyo –
그 병아리들 가운데 어느 놈이 가장 먼저 발톱 끝이나 부리로 알껍질을 깨뜨리고 무사히 나왔다면, 그 놈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는가 —
‘jeṭṭho vā kaniṭṭho vā’’’ti?
‘맏이인가, 막내인가?’”
고따마 존자님, 맏이라 해야겠지요. 그 병아리가 그들 가운데 맏이니까요.
‘‘Jeṭṭho tissa, bho gotama, vacanīyo.
“고따마 존자시여, 맏이라고 해야 합니다.
So hi nesaṃ, bho gotama, jeṭṭho hot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가 그들 가운데 맏이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여, 꼭 그와 같다. 이 사람들은 무명에 빠져 알 속에 갇힌 듯 둘러싸여 있다. 그 가운데서 나 홀로 무명의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그리고 세상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러니 나야말로 이 세상의 맏이요 으뜸이다.
‘‘Evamevaṃ kho ahaṃ, brāhmaṇa, avijjāgatāya pajāya aṇḍabhūtāya pariyonaddhāya avijjaṇḍakosaṃ padāletvā ekova loke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
“바로 그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무명에 빠져 알처럼 되어 껍질에 싸인 무리 가운데서 무명의 알껍질을 깨뜨리고 홀로 세상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
Ahañhi, brāhmaṇa, jeṭṭho seṭṭho lokassa.
바라문이여, 나야말로 세상의 맏이이고 으뜸이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 정진은 물러섬 없이 타올랐다. 마음챙김은 흐트러짐 없이 또렷했다. 몸은 들뜸 없이 편안했고, 마음은 하나로 모여 흔들리지 않았다.
Āraddhaṃ kho pana me, brāhmaṇa, vīriyaṃ ahos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바라문이여, 그리고 나의 정진은 부지런히 일으켜져 물러섬이 없었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음이 없었으며, 몸은 편안하여 들뜸이 없었고, 마음은 삼매에 들어 한곳에 모였다.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좋지 않은 것들을 떠났다. 그리하여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거기에는 생각과 살핌이 있고, 떠남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이어 생각과 살핌이 가라앉아 안으로 맑아졌다. 마음이 한곳으로 모여 두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거기에는 생각과 살핌이 없고, 삼매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So kho ahaṃ, brāhmaṇ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1선에 들어 머문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며,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 고찰도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기쁨마저 걷히자 나는 평온에 머물렀다.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성자들은 이 자리를 두고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즐겁게 머문다고 말한다. 그 세 번째 선정에 들어 나는 머물렀다. 다시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렸다. 기쁨과 근심은 그전에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맑아진 네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ām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m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희열이 사라졌기에 평온에 머물며, 마음챙기고 또렷이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니, 성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바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불만이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이렇게 내 마음은 고요히 모이고 깨끗하고 맑아졌다. 티가 없고 더러움이 걷혔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좋았다. 굳건하여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그러자 지난 삶이 여러 가지로 떠올랐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그런 나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곧 —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을 기억해 냈다. 열 생과 스무 생, 서른 생과 마흔 생과 쉰 생도 기억해 냈다. 백 생과 천 생과 십만 생도 마찬가지였다. 세계가 줄어들던 여러 겁도 떠올랐고 불어나던 여러 겁도 떠올랐다. 줄어들고 다시 불어나던 여러 겁도 떠올랐다.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겁도, 여러 팽창겁도, 여러 수축·팽창겁도 —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가문이었다.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것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다가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저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가문이었다.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것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다가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처럼 나는 지난 삶을 그 모습과 내력까지 여러 가지로 기억해 냈다.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 이런 가문, 이런 용모였고, 이런 것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 이런 가문, 이런 용모였고, 이런 것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그런 나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고.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이와 같이 모습을 갖추고 자취를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날 밤 초저녁에 내가 얻은 첫 번째 앎이다. 무명이 깨지고 밝음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게으르지 않고 애써 힘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껍질 깨기였다.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듯이.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에 얻은 첫 번째 명지이다;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방일하지 않고 애써 노력하며 스스로 채찍질하여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 하였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paṭhamā abhinibbhidā ahosi kukkuṭacchāpakasseva aṇḍakosamhā.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깨고 나옴이었으니, 병아리가 알껍질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내 마음은 고요히 모이고 깨끗하고 맑아졌다. 티가 없고 더러움이 걷혔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좋았다. 굳건하여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사람의 눈을 넘어선 맑은 하늘눈으로 그 일을 보았다. 못난 이와 잘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가 보였다. 좋은 곳으로 가는 이와 나쁜 곳으로 가는 이도 보였다.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간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저열하고 뛰어나며 잘생기고 못생기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도 나쁜 짓을 했다. 마음으로도 나쁜 짓을 했다. 성자들을 헐뜯었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다. 그릇된 견해대로 업을 지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에 태어났다. 나쁜 곳이자 떨어지는 곳인 지옥이었다.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말의 나쁜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고.
그러나 저 중생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도 좋은 일을 했다. 마음으로도 좋은 일을 했다. 성자들을 헐뜯지 않았고 바른 견해를 지녔다. 바른 견해대로 업을 지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인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 이처럼 나는 맑은 하늘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은 사람의 눈을 넘어선 것이었다. 못난 이와 잘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를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는 이와 나쁜 곳으로 가는 이도 보았다.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을 따라간다는 것을 알았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또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말의 좋은 행위를 갖추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갖추었으며,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라 업을 지었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고.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저열하고 뛰어나며 잘생기고 못생기며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날 밤 한밤중에 내가 얻은 두 번째 앎이다. 무명이 깨지고 밝음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게으르지 않고 애써 힘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껍질 깨기였다.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듯이.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경에 얻은 두 번째 명지이다;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방일하지 않고 애써 노력하며 스스로 채찍질하여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 하였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dutiyā abhinibbhidā ahosi kukkuṭacchāpakasseva aṇḍakosamhā.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깨고 나옴이었으니, 병아리가 알껍질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내 마음은 고요히 모이고 깨끗하고 맑아졌다. 티가 없고 더러움이 걷혔으며 부드럽고 다루기 좋았다. 굳건하여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번뇌가 다한 것을 아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마음이 이렇게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밝고, 흠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고, 안정되어 흔들림 없음에 이르렀을 때, 번뇌를 다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라고 알았다.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이끄는 길도 있는 그대로 알았다. 번뇌를 두고도 그러했다. 이것이 번뇌라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번뇌의 사라짐이라고 알았고, 그 사라짐으로 이끄는 길도 알았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내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풀려났다. 존재의 번뇌에서도 무명의 번뇌에서도 풀려났다. 풀려나자 풀려났다는 앎이 생겼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다 살았고 할 일은 다 마쳤다. 이제 이렇게 다시 올 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알았다.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도 해탈했고, 존재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고, 무명의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났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할 일을 마쳤고, 이제 다시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알았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날 밤 새벽녘에 내가 얻은 세 번째 앎이다. 무명이 깨지고 밝음이 생겨났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생겨났다. 게으르지 않고 애써 힘쓰며 스스로를 다잡고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이.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세 번째 껍질 깨기였다.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듯이.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경에 얻은 세 번째 명지이다;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무명이 부수어지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어둠이 부수어지고 빛이 일어났으니, 방일하지 않고 애써 노력하며 스스로 채찍질하여 머무는 이에게 그러하듯 하였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tatiyā abhinibbhidā ahosi kukkuṭacchāpakasseva aṇḍakosamhā’’ti.
바라문이여, 이것이 나의 세 번째 깨고 나옴이었으니, 병아리가 알껍질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베란자 바라문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님이야말로 맏이십니다. 고따마 존자님이야말로 으뜸이십니다.
Evaṃ vutte verañjo brāhmaṇo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웨란자 바라문이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
‘‘jeṭṭho bhavaṃ gotamo, seṭṭho bhavaṃ gotamo.
“고따마 존자는 맏이이시고, 고따마 존자는 으뜸이십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존자님. 참으로 훌륭합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하셨습니다. 덮인 것을 열어 보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하셨습니다.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들에게 형색을 보라 하시듯 하셨습니다. 꼭 그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불확실]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엎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주듯—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은 형색을 보리라’ 하듯;[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저를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sāh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저는 고따마 존자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Paṭhamaṃ.
첫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