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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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basuttaṃ
교차 검사
1. Pubbasuttaṃ
1. 이전 경
823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아직 깨닫기 전의 일이다. 바르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던 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통의 바탕을 닦는 데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인가?'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Pubbeva me, bhikkhave,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비구들이여, 내가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불확실]
불확실 —
‘ko nu kho hetu, ko paccayo iddhipādabhāvanāyā’ti?
‘성취수단을 닦음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인가?’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여기 한 비구가 신통의 바탕을 닦는다.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오는 집중이 있고, 애쓰는 노력이 함께한다. 그는 이렇게 마음먹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늘어뜨리지 않겠다. 지나치게 팽팽하게 죄지도 않겠다. 안으로 움츠러들게 두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게도 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앞과 뒤를 함께 알아차리며 지낸다. 앞이 그러하듯 뒤도 그러하고, 뒤가 그러하듯 앞도 그러하다. 위와 아래도 다르지 않다. 아래가 그러하듯 위도 그러하고, 위가 그러하듯 아래도 그러하다. 밤낮 또한 그러하다. 낮이 그러하듯 밤도 그러하고, 밤이 그러하듯 낮도 그러하다. 이렇게 활짝 열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환히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idha bhikkhu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여기 비구는 열의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
iti me chando na ca atilīno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o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o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o bhavissati.
이렇게 나의 열의는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고, 안으로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그리고 뒤와 앞을 인식하며 머문다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앞처럼 뒤에도, 뒤처럼 앞에도;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에도;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이렇게 열린 마음,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다음은 정진이다. 비구가 신통의 바탕을 닦는데, 정진에서 오는 집중이 있고 애쓰는 노력이 함께한다. 그는 이렇게 마음먹는다. 내 정진을 지나치게 늘어뜨리지 않겠다. 지나치게 팽팽하게 죄지도 않겠다. 안으로 움츠러들게 두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게도 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앞과 뒤를 함께 알아차리며 지낸다. 앞이 그러하듯 뒤도 그러하고, 뒤가 그러하듯 앞도 그러하다. 위와 아래도 다르지 않다. 아래가 그러하듯 위도 그러하고, 위가 그러하듯 아래도 그러하다. 밤낮 또한 그러하다. 낮이 그러하듯 밤도 그러하고, 밤이 그러하듯 낮도 그러하다. 이렇게 활짝 열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환히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Vīriy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정진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
iti me vīriyaṃ na ca atilīnaṃ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aṃ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aṃ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aṃ bhavissati.
이렇게 나의 정진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고, 안으로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그리고 뒤와 앞을 인식하며 머문다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앞처럼 뒤에도, 뒤처럼 앞에도;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에도;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이렇게 열린 마음,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다음은 마음이다. 비구가 신통의 바탕을 닦는데, 마음에서 오는 집중이 있고 애쓰는 노력이 함께한다. 그는 이렇게 마음먹는다. 내 마음을 지나치게 늘어뜨리지 않겠다. 지나치게 팽팽하게 죄지도 않겠다. 안으로 움츠러들게 두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게도 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앞과 뒤를 함께 알아차리며 지낸다. 앞이 그러하듯 뒤도 그러하고, 뒤가 그러하듯 앞도 그러하다. 위와 아래도 다르지 않다. 아래가 그러하듯 위도 그러하고, 위가 그러하듯 아래도 그러하다. 밤낮 또한 그러하다. 낮이 그러하듯 밤도 그러하고, 밤이 그러하듯 낮도 그러하다. 이렇게 활짝 열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환히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Citt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마음을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
iti me cittaṃ na ca atilīnaṃ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aṃ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aṃ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aṃ bhavissati.
이렇게 나의 마음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고, 안으로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그리고 뒤와 앞을 인식하며 머문다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앞처럼 뒤에도, 뒤처럼 앞에도;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에도;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이렇게 열린 마음,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다음은 살펴 아는 힘이다. 비구가 신통의 바탕을 닦는데, 살펴 아는 힘에서 오는 집중이 있고 애쓰는 노력이 함께한다. 그는 이렇게 마음먹는다. 내 살펴 아는 힘을 지나치게 늘어뜨리지 않겠다. 지나치게 팽팽하게 죄지도 않겠다. 안으로 움츠러들게 두지 않고 밖으로 흩어지게도 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앞과 뒤를 함께 알아차리며 지낸다. 앞이 그러하듯 뒤도 그러하고, 뒤가 그러하듯 앞도 그러하다. 위와 아래도 다르지 않다. 아래가 그러하듯 위도 그러하고, 위가 그러하듯 아래도 그러하다. 밤낮 또한 그러하다. 낮이 그러하듯 밤도 그러하고, 밤이 그러하듯 낮도 그러하다. 이렇게 활짝 열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환히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Vīmaṃsā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검토를 중심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
iti me vīmaṃsā na ca atilīnā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ā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ā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ā bhavissati.
이렇게 나의 검토는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고, 안으로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그리고 뒤와 앞을 인식하며 머문다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앞처럼 뒤에도, 뒤처럼 앞에도;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에도;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이렇게 열린 마음,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여러 가지 신통을 부린다.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다시 하나가 된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도 걸림이 없다. 허공을 가는 것과 같다. 땅에서도 솟았다 잠겼다 하니, 물에서 그러는 것과 같다. 물 위를 빠지지 않고 걸어가니, 땅 위를 가는 것과 같다. 허공에서도 앉은 채로 날아가니, 날개 달린 새와 같다. 이토록 크고 위력 있는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까지 몸으로 뜻대로 다닌다.[불확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여러 가지 신통을 경험한다[불확실]
불확실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āvibhāvaṃ, tirobhāvaṃ;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담을 지나고 성벽을 지나고 산을 지나 걸림 없이 가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땅에서도 솟았다 잠겼다 하기를 마치 물에서처럼 한다;
udakepi abhijjamāne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aṃ;
갈라지지 않는 물 위에서도 가기를 마치 땅에서처럼 한다;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허공에서도 가부좌한 채 나아가기를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ati parimajjati;
이처럼 큰 신통과 이처럼 큰 위력을 지닌 저 달과 해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는다;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범천의 세계에까지 몸으로 뜻대로 힘을 미친다.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하늘 귀를 얻는다. 사람의 귀를 넘어선 맑은 귀다. 그 귀로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두 가지를 다 듣는다. 먼 데서 나는 소리든 가까운 데서 나는 소리든 다 듣는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청정하고 사람을 넘어선 하늘의 귀의 요소로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
dibbe ca mānuse ca, dūre santike cāti.
하늘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를, 먼 곳의 소리와 가까운 곳의 소리를.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남의 마음을 안다. 다른 존재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헤아려 아는 것이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있다고 알고,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성냄도 어리석음도 그와 같다. 있으면 있다고 알고, 없으면 없다고 안다. 움츠러든 마음은 움츠러들었다고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졌다고 안다. 크게 자란 마음과 아직 그러지 못한 마음도 각각 그대로 안다. 위에 더 나은 것이 있는 마음은 있다고 알고,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잘 집중된 마음은 집중되었다고 알고, 그렇지 않은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안다. 풀려난 마음은 풀려났다고 알고, 아직 풀려나지 못한 마음은 그러하다고 안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감싸 안아 안다.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탐욕을 떠난 마음을 ‘탐욕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이라고 안다;
saṃkhittaṃ vā cittaṃ ‘saṃ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고 안다;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위없는 마음을 ‘위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안다;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안다;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지난 삶들을 여러 가지로 떠올린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을 떠올린다. 열 생과 스무 생, 서른 생과 마흔 생과 쉰 생이 떠오른다. 백 생, 천 생, 십만 생까지도 그러하다. 세상이 허물어지던 여러 겁과 이루어지던 여러 겁도 마찬가지다. 허물어졌다가 다시 이루어지던 여러 겁도 함께 떠올린다. '저기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집안이었다.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것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집안이었다.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것을 먹었다.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이렇게 저마다의 모습과 내력을 곁들여 지난 삶들을 여러 가지로 떠올린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이를테면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ṃ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ṃ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e –
한 생도, 두 생도, 세 생도, 네 생도, 다섯 생도, 열 생도, 스무 생도, 서른 생도, 마흔 생도, 쉰 생도, 백 생도, 천 생도, 십만 생도, 여러 수축하는 겁도, 여러 팽창하는 겁도, 여러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도 —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가문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tatrāp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가문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이런 수명의 끝을 맞았다. 그런 내가 거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이렇게 모습과 내력을 갖추어 여러 가지 전생의 삶을 기억해 낸다.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하늘 눈을 얻는다. 사람의 눈을 넘어선 맑은 눈이다. 그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못난 이와 빼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가 보인다.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도 보인다. 그러면서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대로 간다는 것을 안다. '이 중생들은 몸으로도 말로도 마음으로도 나쁘게 행했다. 성자들을 헐뜯고 그릇된 견해를 지녔으며, 그 견해를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나쁜 곳, 떨어지는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저 중생들은 몸으로도 말로도 마음으로도 바르게 행했다. 성자들을 헐뜯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녔으며, 그 견해를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 이렇게 사람의 눈을 넘어선 맑은 하늘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못난 이와 빼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를 본다. 그러면서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대로 간다는 것을 안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청정하고 사람을 넘어선 하늘의 눈으로 죽어 가고 태어나는 중생들을 보고, 못난 이와 빼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에 따라 행하였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upapannā.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ṃ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그런데 이보시오, 이 중생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말로 좋은 일을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에 따라 행하였다;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ā’ti.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이렇게 청정하고 사람을 넘어선 하늘의 눈으로 죽어 가고 태어나는 중생들을 보고, 못난 이와 빼어난 이, 잘생긴 이와 못생긴 이, 좋은 곳에 간 이와 나쁜 곳에 간 이, 자기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안다.
비구여, 네 가지 신통의 바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 익히면 번뇌가 다한다. 번뇌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안다. 그것을 직접 겪어 그 안에 머문다."
‘‘Evaṃ bhāvitesu kho, bhikkhu, catūsu iddhipādesu evaṃ bahulīkatesu,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ī’’ti.
“비구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익히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실현하여 이르러 머문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