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54.11
잇차낭갈라 경
Icchānaṅgalasuttaṃ
교차 검사
1. Icchānaṅgalasuttaṃ
1. 잇차낭갈라 경
987
한때 세존께서 잇차낭갈라의 잇차낭갈라 숲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icchānaṅgale viharati icchānaṅgalavanasaṇḍe.
한때 세존께서 잇차낭갈라의 잇차낭갈라 숲속 덤불에 머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석 달 동안 홀로 지내려 한다. 탁발 음식을 날라 주는 한 사람 말고는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마라." 비구들은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그 뒤로는 아무도 세존을 찾아가지 않았다. 탁발 음식을 날라 주는 한 사람만 오갔다.
‘‘icchāmahaṃ, bhikkhave, temāsaṃ paṭisallīyituṃ.
“비구들이여, 나는 석 달 동안 홀로 지내고자 한다.
Nāmhi kenaci upasaṅkamitabbo, aññatra ekena piṇḍapātanīhārakenā’’ti.
탁발음식을 가져오는 한 사람 말고는 아무도 나에게 다가와서는 안 된다.”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ṭissutvā nāssudha koci bhagavantaṃ upasaṅkamati, aññatra ekena piṇḍapātanīhārakena.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하고서, 탁발음식을 가져오는 한 사람 말고는 아무도 세존께 다가가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났다. 세존께서는 홀로 지내기를 마치고 나오셨다. 그리고 다시 비구들을 부르셨다.
Atha kho bhagavā tassa temāsassa accayena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그 석 달이 지나 홀로 지냄에서 일어나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유행자들이 너희에게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어떤 머묾으로 우기 안거를 주로 지냈는가?' 그렇게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로 우기 안거를 주로 지내셨다.'
‘‘sace kh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puccheyyuṃ –
“비구들이여, 만약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
‘katamenāvuso, vihārena samaṇo gotamo vassāvāsaṃ bahulaṃ vihāsī’ti, evaṃ puṭṭhā tumhe, bhikkhave, tesaṃ aññatitthiyānaṃ paribbājakānaṃ evaṃ byākareyyātha –
‘벗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어떤 머묾으로 우기 안거를 많이 머물렀는가?’ 하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그 다른 교파의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
‘ānāpānassatisamādhinā kho, āvuso, bhagavā vassāvāsaṃ bahulaṃ vihāsī’ti.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삼매로 우기 안거를 많이 머무셨다.’ 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여기서 마음을 챙기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안다.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도 그것을 그대로 안다. '온몸을 느끼면서 들이쉬리라'고 알고, 그렇게 차례로 이어 간다. 끝에 가서는 '놓아 버림을 지켜보면서 들이쉬리라'고 알고, '놓아 버림을 지켜보면서 내쉬리라'고 안다."[불확실]
Idhāhaṃ, bhikkhave, sato assasāmi, sato passasāmi.
비구들이여, 여기서 나는 마음챙기며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며 숨을 내쉰다.
Dīghaṃ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mi, dīghaṃ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mi;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 ‘길게 숨을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rassaṃ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mi, rassaṃ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mi;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 ‘짧게 숨을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sabbakāyap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pajānāmi…pe…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pajānām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pajānāmi’’.
‘온몸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온몸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몸의 형성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몸의 형성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희열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희열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행복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행복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의 형성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의 형성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의 형성을 가라앉히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의 형성을 가라앉히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을 느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을 느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을 기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을 집중하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을 집중하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마음을 벗어나게 하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마음을 벗어나게 하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무상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무상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소멸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들이쉬리라’고 꿰뚫어 알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피며 숨을 내쉬리라고 꿰뚫어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부를 만한 머묾이 있다. 성스러운 머묾이라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 하며, 여래의 머묾이라 한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삼매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불확실]
‘‘Yañhi taṃ, bhikkhave, sammā vadamāno vadeyya –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이가 그것을 두고 말한다면[불확실]
불확실 —
‘ariyavihāro’ itipi, ‘brahmavihāro’ itipi, ‘tathāgatavihāro’ itipi.
‘성스러운 머묾’이라고도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머묾’이라고도 한다.
Ānāpānassatisamādhiṃ sammā vadamāno vadeyya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삼매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가 말한다면[불확실]
불확실 —
‘ariyavihāro’ itipi, ‘brahmavihāro’ itipi, ‘tathāgatavihāro’ itipi.
‘성스러운 머묾’이라고도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머묾’이라고도 한다.
비구들이여, 아직 배우는 중인 비구들이 있다. 목표에 이르지 못한 채 위없는 안온을 바라며 지내는 이들이다. 그들이 이 삼매를 닦고 거듭 익히면 번뇌를 다하는 데로 나아간다.
Ye te, bhikkhave, bhikkhū sekhā appattamānasā anuttaraṃ yogakkhemaṃ patthayamānā viharanti tesaṃ ānāpānassatisamādhi bhāvito bahulīkato āsavānaṃ khay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아직 배우는 이로서 뜻한 바에 이르지 못하고 위없는 안온을 바라며 머무는 그 비구들, 그들에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히면 번뇌들의 소멸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인 비구들도 있다. 살아야 할 삶을 다 살고 할 일을 다 마친 이들이다.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표에 이르렀으며, 존재의 족쇄를 남김없이 끊고 바르게 알아 해탈했다. 그들이 이 삼매를 닦고 거듭 익히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문다. 또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으로 나아간다.
Ye ca kho te, bhikkhave, bhikkhū arahanto khīṇāsavā vusitavanto katakaraṇīyā ohitabhārā anuppattasadatthā parikkhīṇabhavasaṃyojanā sammadaññā vimuttā tesaṃ ānāpānassatisamādhi bhāvito bahulīkato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ya ceva saṃvattati satisampajaññāya ca.
비구들이여, 아라한이고 번뇌를 다했고 청정한 삶을 다 살았고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기 목적을 이루었고 존재의 족쇄를 남김없이 부수었고 바른 앎으로 해탈한 그 비구들, 그들에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히면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머묾으로도 이끌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으로도 이끈다.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부를 만한 머묾이 있다. 성스러운 머묾이라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 하며, 여래의 머묾이라 한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삼매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불확실]
‘‘Yañhi taṃ, bhikkhave, sammā vadamāno vadeyya –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이가 그것을 두고 말한다면[불확실]
불확실 —
‘ariyavihāro’ itipi, ‘brahmavihāro’ itipi, ‘tathāgatavihāro’ itipi.
‘성스러운 머묾’이라고도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머묾’이라고도 한다.
Ānāpānassatisamādhiṃ sammā vadamāno vadeyya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삼매를 두고 바르게 말하는 이가 말한다면[불확실]
불확실 —
‘ariyavihāro’ itipi, ‘brahmavihāro’ itipi, ‘tathāgatavihāro’ itipī’’ti.
‘성스러운 머묾’이라고도 하고, ‘거룩한 머묾’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머묾’이라고도 한다.”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