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42.1
짠다 경
Caṇḍasuttaṃ
교차 검사
여섯 감각 장소 품Saḷāyatanavaggo
8. Gāmaṇisaṃyuttaṃ
8. 촌장 상윳따
1. Caṇḍasuttaṃ
1. 짠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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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짠다 촌장이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여쭈었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Atha kho caṇḍo gāmaṇ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짠다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caṇḍo gāmaṇi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짠다 촌장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은 사나워서 사나운 사람이라 불립니다. 무슨 원인, 무슨 조건 때문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온화해서 온화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그것은 또 무슨 원인, 무슨 조건 때문입니까?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o caṇḍo caṇḍotveva saṅkhaṃ gacchati.
“세존이시여,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여기 어떤 이는 사나운 자여서 바로 ‘사나운 자’라고 불립니까?
Ko pana,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o sorato soratotveva saṅkhaṃ gacchatī’’ti?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이기에 여기 어떤 이는 온화한 자여서 바로 ‘온화한 자’라고 불립니까?”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탐욕이 남아 있으니 남들이 그를 건드려 화를 돋운다. 그러면 그는 곧바로 화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나운 사람이라 불린다.
‘‘Idha, gāmaṇi, ekaccassa rāgo appahīno hoti.
“촌장이여, 여기 어떤 이는 탐욕이 버려지지 않았다.
Rāgassa appahīnattā pare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pātukaroti.
탐욕이 버려지지 않은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 그는 화를 드러낸다.
So caṇḍ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사나운 자’라고 불린다.
성냄도 마찬가지다. 성냄을 버리지 못했으니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한다. 화나게 하면 그는 곧 화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나운 사람이라 불린다.
Doso appahīno hoti.
성냄이 버려지지 않았다.
Dosassa appahīnattā pare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pātukaroti.
성냄이 버려지지 않은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 그는 화를 드러낸다.
So caṇḍ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사나운 자’라고 불린다.
어리석음도 다르지 않다.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했으니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한다. 화나게 하면 그는 곧 화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나운 사람이라 불린다.
Moho appahīno hoti.
어리석음이 버려지지 않았다.
Mohassa appahīnattā pare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pātukaroti.
어리석음이 버려지지 않은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 그는 화를 드러낸다.
So caṇḍ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사나운 자’라고 불린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사나운 사람이 되어 사나운 사람이라 불리는 원인과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Ayaṃ kho, gāmaṇi,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o caṇḍo caṇḍotveva saṅkhaṃ gacchati’’.
촌장이여,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니, 그래서 여기 어떤 이는 사나운 자여서 바로 ‘사나운 자’라고 불린다.”
그런데 촌장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탐욕을 버렸다. 탐욕이 없으니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한다. 화나게 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온화한 사람이라 불린다.
‘‘Idha pana, gāmaṇi, ekaccassa rāgo pahīno hoti.
“촌장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이는 탐욕이 버려졌다.
Rāgassa pahīnattā pare na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na pātukaroti.
탐욕이 버려진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So sorat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온화한 자’라고 불린다.
성냄도 마찬가지다. 성냄을 버렸으니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한다. 화나게 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온화한 사람이라 불린다.
Doso pahīno hoti.
성냄이 버려졌다.
Dosassa pahīnattā pare na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na pātukaroti.
성냄이 버려진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So sorat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온화한 자’라고 불린다.
어리석음도 다르지 않다. 어리석음을 버렸으니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한다. 화나게 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온화한 사람이라 불린다.
Moho pahīno hoti.
어리석음이 버려졌다.
Mohassa pahīnattā pare na kopenti, parehi kopiyamāno kopaṃ na pātukaroti.
어리석음이 버려진 탓에 남들이 그를 화나게 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화나게 되어도 그는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So soratotveva saṅkhaṃ gacchati.
그래서 그는 바로 ‘온화한 자’라고 불린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온화한 사람이 되어 온화한 사람이라 불리는 원인과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Ayaṃ kho, gāmaṇi,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o sorato soratotveva saṅkhaṃ gacchatī’’ti.
촌장이여,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니, 그래서 여기 어떤 이는 온화한 자여서 바로 ‘온화한 자’라고 불린다.”
이 말씀을 듣고 짠다 촌장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합니다. 세존께서는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하셨습니다. 덮인 것을 열어 보이고,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 듯합니다.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사람에게 형상을 보게 하신 듯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Evaṃ vutte, caṇḍo gāmaṇi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짠다 촌장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일러 주듯, 어둠 속에 기름등불을 들어 주듯 —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눈 있는 이들은 형상을 보리라’ 하듯,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를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법과 비구 승가에도 귀의합니다.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세존이시여, 저를 오늘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소서.”
Paṭhamaṃ.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