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11.1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경
Kimatthiyasuttaṃ
교차 검사
열한의 모음Ekādasakanipātapāḷi
1. Nissayavaggo
1. 의지품
1. Kimatthiyasuttaṃ
1.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경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그분 세존, 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예경드립니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러고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불확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한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나아갔다;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나아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바른 계행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바른 계행은 뉘우칠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뉘우칠 일 없음을 가져다준다.”
‘‘kimatthiyāni, bhante, kusalāni sīlāni kimānisaṃsānī’’ti?
“세존이시여, 유익한 계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Avippaṭisāratthāni kho, ānanda, kusalāni sīlāni avippaṭisārānisaṃsānī’’ti.
“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은 후회 없음을 위한 것이고 후회 없음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뉘우칠 일 없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뉘우칠 일 없음은 기쁨을 위한 것이고, 기쁨을 가져다준다.”
‘‘Avippaṭisāro pana, bhante, kimatthiyo kimānisaṃso’’?
“그러면 세존이시여, 후회 없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Avippaṭisāro kho, ānanda, pāmojjattho pāmojjānisaṃso’’.
“아난다여, 후회 없음은 기쁨을 위한 것이고 기쁨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기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기쁨은 희열을 위한 것이고, 희열을 가져다준다.”
‘‘Pāmojjaṃ pana, bhante, kimatthiyaṃ kimānisaṃsaṃ’’?
“그러면 세존이시여, 기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Pāmojjaṃ kho, ānanda, pītatthaṃ pītānisaṃsaṃ’’.
“아난다여, 기쁨은 희열을 위한 것이고 희열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희열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희열은 고요함을 위한 것이고, 고요함을 가져다준다.”
‘‘Pīti pana, bhante, kimatthiyā kimānisaṃsā’’?
“그러면 세존이시여, 희열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Pīti kho, ānanda, passaddhatthā passaddhānisaṃsā’’.
“아난다여, 희열은 편안함을 위한 것이고 편안함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고요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고요함은 행복을 위한 것이고, 행복을 가져다준다.”
‘‘Passaddhi pana, bhante, kimatthiyā kimānisaṃsā’’?
“그러면 세존이시여, 편안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Passaddhi kho, ānanda, sukhatthā sukhānisaṃsā’’.
“아난다여, 편안함은 행복을 위한 것이고 행복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행복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행복은 삼매를 위한 것이고, 삼매를 가져다준다.”
‘‘Sukhaṃ pana, bhante, kimatthiyaṃ kimānisaṃsaṃ’’?
“그러면 세존이시여, 행복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Sukhaṃ kho, ānanda, samādhatthaṃ samādhānisaṃsaṃ’’.
“아난다여, 행복은 삼매를 위한 것이고 삼매를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삼매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삼매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가져다준다.”
‘‘Samādhi pana, bhante, kimatthiyo kimānisaṃso’’?
“그러면 세존이시여, 삼매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Samādhi kho, ānanda, yathābhūtañāṇadassanattho yathābhūtañāṇadassanānisaṃso’’.
“아난다여, 삼매는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을 위한 것이고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그것은 싫어져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싫어져 돌아섬을 가져다준다.”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ṃ pana, bhante, kimatthiyaṃ kimānisaṃsaṃ’’?
“그러면 세존이시여,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ṃ kho, ānanda, nibbidatthaṃ nibbidānisaṃsaṃ’’.
“아난다여,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은 싫어하여 떠남을 위한 것이고 싫어하여 떠남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싫어져 돌아섬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싫어져 돌아섬은 탐욕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탐욕에서 벗어남을 가져다준다.”
‘‘Nibbidā, pana, bhante, kimatthiyā kimānisaṃsā’’?
“그러면 세존이시여, 싫어하여 떠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Nibbidā kho, ānanda, virāgatthā virāgānisaṃsā ’’.
“아난다여, 싫어하여 떠남은 탐욕이 사라짐을 위한 것이고 탐욕이 사라짐을 이익으로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탐욕에서 벗어남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아난다여, 탐욕에서 벗어남은 해탈했음을 알고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해탈했음을 알고 봄을 가져다준다.
‘‘Virāgo pana, bhante, kimatthiyo kimānisaṃso’’?
“그러면 세존이시여, 탐욕이 사라짐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이익으로 합니까?”
‘‘Virāgo kho, ānanda, vimuttiñāṇadassanattho vimuttiñāṇadassanānisaṃso.
“아난다여, 탐욕이 사라짐은 해탈의 앎과 봄을 위한 것이고 해탈의 앎과 봄을 이익으로 한다.
아난다여, 그러니 이 길은 이렇게 이어진다. 바른 계행은 뉘우칠 일 없음을 위한 것이고, 뉘우칠 일 없음을 가져다준다. 뉘우칠 일 없음은 기쁨을, 기쁨은 희열을, 희열은 고요함을 가져다준다. 고요함은 행복을, 행복은 삼매를 가져다준다. 삼매는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가져다준다. 있는 그대로 알고 보면 싫어져 돌아서게 된다. 싫어져 돌아섬은 탐욕에서 벗어남을 가져다준다. 탐욕에서 벗어남은 해탈했음을 알고 봄을 가져다준다.
‘‘Iti kho, ānanda, kusalāni sīlāni avippaṭisāratthāni avippaṭisārānisaṃsāni, avippaṭisāro pāmojjattho pāmojjānisaṃso, pāmojjaṃ pītatthaṃ pītānisaṃsaṃ, pīti passaddhatthā passaddhānisaṃsā, passaddhi sukhatthā sukhānisaṃsā, sukhaṃ samādhatthaṃ samādhānisaṃsaṃ, samādhi yathābhūtañāṇadassanattho yathābhūtañāṇadassanānisaṃso,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ṃ nibbidatthaṃ nibbidānisaṃsaṃ, nibbidā virāgatthā virāgānisaṃsā, virāgo vimuttiñāṇadassanattho vimuttiñāṇadassanānisaṃso.
이와 같이 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은 후회 없음을 위한 것이고 후회 없음을 이익으로 하며, 후회 없음은 기쁨을 위한 것이고 기쁨을 이익으로 하며, 기쁨은 희열을 위한 것이고 희열을 이익으로 하며, 희열은 편안함을 위한 것이고 편안함을 이익으로 하며, 편안함은 행복을 위한 것이고 행복을 이익으로 하며, 행복은 삼매를 위한 것이고 삼매를 이익으로 하며, 삼매는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을 위한 것이고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을 이익으로 하며, 있는 그대로 앎과 봄은 싫어하여 떠남을 위한 것이고 싫어하여 떠남을 이익으로 하며, 싫어하여 떠남은 탐욕이 사라짐을 위한 것이고 탐욕이 사라짐을 이익으로 하며, 탐욕이 사라짐은 해탈의 앎과 봄을 위한 것이고 해탈의 앎과 봄을 이익으로 한다.
아난다여, 이렇듯 바른 계행은 차례를 밟아 맨 꼭대기에 이르게 한다.”
Iti kho, ānanda, kusalāni sīlāni anupubbena aggāya parentī’’ti.
이와 같이 아난다여, 유익한 계들은 차례차례 최상에 이른다.”
Paṭhamaṃ.
첫째.